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행안부 산하 재단이 배상금 40억원 마련"
피해자 단체 "굴욕적" 반발...정부안 수용 거부
일본 피고 기업 재원 마련 참여 여부도 미지수

정부가 6일 '제3자 변제' 방식을 골자로 하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을 공식 발표했다. 서울 종로구 서울 종로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연합뉴스]
정부가 6일 '제3자 변제' 방식을 골자로 하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을 공식 발표했다. 서울 종로구 서울 종로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연합뉴스]

【뉴스퀘스트=민기홍 기자 】 정부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을 발표했다. 지난 2018년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이후 강제징용 기업 자산 현금화를 둘러싸고 4년4개월여 이어져왔던 한일 간 첨예한 공방을 끝낼 전기가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에 따른 일본 전범기업의 책임을 묻는 내용이 빠져 '반쪽짜리 해법'이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6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이 발표한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 정부안의 골자는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재원을 조성, 2018년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피고 기업(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 대신 판결금을 지급하는 ‘제3자 변제’ 방식이다.

정부에서는 그동안 일본 피고 기업 참여를 전제로 한 배상금 마련 방안을 추진했지만 일본 측의 완강한 반대로 동의를 얻지 못했다. 이번에 대안으로 '제3자 변제'를 해법으로 제시한 것이다. 일본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겠다는 복안이 담긴 해법이다. 하지만 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피고 기업이 재원 마련(기부)에 참여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징용 피해자는 15명이다. 이들은 일본제철, 히로시마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일한 피해자와 나고야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 등 3개 그룹이다.

이들에게 지급해야 할 배상금은 지연이자까지 합쳐 40억원 규모인 것으로 전해졌다. 배상 재원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청구권 자금(5억달러) 수혜를 입은 국내 기업이 출연하는 방향으로 양국의 합의가 이뤄졌다.

포스코를 비롯한 16개가량의 국내 청구권자금 수혜 기업들은 그동안 정부로부터 기부금 출연 요청을 받게 되면 구체적인 논의에 착수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따라서 관련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피고 기업인 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은 판결금 조성엔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이 판결금 조성에 참여하면 한국 대법원 판결을 수용하는 꼴이 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우리 정부에도 참여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한국이 배상금을 재단이 대신 지급하는 해결책을 공식 발표하면 일본 정부는 뜻이 있는 일본 기업의 재단 기부를 용인할 것이라는 일본 언론 보도가 나온 만큼 다른 방법이 모색될 것으로 보인다.

그중 하나가 피고 기업의 판결금 조성 참여가 불발된 대신 한일 양국 기업들이 '미래지향적' 취지의 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이다. 실제 한일 재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를 통해 미래세대와 청년을 위한 기금을 공동 조성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은 게이단렌에 소속돼 있는 기업이다.

서울 용산역광장에 세워진 강제징용 노동자상. [연합뉴스]
서울 용산역광장에 세워진 강제징용 노동자상. [연합뉴스]

우리 정부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 발표를 통해 그동안 한일 간 최대 현안이었던 강제징용 문제를 한국 주도로 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배상 문제 해결의 전기를 마련, 한일 관계를 4년여 전으로 복원하겠다는 의미다.

일본 정부도 이에 화답하는 형식의 구체적인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한국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 발표에 화답해 일본도 ‘역사 반성이 담긴 과거 담화’의 계승을 표명할 전망이다.

유력한 방법으로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의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것이다. 오부치 총리는 당시 이 선언을 통해 '과거 식민지배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했다.

또 대(對)한국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해제 및 수출관리 우대국 재지정,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문제 정상화 등 후속 조치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게이단렌 중심의 청소년 교류 사업도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가 해결 실마리를 보임에 따라 이달 중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방문으로 한일 셔틀외교를 복원하고, 5월 일본 히로시마 G7정상회의 참석(참관) 등을 계기로 한일 간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한다는 방침이다.

6일 광주 서구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사무실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가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한 정부의 징용 피해배상 문제 해결 방안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6일 광주 서구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사무실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가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한 정부의 징용 피해배상 문제 해결 방안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25년 넘게 이어져 온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국민적 공감대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한다는 여론의 반발이 문제다. 당장 일본 측 피고 기업의 배상 참여를 필수 조건으로 제시했던 피해 당사자와 유족, 피해자 단체는 ‘굴욕적 해법’이라며 정부안 수용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국민 감정도 호의적이지 않다.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만난 직장인 채모(46)씨는 “자존심 상한다. 마치 맞은 사람이 때린 사람에게 ‘치료비는 우리 집에서 알아서 해결할테니 나중에 갚든지 하고, 다시 친하게 지내자’라는 식”이라며 ”‘미래’를 지향하기에는 ‘과거’를 바라보는 시각에 너무 많은 간극이 있음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대일 외교에는 늘 ‘국민(반일) 감정’이 기저에 깔려 있어 이를 어떻게 설득하고 조율하는냐가 관건이자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해왔다. 이번 징용피해 배상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같은 특수성 때문에 정부의 고민도 결코 가볍지 않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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