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베이징/전순기 통신원 】 중국은 지난 세기 말까지만 해도 덩치에 걸맞지 않게 극강의 강대국과는 거리가 한참이나 멀었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같은 유럽의 주요 국가들에도 감히 들이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당시의 외교 정책이 이른바 도광양회(韜光養晦. 실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였던 것은 다 까닭이 있었다. 하지만 이후 국력이 급격하게 막강해지면서 상황은 변하기 시작했다.

도광양회가 유소작위(有所作爲·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한다)로 슬그머니 변하는 것은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급기야 수년 전부터는 전투적, 공격적 뉘앙스가 다분한 전랑(戰狼. 늑대 전사) 외교가 중국을 대표하는 대외 전략이 되기에 이르렀다.

지금은 아예 ‘중국 외교=전랑 외교’라는 등식이 아주 확고하게 정착됐다. 중국이 지난 2018년부터 미국의 강력한 압박에도 굳건하게 버티면서 G1이 되는 그날까지 이른바 ‘중국몽’에 올인하겠다는 행보를 보여주는 것은 다 까닭이 있지 않나 보인다.

중국의 전랑 외교 전도사로 불리는 친강 외교부장. 향후 미,중 및 한,중 관계가 밝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사진=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중국의 전랑 외교 전도사로 불리는 친강 외교부장. 향후 미,중 및 한,중 관계가 밝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사진=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중국의 이 전랑 외교를 최전선에서 진두지휘하는 컨트롤타워는 당연히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실무를 총괄하는 원톱 주인공은 따로 있다고 봐야 한다.

그가 바로 외교부 수장인 친강(秦剛. 57) 부장(장관)이다. 원톱이라고는 하나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지난해 말 10년 동안이나 재임했던 왕이(王毅·70) 정치국 위원의 후임으로 발탁됐으니 14억 대국 중국의 새내기 외교 수장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이를 보면 새내기라는 표현도 전혀 과하지 않다. 이는 외교부 내에 그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들이 하나둘이 아니라는 사실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당장 그를 제외할 경우 외교부 내의 가장 선임인 마자오쉬(馬朝旭) 부부장(차관)이 그렇다.

그보다 세 살이나 많다. 심지어 그는 한때는 자신의 선배였던 부장조리(차관보) 쉬페이훙(徐飛洪)보다 두 살이나 더 어리다. 어떻게 보면 벼락출세를 했다고도 볼 수 있다. 경험 부족이 우려될 수도 있지 않나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 누구보다도 전랑 외교에 최적화된 인물로 꼽힌다. 이력을 살펴보면 진짜 그렇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선 그는 베이징 주재 외신 특파원을 비롯한 외국 언론을 상대해야 하는 대변인을 두 차례나 역임했다.

그것도 10년이라는 최장수 기록까지 세우면서 유독 까칠하기로 소문난 베이징 특파원들을 가볍게 요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세 차례나 영국에 근무한 것이나 외교부장으로 임명되기 직전까지 미국 대사를 지낸 경험 역시 간단치 않다. 사실 두 나라는 중국에게 있어서는 거의 잠재적 적국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신냉전 상대국인 미국은 운명적인 적이라고 해도 좋다. 당연히 대사 재임 시절 미국 정부와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됐다.

그는 그러나 미국에 굴하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했다. 전임인 추이톈카이(崔天凱. 71) 전 대사가 부드러운 이미지를 통해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의 대미 외교를 한 것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스타일을 견지했다는 평가를 듣는 것은 다 이유가 있지 않았나 싶다. 이에 대해서는 런민(人民)대학 정치학과의 팡창핑(方長平) 교수의 설명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친 부장은 성격이 직선적이라고 해도 좋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 양보하지 않기도 한다. 미국과 맺은 좋은 관계로 인해 무려 8년 동안이나 현직에 있었던 추이 전 대사와는 180도 다르다. 미국 정부가 골치 아파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도 그의 스타일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미국이 더욱 골치를 앓아야 할 것 같다.”

팡 교수의 말에 비춰볼 때 앞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중국의 ‘전랑 외교’는 올해도 중단 없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심지어 더욱 강화될 가능성까지 없지 않아 보인다. 올해 역시 중미 관계 등이 크게 개선되지 않은 채 껄끄러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외교부장 승진으로 자신이 전랑 외교의 상징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증명한 친 부장은 베이징 인근 대도시 톈진(天津)시 출신으로 외교관을 많이 배출하기로 유명한 국제관계학원 국제정치학원에서 수학했다.

졸업 후에는 바로 외교부에 입부, 통역으로 일했다. 1995년에 최초로 영국 근무를 시작해 경력을 쌓은 다음에는 서구사(서유럽국)에서 처장까지 지냈다. 이후 다시 영국 근무를 하고 돌아와 그와 질긴 인연이라고 할 수 있는 대변인으로 일하게 된다.

그는 외부인들이 볼 때 벼락출세를 했다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두 번째 대변인을 마친 2014년 예빈사(의전국) 사장으로 약 5년 동안 근무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출세지향적인 시각으로 보면 그 자리는 한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고 나름 열심히 일했다. 결국 자신이 작심하고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시진핑 주석의 눈에 확실하게 들면서 출세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2018년 8월 5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외교부 부부장으로 고속 승진할 수 있었다. 또 2021년 7월에는 출세 코스인 중국의 11대 주미 대사로 취임하면서 승승장구를 예고하기도 했다.

외교부 대변인을 역임한 이력만 놓고 보면 그는 부드럽고 신사적인 인물이라는 선입견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국제 외교가의 평가는 완전히 다르다.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이 진짜 전랑 외교에 딱 들어맞는 인물로 소문이 자자하다.

글로벌 반중 네트워크 구축을 거의 완성한 미국에 적극 대응해야 하는 중국 입장에서 그를 부장으로 앉힌 것은 최선의 선택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과의 관계에서도 중국 국익을 대변하는데 강경한 입장을 보인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 정부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도입을 공식화하기 전인 2014년 5월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가 아시아의 전략적 균형에 도움이 안된다.”고 한국 정부에 경고한 것은 이런 그의 성향의 일단을 잘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그를 앞세운 중국의 전랑 외교는 앞으로도 죽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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