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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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요새 우리가 흔히 하거나 듣는 소리가 있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데이터라는 단어가 조금 생소하다면 데이터를 숫자로 바꿔도 똑같이 말을 할 수 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우리는 숫자라고 하면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정확’, ‘정밀’, ‘과학’ 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연상하며, 보다 신중하고 보다 근거가 명확하여 우리가 신뢰할만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아마도, 숫자=과학이라는 프레임이 적용하는 것이리라.

또 숫자는 말에 대한 대척점에 서 있다.

말과 언어는 분명 인류 문명을 만들어내고 인간을 다른 종과 구별시킨 확실한 역할을 해 왔지만 우리는 말이 진실을 왜곡하기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거짓말’이라는 확실한 단어는 있지만 ‘거짓숫자’라는 단어는 없다.

말을 떠올리면 직감, 느낌, 감정, 표현 등의 단어와 연관되어 생각하게 되지 숫자처럼 정확, 과학이라는 단어와 연관되어 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말보다 숫자로 얘기할 때, 더 신뢰를 갖게 된다.

위에서 얘기했듯이 숫자가 주는 힘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더 숫자를 많이 사용하게 되고, 말하는 사람은 숫자로 상대방을 설득시키고자 하며, 듣는 사람도 숫자를 가져오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런데 사실 구체적인 숫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조작 또한 쉽다.

따라서, 어떠한 상황을 구체적이고 완벽하게 구성하여 거짓말을 누군가 한다면 듣는 사람은 그 허점을 찾으려고 엄청난 노력을 하는데, 누군가 숫자를 살짝 조작해서 제시하면 듣는 사람은 오히려 아무 의심 없이 그것들을 바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결국 숫자로 사람을 속이기 매우 쉬운 세상이라는 점은 우리가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이제는 숫자에 속지 말자고, 제시된 숫자에서 진실을 가려내자고 하는 목소리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그러한 현상 때문에 요새 출판되는 책들이 ‘위험한 숫자들’, ‘숫자에 속지 않고 숫자 읽는 법’, ‘숫자는 거짓말을 한다’ 등이다.

그럼 사람들이 어떻게 숫자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헛소리를 할 수 있을까?

첫 번째는 말 그대로 숫자를 조작하는 경우이다.

자신의 입맞에 맞게 데이터를 조작하는 일로 사실 이는 범죄 행위에 해당한다.

의외로 명예를 얻고자 하는 과학자들이 많이 하는 방법인데, 명예라기보다는 본인의 주장을 성공으로 만들면서 따라오는 연구개발비 때문에 행하는 경우가 많다.

아주 먼 시간을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에서 황우석 사태도 있었고, 최근 유명한 사례로는 2019년도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수상자 그렉 서멘자 미 존스홉킨스 의대 교수 사건이 있다.

2022년 10월 24일 네이처 기사에 따르면 서멘자 교수가 작성한 여러 논문들에 대해 이미지와 데이터 조작 의혹 등 문제 제기가 잇따르고 있어서 일부 학술지들이 지난 10년간 발표한 논문 17편에 대해 아예 게재 철회하거나 수정 또는 우려를 표명한 상태라고 하며 그 외 주저자 및 공저자인 총 32건의 논문이 조사를 받고 있는 상태라고도 한다.

두 번째는 숫자로 표현 방식을 바꾸는 방법이다.

의미를 전달하는 사람이 흔히 얘기하는 ‘프레이밍’을 통해 숫자의 표현 방식을 바꿈으로써 자신의 의도대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보자.

전국 시도별 범죄자 수를 발표해야 한다고 하자, 한 지방 도시 A는 인구가 30만 명이고 그 도시 출신 범죄자 수는 2000명이라고 한다면 그 시의 책임자는 어떻게 말할까? ‘우리 A 시의 인구의 1%도 안되는 0.6%만이 범죄자입니다’라고 하는 편이 ‘우리 A시에는 범죄자가 2000명 있습니다’ 라고 표현하는 것이 훨씬 낫다.

기업의 경우 매년 투자자를 위시한 다른 사람들에게 실적 발표를 해야만 할 때가 있다.

만약 벤처기업이 전년도 매출이 1억이었다가 올해 3억을 달성하게 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회사 매출이 전년 대비 200% 성장하였다고 말하는 것과 3배 이상 올랐다고 말하는 것, 마지막으로 전년 대비 2억 올랐다고 말하는 것 3가지 중 어떤 표현을 썼을 때 과연 투자자의 마음을 더 사로잡을 수 있을까?

장담컨대 마지막 3번째 경우는 아니다.

내가 요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위스키 사례를 하나 더 들어보자.

흔히 버번(Bourbon)의 끝판왕이라고 불리우는 미국 켄터키주 위스키인 ‘패피 반 윙클’ (Pappy Van Winkle)은 숙성 과정에서 처음 통에 담은 양의 58%가 증발되어 사라진다고 한다.

이를 58이라는 숫자보다 더 크게 만드는 마법을 부려보자.

58%가 사라진다는 얘기는 최초에서 42%가 남는다는 얘기와 같다.

그러면 42% 남은 양이 위스키로 만들어지는 셈인데 사라진 58%는 술로 만들어진 남아 있는 양인 42% 대비 1.38배가 많다. (52÷48을 하면 된다).

다시 정리하자면 술로 만들어진 양보다 1.38배가 많은 양이 숙성과정에서 증발된 것이다.

마지막 화룡점정으로 1.38배는 138%와 같은 뜻이므로 우리는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패피 반 윙클 1리터를 만들 때 138%가 공중으로 사라집니다.’

같은 %를 단위로 표현하더라도 전자는 처음 양을 기준으로 했고 후자는 남은 양을 기준으로 계산했더니 전혀 다른 숫자가 나와서 훨씬 더 큰 손실을 본 것처럼 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얼마나 귀한 술인지를 여실히 깨닫게 만드는 마법을 부렸다.

다시 말하지만 첫 번째 경우인 숫자 조작은 알아채기가 어렵다.

의심을 가지고 원 자료를 검토하고 통계 분석 방법과 결과까지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

그러나 두 번째 경우인 숫자를 프레이밍을 씌워서 의도를 가지고 말하는 것은 잠깐의 생각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잠깐의 생각이 사실은 훈련이 되어 있어야지만 가능할텐데, 이 훈련이라 함은 이 숫자를 다른 표현 방법으로 바꿔서 나타내는 훈련이다.

절대값들을 상대값들로, 크기를 나타내는 숫자들을 비중을 표현하는 숫자로 바꾸는 그런 훈련인데, 몇 번만 하다보면 충분히 할 수 있는 훈련이고, 이 훈련을 해야지만 우리는 숫자로 헛소리하는 정부나, 지자체, 기업의 헛소리에 속아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

※ 필자소개 :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2000년대 초반부터 기업의 전략, 마케팅과 스포츠 마케팅, 공공부문의 정책입안 등 다양한 컨설팅 업무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컨설팅 결과가 인간의 심리나 행동을 잘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고민을 하던 중, 행동경제학자인 서울대 최승주교수와 빅데이터분석 권위자인 한양대 강형구 교수와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이후 정부와 기업 대상 행동경제학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강연 및 행동경제학 관련 칼럼과 영상을 통해 행동경제학을 보다 알기 쉽게 전파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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