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뉴스퀘스트=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행동경제학 강의를 하면서 내가 이 주제로 계속 하는게 맞나라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나의 강의는 행동경제학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하고 휴리스틱, 닻내림효과, 소유효과, 각종 편향 등 가장 많이 쓰이는 개념들을 각종 연구결과와 사례들을 통해 자세하게 설명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각종 연구는 주로 미국과 유럽의 행동경제학자들이 행하기 때문에 그 연구, 실험 대상 역시 미국 명문대학교의 대학생, 대학원생이 대부분이다.

바로 여기서 나는 시쳇말로 ‘현타’가 오기도 한다.

한국이라는 국가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미국과는 다른 교육과정을 거치고 다른 역사를 공유하고 지금은 세계로 뻗어가는 문화를 거리낌없이 누리고 있기 때문에 어떤 상황을 맞이했을 때, 미국인과는 전혀 다른 심리와 전혀 다른 행동을 할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아직 우리나라에서 행동경제학을 이해하고 가르치고 실험한지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관련된 연구 또한 상대적으로 많이 부족하고 이를 강의에 소개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번의 유사한 연구를 통해 같은 결과가 나와서 강력하게 ‘한국사람의 행동은 이렇습니다.’라고 주장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 번역하여 출간된 ‘WEIRD (위어드)’라는 책은 이러한 점을 매우 신랄하게 파헤치고 있다.

여기서 'WEIRD(위어드)란 Western(서구의), Educational(교육을 잘 받은), Industrialized (산업화된), Rich(부유한), Democratic(민주적인) 집단을 말한다.

우선 조지프헨릭 자체가 하버드대학교의 ‘인간진화생물학과 (Human Evolutionary Biology)’ 교수이다.

그가 소속해 있는 과 이름만 보더라도 행동경제학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는 이 책에서 과 이름처럼 문해력, 문화, 종교, 생물학이 공진화(Coevolution)하는 내용과 오늘날 서구 문명의 핵심 구성원인 WEIRD라는 인간 군상에 대해 다루고 있다.

최근 출간한 책 중 필독서로 삼을 만큼 매우 가치가 있는 책이라 생각하는데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점은 지금까지 인간 역사나 심리에 관한 대부분의 훌륭한 성과물들은 WEIRD라고 불리우는 편향된 인구집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심리 실험 대부분은 서구 사회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거니와 저자가 공동연구한 결과만 보더라도 실험에 참여한 사람의 96%가 북유럽, 북미, 호주 출신이었고 이 가운데 70%는 미국 대학생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인간의 본성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대부분은 어쩌면 인류의 보편적인 본성이 아니라 미국인 혹은 WEIRD의 심리이자 본성일 수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책의 60페이지에서는 귀인오류 (Fundamental Attribution Error)에 대해 다룬다.

귀인오류는 예전 글에서 몇 번 설명을 했던 것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외부적요인보다는 그 사람의 기질, 성향과 같은 내적 요인들에 대해 과대평가하는 현상을 의미하는데 이 책에서는 ‘귀인오류는 사실 WEIRD에게서만 나타나는 특유의 현상이다’라고 얘기한다.

즉 WEIRD는 대체로 성향적 특성이나 인성, 믿음 등에 대한 추측에 의존해서 다른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내면적 특징으로 돌리는 성향을 가지고 있고, 그에 반해 다른 인구집단은 내먼적 특징보다는 행위와 결과에 더 초점을 맞춘다라고 설명하는 것이 맞는 말이다.

지금까지 쓴 내용이 바로 내가 강의 때 항상 고민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많은 연구와 실험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이것이 과연 ‘내 앞에서 내 얘기를 귀 기울여 듣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내용이라 확신할 수 있는가’라는 의구심이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나는 대부분의 행동경제학 핵심개념들은 인류 보편적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위에서 얘기한 귀인오류 사례처럼 몇몇의 개념은 실험대상이 되었던 미국인들의 오류이고 미국인들의 편향이지 한국인의 오류나 한국인의 편향이 아닐 수도 있다.

아직 우리나라의 행동경제학 연구의 역사가 일천하고 경제학자들 사이로 깊숙하게 자리잡지 못했던 결과이지만 최근 들어 젊은 경제학자들 중심으로 행동경제학을 전공하고 깊이 있는 연구를 많이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성과들을 많이 소개하면 소개할수록 나같은 사람은 더욱더 신이 나서 뛰어다닐 수 있다.

※ 필자소개 :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2000년대 초반부터 기업의 전략, 마케팅과 스포츠 마케팅, 공공부문의 정책입안 등 다양한 컨설팅 업무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컨설팅 결과가 인간의 심리나 행동을 잘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고민을 하던 중, 행동경제학자인 서울대 최승주교수와 빅데이터분석 권위자인 한양대 강형구 교수와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이후 정부와 기업 대상 행동경제학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강연 및 행동경제학 관련 칼럼과 영상을 통해 행동경제학을 보다 알기 쉽게 전파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