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근로 '주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 변경…근로시간저축계좌 도입 등 휴식권 보장
노동계·야당 반대에 입법까지 상당한 진통 예상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김동호 기자 】 정부가 현행 '주 52시간 근무'제도를 대폭 개선키로 했다.

정부는 우선 현재 1주일에 52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는 근무시간을 최대 69시간까지 허용키로 했다. 대신 지친 근로자들을 위해 장기간의 휴가 사용을 적극 권고키로 했다.

고용노동부 등 관계 부처는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열고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확정·발표했다.

정부는 지난 70년간 유지된 '1주 단위' 근로시간 제도가 불합리하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현재 주52시간 근무제도에 대해 "서비스업 중심으로 고도화되는 산업과 직업, 다양·개별화된 근로자 수요를 반영하지 못해 기업의 혁신과 개인의 행복추구를 방해한다"면서 "평소보다 바쁠 때 유연한 대응을 가로막고, 한사람이 한시간만 넘겨도 사업주는 범법자가 되고 근로자는 꼼수야근을 하는 불합리한 상황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자료=기획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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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현재 근무제도는 임금계산 편의 등을 이유로 소위 포괄임금 계약을 체결하고, 실제 일한만큼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공짜노동'이 만연한 상황이다.

특히 '1주 단위'의 획일적·경직적인 연장근로 규제로 일시적·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에 노사가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정부는 '주 52시간제'(기본 40시간+최대 연장 12시간)의 틀을 유지하되 '주' 단위의 연장근로 단위를 노사 합의를 거쳐 '월·분기·반기·연'으로도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럴 경우 단위 기준별 연장근로시간을 살펴보면 '월'은 52시간(12시간×4.345주), '분기'는 156시간, '반기'는 312시간, '연'은 624시간이 된다.

[자료=기획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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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정부는 장시간 연속 근로를 막고 실근로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분기'는 140시간(156시간의 90%), '반기'는 250시간(312시간의 80%), '연'은 440시간(624시간의 70%)만 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한도를 줄인다는 방침이다.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전체 근로시간을 관리하게 되면, 일이 많은 주에는 근로시간이 길어지고, 일이 적은 주에는 반대로 줄어 든다. 이 경우 한주에 최대 69시간까지 근로가 가능하다.

정부는 일을 마치고 다음 일하는 날까지 11시간 연속 휴식을 보장하기로 했기 때문에 하루 24시간 중 11시간 연속 휴식을 빼면 13시간이 남는다고 설명했다.

또 근로기준법상 4시간마다 30분씩 휴게시간이 보장되므로 13시간에서 1.5시간을 빼면 남는 근무시간은 11.5시간이다. 일주일에 하루는 쉰다고 가정하면 1주 최대 노동시간은 69시간(11.5시간×6일)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아울러 정부는 근로자들이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저축한 연장근로를 휴가로 적립한 뒤 기존 연차휴가에 더해 안식월 개념처럼 장기 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할때는 일하고 쉴때는 확실히 쉴수 있는 근무제도'가 마련된다. 

참고로 휴식권 보장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높아지고 있으나,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제도적‧문화적 여건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휴일·휴가일수(82~92일)는 주요국(80일 내외)과 비교해 많은 편이지만, 실제 연차 소진율은 76.1% 수준(’21년 기준, 근로자휴가조사)에 불과하다.

휴게시간 선택권도 강화한다. 

현재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4시간 일한 뒤에는 30분, 8시간 일한 뒤에는 1시간 이상 쉬어야 한다.

이 같은 규정에 따라 시간제, 반차 등으로 하루 4시간만 근무해야 하는데, 휴게 규정으로 인해 바로 퇴근하지 못하고 30분을 더 머물러야 하는 불편함이 발생했다.

이에 정부는 1일 근로시간이 4시간인 경우에는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30분 휴게 면제를 신청해 퇴근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를 신설했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모든 업종의 정산 기간을 3개월, 연구개발 업무의 경우 6개월로 확대된다.

근로기준법 제52조 상 선택 근로제는 1개월의 정산 기간 내 1주일 평균 52시간을 초과하지 않은 범위에서 근로자가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다.

근로자 필요에 따라 주4일제, 시차출퇴근 등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지만, 2021년 도입률은 6.2%에 불과하다.

정부는 이번 제도 개선으로 근로자가 근무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출퇴근 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한 탄력근로제의 실효성도 높인다는 계획이다.

근로자대표제도 개선한다.

고용형태나 일하는 방식이 다양화되면서 근로시간 등 주요 근로조건 결정 사항에 대한 근로자대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으나, 현행 근로기준법은 정의만 규정하고 있을 뿐, 선출절차·활동 등 관련 규정이 없어 현장에서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한 직종·직군별로 근로시간이나 업무방식에 확연한 차이가 있고, 이에 대한 근로자별 수요도 달라지면서, 근로자가 자기에 맞는 근로조건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과반수 노조(근로자의 과반수로 구성된 노조)가 있으면 과반수 노조가 근로자대표를 맡도록 하고, 과반수 노조가 없으면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이 근로자대표를 맡고,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도 없으면 직접·비밀·무기명 투표로 근로자대표를 선출토록 했다.

특정 직종·직군의 근로자를 뜻하는 '부분 근로자'에만 적용되는 사항에 대해서는 부분 근로자와 근로자대표가 협의해야 한다.

정부는 해당 근로개선안을 이달 중 입법 예고한 뒤 6월 중 국회에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한편, 정부의 이번 개편안을 놓고 재계과 노동계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이날 정부 안에 대해 "낡은 법·제도를 개선하는 노동개혁의 출발점"이라며 "경제의 발목을 잡아온 법·제도를 개선하는 것에 대해 환영한다"고 밝혔다.

또한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국내 기업 502개사를 대상으로 정부 노동시장 개혁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다수 기업은 근로시간 유연화와 임금 체계 개편 등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이 경영과 일자리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

응답 기업의 79.5%는 근로시간 유연화와 임금 체계 개편이 중심인 노동개혁이 기업 경영 활동과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고, 80% 이상의 기업이 신규 채용과 고용 안정 등 채용 시장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노동계는 물론 야권의 반대가 거셀 것으로 보여 입법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실제로 노동계에서는 이번 안이 '장시간 노동'이 확대로 인해 근로자들의 건강이 악화될수 있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지난달 내 놓은 논평에서 "11시간 연속 휴식 부여는 노동자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유일한 조치"라며 "(정부안은) 1주 55시간을 장시간 노동의 기준으로 삼는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에도 역행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이 일제히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어 실제 입법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이에 대해 경총은 "연장근로는 주문량 증가, 업무량 폭증 등 업무 집중이 필요한 경우 활용될 것"이라며 "극단적 사례를 들어 장시간 근로를 조장하거나 근로자 건강권을 해친다는 노동계 주장은 기우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경총은 "근로시간 유연화 조치가 산업현장에서 제대로 적용되기 위해서 노사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근로자 건강 조치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와 정치권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일자리 창출 기반을 확대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개편안 중에는 법을 고쳐야 하는 사안이 많다. 하지만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이 정부 개편안에 반대하고 있어 국회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편, 정부는 이번 개편에 대해 이날부터 다음 달 17일까지 40일간 입법 예고 기간을 거쳐 오는 6∼7월 근로기준법 등 관련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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