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능청맞고, 때로는 울게 만드는 소설

우영창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배를 내민 남자'
우영창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배를 내민 남자'

【뉴스퀘스트=오광수 대중문화 전문기자 】 '하늘이 해와 달을 내밀 듯/ 바다가 섬들을 내밀 듯/ 땅이 산맥을 내밀 듯/ 국가는 징집 영장과 세금고지서를 내밀고/ 회사는 실적 그래프와 해고 문자를 내미는데/ 그는 오직 배를 내밀고 있을 뿐이었다.‘

작가 우영창의 장편소설 <배를 내민 남자>(전 2권, 오프로드)를 읽다 보면 눈에 쏙쏙 들어오는 구절들이 많다. 모처럼 '구라'와 '서사'가 돋보이는 소설을 만난 느낌이다.

크게 성공하여 아내를 왕비로 등극시키겠다는 의지로 밤낮없이 일하는 샴푸 세일즈맨 김무종이 그 소설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세상은 녹록지 않다. 그의 앞에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17년 전의 애인이 나타나 마음을 흔들고, 문전박대의 설움이 수시로 앞길을 가로막는다.

철강회사에서 납품 비리 건으로 해직된 40대 가장 김무종은, 일식당에 나가고 있는 아내 변가영과 초등 1학년 아들 경서, 유치원 다니는 딸 민주와 함께 18평 연립주택에 살며 샴푸 세일즈맨으로 뛰고 있다. 3년 안에 영업왕이 되어 아파트를 사고 가정을 재건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그의 앞에 17년 전 짝사랑했던 옛 여자가 나타난다. 그녀는 왜 나타났으며 그는 과연 세일즈로 성공할 것인가.

이 소설을 읽으려면 먼저 소설에 대한 우리의 기존 개념을 좀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캐릭터와 함께 세상 어디서 막연히 존재하고 있을 듯한 문장들로 가득한 매우 수상한 소설이기 때문이다.

서사가 기본 뼈대인 장편소설에서 디테일이 어느 선까지 허용되는지 시험을 하는 듯한 인상을 받을 정도로 장면 장면의 디테일이 때로 숨 막힐 정도로 치밀하다. 남성이발소나 녹색 어머니회 상대의 모닝샴푸 소개 강연, 퇴직 임원들과의 만남 등 몇몇 장면은 특별히 인상적이다.

이야기는 그야말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예상 못한 결말로 치닫는다. 때로 과하다 할 만큼 상세한 묘사, 작품성과 오락성을 함께 담보하려는 시도 등 무리해 보이는 면도 없지 않은 편이나 인내할 만한 수준이다.

미스터리적 요소의 전개와 결말은 일반적인 추리소설과는 다른 결을 갖고 있으나, 나오는 장면마다 이야기와 동떨어진 내용이 거의 없을 만큼 전체적으로 긴밀한 내외적 연계성을 갖고 있어 플롯의 기본에 충실한 작품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독자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 듯한 글쓰기임에도 감정이입이라는 면에서 상당히 강력하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우리 모두 약간은 배를 내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영창 작가
우영창 작가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 책의 작가 우영창은 1956년 포항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8년, 증권사 여직원의 일상과 사랑을 파격적으로 다룬 장편소설 <하늘다리>로 ‘제1회 문학의문학 장편소설상’을 수상했다.

해학의 지평을 넓혔다고 평가받은 <성자 셰익스피어>. 탐욕의 금융 세계를 다룬 <더 월> 이후 4번째로 발표하는 장편소설이다. 10년에 걸쳐 집필한 이 소설은 근래 발표된 소설들과는 사뭇 다르게 모두 3,100매의 묵직한 분량을 담아 1권과, 2권으로 펴냈다. 두 권짜리 소설임에도 단숨에 읽힌다.

서사 위주임에도 디테일은 풍성하면서도 치밀하다. 이야기의 중간중간 빼어난 서정성이 우리의 가슴을 침범한다. 2권으로 진입해서도 이야기의 힘이 떨어지지 않는다. 한국어가 이렇게 의외로 쓰이기도 하고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건 하나의 발견이라 하겠다. 더 붙이자면 한 번씩 제대로 웃기고 모욕과 비애의 쓴맛을 수시로 제공한다. 마치 어디서 느닷없이 나타난 소설 같다.

작가는 저자의 말을 통해 이렇게 고백한다. '작가라고, 나이가 들었다고 인생에 대해 특별히 아는 게 있겠는가.'

그래서인지 이 소설엔 밑줄 칠 만한 구절일랑 별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모르는 걸 알려고 하는 대신 문장이나 조사 같은 걸 고치는데, 이야기와 플롯을 만지는 데 하루를 보내는 나날이 10여 년 계속되었다.

사람마다 10여 년 걸리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한 사람을 이해하는 데 그 정도 시간이 걸리고, 누군가는 방 한 칸 마련하는 데 그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앞으로 또 10년, 우리는 각자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우리 모두에게 가끔은 행복하고 가끔은 아름다운 그런 시간이 예비되어 있기를.' 각 권 가격 15,000원.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