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체제 들어 부쩍 늘어
“감시원 동승해 운행” 말까지
장마당 경제 확산 촉매 역할

평양 시내를 운행 중인 택시. 최근 들어 북한 매체가 전하는 영상 속에 택시 모습이 부쩍 자주 눈에 띈다. [사진=유튜브 캡처]
평양 시내를 운행 중인 택시. 최근 들어 북한 매체가 전하는 영상 속에 택시 모습이 부쩍 자주 눈에 띈다. [사진=유튜브 캡처]

【뉴스퀘스트=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 남북한에서 쓰임새가 다른 단어 중 하나가 윤전(輪轉)이란 말이다. 한국에선 윤전기나 윤전인쇄 같은 쪽으로 주로 쓰이지만 북한에선 ‘윤전기재’라고 하면 교통수단을 일컫는다. “윤전기재의 가동을 정상화 하자”는 북한 선전구호는 트럭이나 버스 등 차량을 잘 정비하거나 보수해 언제든 잘 가동될 수 있게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자는 의미다.

최근 들어 북한 주민들에게 가장 각광받는 윤전기재는 택시다. 대중교통으로는 평양의 지하철과 버스, 무궤도 전차 등이 주류를 이뤘지만 이젠 지갑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택시 문화가 번져가고 있는 것이다.

조선중앙TV나 노동신문 등 관영 선전매체의 영상에도 택시는 빈번하게 등장한다. 평양의 대표적 상업시설인 광복거리상업중심(옛 광복백화점)의 경우 생수나 쌀 등 쇼핑한 물건을 택시에 실어 이동하는 주부들의 모습이 쉽게 눈에 띈다.

북한 당국이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지만 평양을 중심으로 북한 지역에 모두 2500대 정도의 택시가 운행 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016년 5개 회사가 1500대 정도의 택시로 영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것과 비교해보면 김정은 체제 들어 숫자가 상당히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 택시요금은 기본거리 4㎞에 2달러이며, ㎞당 0.5달러가 추가된다는 게 방북 인사의 전언이다. 일반 주민 입장에선 적지 않은 돈이지만 부유층이나 사업을 하는 이들에게는 이용할만한 수준이다.

택시는 북한에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확산시키는 촉매 역할도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주로 이용되는 무대가 상업시설이나 장마당의 유통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장사나 유통 사업으로 큰돈을 벌어들인 ‘돈주’들이 자리하고 있다. 상당한 현금 동원력을 갖춘 이들은 택시를 이용해 오가는 건 물론이고 평양과 지방, 지방과 지방 도시를 누빈다고 한다. 물품을 공급하고 시세에 따라 유통량을 조절하는 등의 수완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장마당에서 사업을 했던 함북 출신 한 탈북민은 “돈주들의 경우 자가용처럼 쓸 수 있는 차량도 있지만 장거리 운행이나 물건을 실어 나를 때는 기사가 딸린 택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코로나 확산 사태로 인해 장마당 운영 시간이 줄어들면서 어려움을 겪고, 지난해 5월 하루 확진자가 최대 39만 명을 넘는 비상방역 상황에서 타격을 입었지만 돈주들은 탄탄한 자본력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택시 사업이 돈줄로 인식되면서 북한의 각 기관 사이에 이권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조짐도 나타난다. 사회안전성(우리의 경찰에 해당)이 운영하는 택시회사의 경우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가 실제 소유주라는 입소문도 있다고 한다. 상당한 자본을 뒷심으로 신형 차량을 중국에서 수입해오면서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얘기다.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북한도 코로나 사태의 후유증에서 점차 벗어나면서 대면 접촉이나 활동이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평양을 중심으로 택시의 수요도 점차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택시 증가세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형편이 비교적 넉넉한 중상류층 이상의 주민들이 택시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추세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700만대 가량 보급된 것으로 파악되는 핸드폰에 이어 택시의 확산이 시장경제 바람을 불어넣고 북한 체제의 개방을 촉진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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