김형근의 과기누설(59)
히치콕의 스릴러 ‘새’의 미친 새는 독성조류에 중독됐기 때문
과학자들, 독일 티퍼 시 호수 퇴적 유기체 DNA 분석 결과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 기자】 아마 서스펜스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만든 영화 가운데 1963년도에 제작된 ‘새(The Birds)’만큼 무서운 작품도 없을 것이다.

평범한 소재인 새에서 엄청난 공포의 스릴을 이끌어내는 히치콕만의 창의적인 능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마치 자신의 머리가 실제로 새가 콕콕 쪼고 있는 듯한 공포를 느낀다. 능히 ‘서스펜스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들을 만하다.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히치콕의 ‘새의’ 미친 새는 독성조류에 중독됐기 때문

이후에 ‘새 공포증’이라는 새로운 증후군도 생겼다고 하니 히치콕의 능력은 정말 탁월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지평을 잠시 열어보자. 가장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질문이다. 새는 어째서 여주인공 멜라니를 시작으로 인간들을 공격하는 잔인하게 변한 것일까?

물론 우리의 평범한 상상을 뒤엎는 히치콕 감독만의 능력이며, 또 하나의 픽션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히치콕의 공포 스릴러 ‘새’는 단순히 작가의 상상 속에서만 그려낸 작품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다.

‘새의 원작자는 영국의 여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대프니 뒤 모리에(Daphne du Maurier)다. 히치콕의 ‘레베카’도 그녀의 작품이다.

히치콕이 ‘새’의 강렬한 영감을 얻은 것은 1961년 8월 캘리포니아 북부 몬터레이만(Monterey Bay)에서 일어난 ‘미친 새’ 사건이었다. 새들이 미친 사건은 지역신문에 실렸고 여기에 흥미를 느낀 히치콕은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자세한 정보를 얻었다.

당시 상황에 따르면 무슨 이유 때문인지 새들은 방향 감각을 상실했으며 가려움증과 발작을 일으켰다고 한다. 몬터레이만에 있던 수천 마리의 검은슴새(sooty shearwaters)들은 먹은 멸치를 토해 내기도 하고 바위, 건물, 나무 등에 돌진하다 부딪혀 피를 흘리면서 죽어갔다.

그러면 왜 새들이 미친 것일까? 그 해답은 불과 몇 년 전에야 밝혀졌다. 몬터레이만의 바닷물을 오염시킨 독성 플랑크톤 슈도니치아(Pseudo-nitzschia)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과학자들은 ‘미친 새 사건’이 일어났던 1961년 7~8월 사이 몬터레이만 지역에서 채집된 동물성 플랑크톤 샘플을 분석한 결과 새들을 미쳐 날뛰게 만든 것은 바로 이 독성 조류 때문임을 확인했다.

우리의 지평을 다시 한번 열고 의문을 던져보자. 인간이 폐기하는 오염원으로 인해 발생하는, 흔히 녹조로 일컫는 독성 조류는 언제부터 생겼을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 독성 조류는 까마득한 청동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결국 만물의 영장 인간이 과학과 기술의 ‘맛’을 알기 시작하면서 독성조류도 같이 했다는 의미다.

청동기 시대의 농업이 독성조류를 양산하기 시작해

최근 주로 지구 온난화와 영양분 투입의 증가로 인해, 전 세계의 많은 호수에서 남조류, 또는 녹조로 알려진 독성 조류에 대한 보고가 증가하고 있다.

독일 지질연구센터(GFZ)의 과학자들은 한 호수 퇴적물의 DNA를 조사한 끝에 인간이 현대만이 아니라 이미 청동기 시대(기원전 약 2000년)부터 남조류의 발달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발견했다.

남조류는 광합성을 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생물 중 하나이며, 남세균(cyanobacteria)으로부터 산소를 생산하고 이산화탄소를 격리시키는 능력을 물려받은 오늘날의 육지 식물의 주요 조상 중 일부로 여겨진다.

이 조류들은 최근 수십 년 동안 영양분 생산량 증가와 기후변화와 같은 인위적인 요인들로 인해 많은 수역에서 증식해 왔다.

일부는 독성이 있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다. 우리 피부와 접촉하면 알레르기를 일으키거나 작은 상처가 났을 때 물 속에 들어가 감염되면 간암까지 유발할 수 있다.

게다가, 다른 종류의 조류들과는 달리, 이들은 대기로부터 질소를 흡수하고 영양분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생존경쟁이 뛰어나 다른 수생 생물들을 지배하고 압도할 수 있다.

연구팀은 지난 천 년 동안 진화해 온 이 조류들을 파악하기 위해 독일 메클렌부르크-웨스턴 포메라니아(Mecklenburg-Western Pomerania)의 티퍼 시 호수(Lake Tiefer See)에서 퇴적물을 수집해 다양한 유기체의 DNA를 분석하여 남조류의 종의 수, 구성, 다양성을 추론했다.

서스펜스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만든 영화 가운데 1963년도에 제작된 ‘새(The Birds)’만큼 무서운 작품도 없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사람을 공격하는 '미친 새'는 독성조류에 중독되엇기 때문이다. [사진= Turner Classic Movies]
서스펜스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만든 영화 가운데 1963년도에 제작된 ‘새(The Birds)’만큼 무서운 작품도 없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사람을 공격하는 '미친 새'는 독성조류에 중독되엇기 때문이다. [사진= Turner Classic Movies]

독일 티퍼 시 호수 퇴적물 유기체 DNA 분석결과

분석 결과 남세균의 가장 오래된 표본은 1만1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러나 종의 수와 다양성은 매우 낮았다. 따라서 이들이 호수의 초기 생태계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거의 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 바이올로지(Nature Communications Biology)’ 최근호에 실린 이 논문에 연구팀은 “그러나 기원전 2000년경 호수 근처에서 청동기 시대의 첫 번째 매장지가 발견되면서, 조류들의 수와 종의 공동체가 크게 증가했다”고 주장했다.

GFZ의 지구 미생물학 전문가인 에부카 느보스(Ebuka Nwosu) 박사는 "이것은 심지어 초기 문화의 조상들이 농업 활동을 통해 호수의 영양 균형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말했다.

그 후, 각각의 정착 단계와 함께, 그리고 주로 따뜻한 기후 조건에서, 남조류는 티퍼 시 호수에서 계속해서 증식했다. 농업의 산업화로 영양분 투입이 크게 늘자 남조류의 증식은 훨씬 더 가속화되었고, 점점 더 따뜻한 기후 조건이 여기에 부채질을 했다.

독성조류는 우리나라도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4대강 사업으로 설치된 보로 인해 물의 이동이 막히면서, 특히 낙동강에서 독성조류인 녹조가 강 하류를 덮으면서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악취가 심하게 나고 있다.

어쨌든 이러한 독성조류도 어떻게 보면 인류가 과학기술의 ‘맛’을 알기 시작하면서 생산된 과거의 업보임에 틀림이 없다. 과학과 기술의 모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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