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촐랑대다’, ‘촐싹대다’는 탈춤 ‘초랭이’에서 유래

〈만월산 수국사(滿月山守國寺) 감로탱〉(1832)에는 장구를 어깨에 메고 솟대에 오르는 ‘초라니’
〈만월산 수국사(滿月山守國寺) 감로탱〉(1832)에는 장구를 어깨에 메고 솟대에 오르는 ‘초라니’

오두방정 떨지 마라, 초랭아!

【뉴스퀘스트=김승국 전통문화칼럼니스트 】 어렸을 때 까불고 촐싹거리며 뛰어다니다 넘어지면 어른들에게서 “너 이 녀석! 초랭이처럼 촐싹거리고 돌아다니더니…. 거 봐라. 넘어져 꼴 좋다.”라는 말을 흔히 듣곤 했다.

‘촐싹거린다’라는 뜻은 주책없이 달랑거리며 돌아다닌다는 뜻을 가진 우리말이다. ‘촐싹’과 관계된 말은 ‘촐싹거리디. 촐싹대다, 촐싹이다.’ 등이다.

‘촐싹’과 사촌 간은 ‘촐랑’이다. 이 역시 관계되는 말은 ‘촐랑거리다. 촐랑대다. 촐랑이다.’ 등이다.  

그러면 ‘초랭이’는 누굴까?

초랭이는 전통 가면극 속의 특정 캐릭터다. 민가와 궁중, 관아에서, 음력 섣달그믐날에 묵은해의 마귀와 사신을 쫓아내려고 베풀던 의식인 나례(儺禮)의 진자(侲子: 아이 초라니)에서 나온 ‘초라니’로부터 출발하였다고 본다.

양주별산대놀이나 송파산대놀이에도 ‘초라니’라는 배역이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졌다.

‘하회별신굿탈놀이’와 ‘고성오광대놀이’에 등장하는 여러 배역 중 하나로 ‘초랭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초랭이’는 양반의 종으로 양반을 곯리는 행동을 하며 영악하고 행동거지가 경망한 성격을 가졌다.

하회별신굿탈놀이 대사에 ‘방정맞다 초랭이 걸음’이라는 말처럼 ‘초랭이’는 점잖지 못하게 까불거리며 촐랑거리는 역을 한다.

물론 ‘촐랑’과 ‘촐싹’은 ‘초랭이’에서 유래된 말일 게다. 

초랭이는 초랑이·초란이·초라니라고도 한다.

초랭이 형상을 보면 이마는 툭 튀어나오고, 눈은 동그랗고, 코는 대체로 짧은 편이다.

코끝은 납작하고 콧등과 콧방울에 주름이 있다. 입술은 아주 얇고 아래턱은 뾰족하며, 힘을 주고 있는 듯 가볍게 벌린 입에 이빨을 드러낸 모양은 마치 앙심을 품은 듯 보인다.

볼의 근육과 주름은 왼쪽은 아래로 오른쪽은 위로 향해 있으며, 눈은 정면을 향해 동그랗게 뚫려 있다. 

경박하지만, 양반의 허위를 폭로했던 영악스러운 초랭이 

초랭이는 이마가 툭 튀어나왔고, 콧등과 콧방울에 주름이 있다. 그리고 코는 짧으며 볼에 살이 붙지 않았다.

관상학적으로 이마가 툭 튀어나온 얼굴은 윗사람과 의견이 맞지 않아 고생을 많이 할 상이며, 콧등에 주름이 있는 사람은 평생 가난하여 재물이 쌓이지 않는다고 한다.

코가 짧은 사람은 관상학적으로 성품이 급하며 생활의 안정을 얻기 어렵다고 한다. 뺨에 살이 쏙 빠진 사람은 역시 신경질적이며 가난하여 고생한다고 한다.

선비 탈의 볼에 살이 별로 없는 것이나, 초랭이의 뺨에 살이 없는 것은 가난함을 표현한 것이다.

초랭이의 입은 완전히 비뚤어져 있다. 왼쪽의 입매는 경직된 듯 험악하다면, 오른쪽의 입매는 웃는 듯 부드러워 그 모양이 이중적이다.

이는 초랭이가 처한 현실을 함께 조형해놓은 것이다. 초랭이는 양반의 종으로서 양반과 선비의 허위와 모순을 가까이에서 자세히 지켜볼 수 있기 때문에 양반의 부조리한 삶의 실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양반의 지시와 명령에 늘 웃음 짓는 얼굴로 순종하는 표정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상전들의 허위의식의 실상을 험악한 말투로 폭로하는 입을 가졌다.

초랭이는 대개 양반의 오른쪽에 위치한다.

양반이 초랭이를 보면 항상 순종하고 있는 듯하지만, 관중들이 보면 뭔가 일러바칠 듯한 표정을 지녔다. 

초랭이는 상전인 양반을 대하는 행동이 불손하기 짝이 없다. 양반과 선비가 서로 인사를 나눌 때 엎드린 양반의 머리 위에 올라타 선비와 대신 인사를 한다.

또 정좌한 양반의 왼쪽에서 “양반요” 하고 부르다가, 양반이 돌아보면 다시 오른쪽에서 “양반요” 하고 부르는 놀리는 듯 행동을 반복한다.

이때 양반은 초랭이가 부르는 쪽으로 고개를 좌우로 몇 번 돌리다가 귀찮은 듯 손에 쥔 부채로 초랭이를 친다. 

또한 중이 양반의 여자와 놀아나다 자신에게 들키자 여자를 꿰차고 도망가는 것을 목격하고는 선비의 하인인 ‘이매’를 불러내 놀이 중에 그 상황을 이야기하다 후에 상전에게 일러바친다.

이처럼 초랭이는 양반의 종으로 양반을 곯리는 행동을 하며 영악스럽고 행동거지가 경망스럽다.

하회별신굿탈놀이에서 초랭이는 점잖지 못하게 까불거리며 촐랑거리는 역을 한다. 춤을 추어도 어느 배역보다도 가장 활달하고 생동감 있게 움직인다.

이렇듯 가볍고 경쾌하게 움직이려면 탈이 작고 가벼우며 착용감이 좋아야 하므로 초랭이탈의 크기는 하회탈 중 가장 작아 20×14cm에 불과하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정겨운 말, 오두방정 ‘초랭이’

하회별신굿탈놀이와 고성오광대놀이에서의 ‘초랭이’ 역 외에도 조선 후기에 발생한 남사당패·사당패·대광대패·솟대쟁이패·각쟁이패·광대패·걸립패·중매구·굿중패 등 다양한 명칭의 유랑예인 집단 중에 ‘초라니패’가 있었다.

‘초라니패’는 본래 잡귀를 쫓고 복을 불러들이는 의식에서 가면을 쓰고 놀음판을 벌이던 놀이패였다. 

‘초라니패’는 마을을 돌며 집집마다 들러 장구도 치고 〈고사소리〉를 부르며 동냥하는 놀이패로 변했다.

나중에는 〈고사소리〉 외에도 여러 가지 솟대타기 등 잡희(雜戲)를 벌이는 놀이패로 바뀌었다가 일제강점기로 접어들면서 초라니패는 사라졌다.

신재효본 〈변강쇠타령〉에 초라니의 가면을 "도리도리 두 눈구멍 흰 고리 테 두르고, 납작한 콧마루에 주석(朱錫)대갈 총총 박고, 꼿꼿한 센 수염이 양편으로 펄렁펄렁"이라고 초라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프랑스 기메 박물관 소장 〈만월산 수국사(滿月山守國寺) 감로탱〉(1832)에는 장구를 어깨에 메고 솟대에 오르는 ‘초라니’가 묘사되어 있다. 

이렇듯 ‘초랭이’는 우리네 삶 속에 깊숙이 다가와 함께했던 탈춤 속의 친근한 인물이었다.

그의 경박하고 까불까불한 성격이 “야! 이 초랭아! 오두방정 떨지 말고 가만히 좀 있어 봐!”라는 말이 있듯이 경박한 사람들이나 촐랑대는 어린아이들을 놀릴 때마다 등장했다.

이제는 그런 정겨운 말조차도 점차 사라지고 있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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