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로 그려진 자화상은 세월의 아름다움 응축과 자애로움이 무르익어...

김승희 화가의 '봉산탈춤'(151-101 2007년)
김승희 화가의 '봉산탈춤'(151-101 2007년)

【뉴스퀘스트=정형렬 갤러리피코 대표 】김승희의 봉산탈춤은 2006년 북경 세계미술제의 최고상인 금상을 수상한다. 본 작품은 2007년 작으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다시 한번 수상의 영예를 획득한다.

이 작품은 통일에 대한 절절한 염원의 글과 우리의 전통 민속탈춤이 함께 어울려 있는 그림이어서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수상이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쾌거이고 두고두고 기뻐할만한 남북한의 경사이다.

김승희 작가는 고운 미모에다가 단아하고 기품있는 자태가 인상적이지만, 오히려 그림에서는 어떤 남성에게도 뒤지지 않는 호방한 성품과 기상으로 절정에 다다른 오묘한 선묘법을 휘두르는 품세가 당차고 매섭다.

봉산탈춤은 무당굿에 기원을 두고 봉건제에 대한 극복과 해학적 질타를 신명나게 보여준 페러디 탈춤이다. 즉 서민생활의 곤궁상에 대해 책임을 통감해야 할 허위의식에 가득찬 양반에 대한 비판, 신분차별과 적서차별 철폐, 남성의 여성에 대한 횡포를 보여주는 일부다처제 타파, 사자를 대리 저승사자로 보내어 파계승에 대한 풍자 등을 노래한 재미 넘치는 노래가락과 함께 멋진 탈춤의 율동을 선사한다.

자고로 이 탈춤은 스토리가 풍부하고 교훈과 감동을 선사하며 신명나는 웃음과 흐드러진 춤사위의 멋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명품 탈춤이다. 이 탈춤의 연원이 되는 해서지방에서는 5일장이 서는 거의 모든 장터에서 탈꾼들을 초빙하여 1년에 한 번씩 탈춤을 추며 흥겹게 놀았다고 한다.

황해도 봉산은 농산물과 수공업 생산물의 교역지이며 소도시로서 탈춤공연의 경제적 여건이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탈춤공연이 성행할 수 있는 분위기와 토대가 오래전부터 성숙되어 있었다.

이 그림의 가사에서는 온통 통일에 대한 염원과 의지가 충천해 있다. 일찍이 남북한 모든 작가를 통틀어 보더라도 남성과 여성작가를 막론하고 이보다 더 시원하고 힘있게 통일을 절절히 부르짖는 노래가사를 그림과 함께 표현한 사례는 없을 것이다.

그림 하단의 노래가사에서는 우리나라 여러 지방의 탈춤 놀이들을 두루두루 언급하며 통일의 장벽과 그것을 조성하는 잡귀들을 송두리째 몰아내고 덩실덩실 통일의 춤판을 함께 벌여 나가자는 굳센 행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작가는 탈춤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포착하여 거장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녀가 휘뿌리는 한삼 소매자락의 선들을 따라가다 보면 너울너울 살아서 펄떡이며 공중 무희를 즐기는 강줄기의 큰 물고기들이 힘차게 솟구치는 공중제비 기세가 역력히 발현된다.

굽혔다 펼치기를 현란하게 반복하는 동작은 상체의 한삼자락만이 아니고 집신과 하체의 들썩들썩 신나는 율동도 이에 뒤질세라 따라가기 바쁘다.

이제는 고인이 되어버린 통일의 여전사 화가 김승희가 그린 통일 염원을 노래한 이 그림 감상이 통일에 대한 열망이 식어버린 남북한 국민들에게 통일을 향하여 작은 잡티들을 불사르는 마음의 장작불이자 불쏘시개가 되기를 기원한다.

먼 길이라도 꾸준한 한걸음으로 황소처럼 뚜벅뚜벅 걸어가면서 신명을 잃지 않는 소박하고 우직한 농부들의 씨 뿌리는 심정처럼, 통일을 위한 소중한 볍씨를 가꾸고 살려놓아야 우리에겐 원대한 국가적 비전과 희망을 만나볼 수 있다.

김승희 화가의 자화상 (20호 2012년).
김승희 화가의 자화상 (20호 2012년).

유화로 그려진 노년 자화상은 74세인 2012년에 그려졌다. 젊은 시절의 지사형의 곧은 미모가 노년에 이르러 단아한 원숙미의 전성기를 보일 정도로 지나온 세월의 아름다움이 응축되고 자애로움이 무르익은 미모의 화신으로 표현되어 있다.

김승희의 유화 그림은 노년의 자화상 이외에는 보기 어렵다. 그만큼 각별한 노년의 고유한 미적 아우라를 표현할 새로운 양식을 찾다가 유화 형식을 빌린 표현 방법을 찾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당초 일본에서 유화를 전공했던 청년시절의 실력이 오롯이 묻어나는 느낌이다.

짙은 고동색 계열과 살구색 톤의 두가지 색감이 통일성 있게 어울려 일관성 있게 살아온 화가의 인물됨을 색상 대비와 조화감으로 돋구어 깊이감 있게 살려내고 있다.

또한 전면에 각종 붓들이 들어 있는 원통형의 화구통이 배치되어 산전수전 겪은 노련미와 부드러움을 은연중 강조하고 있다. 좌측에는 아담한 꽃들이 만발한 화분이 조끼의 꽃들과 짝을 이루어 고상한 우아미를 밝혀준다.

김승희는 자신의 고아한 풍모를 화폭에 반영하기라도 하듯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들의 청아한 빛깔을 다채롭게 재현하였고 싯구절로 예찬하였을 뿐만아니라, 문화재 불상과 불교 유적들을 대담하게 그려낸 오상고절(傲霜孤節)의 국화꽃 같은 큰누님의 꼿꼿한 성정과 그윽한 향기가 그득한 여걸 화가였다.

◇김승희(1939-2021)는 누구인가?

현대 북한 미술계 최고의 여류 조선화가로 인정받는 김승희 화가
현대 북한 미술계 최고의 여류 조선화가로 인정받는 김승희 화가

현대 북한 미술계에서 최고의 여류 조선화가를 꼽으라고 한다면 1939년생인 김승희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1세대 정온녀에 이어 북한에서 제2의 신사임당으로 추앙받을 예술가로 미술사의 큰 획을 그을 인물로 칭송받기에 부족함이 없고, 통일을 목놓아 그림 속에서 절절히 노래한 대단한 여걸 미술가로 우리의 뇌리에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재일동포로서 도쿄의 무사시노 미술대학에 다니다 북한행을 선택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재일본조선청년학생대표로 세계제7차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되었고 미술대학에 다닐 학비가 여의치 않던 차에 북한에서 미술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까지 겹쳐 북한으로 향하여 성공적인 미술가로 우뚝 섰다.

일본에서 뿐만아니라 남한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1세대 재일본교포 화가 조양규가 북송을 선택한 이후, 그 자취를 알지 못하는 비운의 화가로 전락했던 사례와는 대조적인 행보를 걸었다. 조양규 화가는 일본에서 드물게 하수구 노동자 등 고달프고 거친 노동자들의 피폐한 삶을 집중 조명하여 오늘날에도 일본에서 주목받는 화가이다.

김승희의 과거 회상을 들어보면 투철한 민족적인 성향과 애국적인 열정이 뚜렷이 감지된다. “일본땅에서 미술교육을 얼마간 받는 과정에 사실을 기형적으로 묘사하는 형식주의적인 추상파 미술이 새것을 지향하는 저 자신에게 있어서 결정적으로 해롭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내용에서 사회주의적이고 형식에서 민족적인 사회주의사실주의 미술공부를 하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저는 자기의 진실한 삶과 희망과 포부가 바로 60만 재일동포들이 꿈결에도 그려보고 안기고 싶어하는 어머니 조국에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1992년 만수대창작사 개인전 전시회에서 그녀를 두고 이렇게 극찬의 평을 하고 있다. “절절한 통일 염원, 우리나라의 유구한 문화를 자랑하려는 긍지, 조국의 아름다운 계절정서가 화폭마다 뜨겁게 메아리쳐 나오고 있다.

여성미술가이지만 사색의 밀도가 높고 필치가 개성적이며 색에 대한 감각이 예민한 것 등 미술가로서 훌륭한 창작적 기질이 남김 없이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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