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크레딧의 명과 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무하마드 유누스가 지난 2월 14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디자인랩에서 열린 서울 도시경쟁력 글로벌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무하마드 유누스가 지난 2월 14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디자인랩에서 열린 서울 도시경쟁력 글로벌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안치용 ESG연구소장 】'마이크로크레딧'이 마냥 순기능의 역할을 한 것만은 아니었다.

원래 가난한 사람들의 자활을 돕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 1990년대에 들어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면서 지나친 상업화 경향을 나타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부 마이크로크레딧 기관이 고리대금업자와 비슷한 정도로 높은 이자율을 부과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대출을 무리하게 받은 저소득층이 상환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현실이 알려졌다.

2010년에 인도 안드라 프라데시에서는 부채로 고통받던 주민 200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주정부는 소액대출회사가 과도한 부채를 부추기고 차용인을 너무 가혹하게 압박한 것이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그해 10월 15일 안드라 프라데시 주정부는 소액대출 기관의 수금인이 차용인을 찾아가는 것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마이크로크레딧 기관이 과도한 이자를 부과하기 시작하면서 쉽게 돈을 빌리는 것이 부채의 늪에 빠져 가난의 악순환을 반복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마이크로크레딧 기관을 감시하는 방글라데시 정부 산하기구인 PKSF의 회장 카지 아마드는 “소액대출이 가난한 사람에게 죽음의 덫이 될 수 있다”고 경고 하기도 했다.

카지는 이어 “가난한 사람들이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손쉽게 대출을 받는 사례가 많으며 대출자의 60%가 대출상환에 대한 고려없이 여러 곳에서 대출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라민은행도 이와 같은 비판을 피해가지 못했다.

한 때 전 세계적으로 칭송받은 유누스는 일부 방글라데시 국민들로부터 사채업자 유누스라고 불리며 '가난을 팔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2011년에 보도된 ‘뉴욕타임즈’ 기사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총리 세이크 하시나는 유뉴스의 소액대출이 빈곤 완화라는 명목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다고 비난했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미국 오리건대 교수 라미아 카림이 현지 조사를 통해 집필한 책 ‘가난을 팝니다’는 혁명적 대안으로 불리는 마이크로크레딧의 실상을 폭로하고 있다.

저자는 치타공 마을을 방문, 유누스가 그라민은행을 시작하는 계기가 된 소피아 가족을 직접 만났다.

기대와 달리 저자가 목격한 소피아 가족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라민은행은 소피아의 이야기를 이용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소피아는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카림은 그라민은행을 비롯 이른 바 착한 자본주의가 결코 신자유주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착한 일은 이윤의 극대화와 결합되었으며 토지, 물, 식량 등에 관한 구조적 개선없이 이윤과 소비자 확대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방식과 다를 것이 없는 접근법에 치중했다고 비판했다.

그라민은행이 내세우는 높은 회수율의 이면도 폭로했다. 대표적으로는 강압에 의한 회수였다.

대출 담당자는 회수율을 높게 유지하라는 상부의 압박을 받았고 채무자는 빚을 상환하기 위해 다른 기관에서 또 다른 대출을 받기도 했다.

빚을 갚지 못하면 집을 부순 뒤 그 자재를 팔아 상환하는 상상을 초월한 사례까지 나타났다. 그라민은행이 높은 상환율을 기록한 이면의 참담한 현실이었다. 이는 고리대금업자의 횡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카림은 그라민은행이 강조한 빈민여성의 삶에 대한 질 개선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물론 그라민은행의 소액대출 사업이 가난한 여성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여성이 대출을 받았지만 실제 사용자는 대부분 남성이었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특히 농촌 지역의 여성은 실질적인 자본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비록 여성이 주요 대출 대상이지만 많은 남편들이 일단 그들의 아내가 돈을 빌리면 통제권을 주장하기 때문에 종종 남성이 실질적인 수혜자였다.

즉 여성의 권리 향상을 기한다는 목표를 표방했지만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강력하게 결합한 사회에서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가난하고 취약한 여성을 대출 시장으로 내 몬것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저소득 저신용의 금융 취약층은 여전히 많다. 적절한 금융지원 없이 이들이 가난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정부, 금융기관, 사회가 이들에 관심을 가지고 포용적 금융을 강구해야 한다는데 이견은 없다.

그라민은행의 소액대출이 빈곤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했지만 금융약자를 보호하려는 포용적 금융 운동을 세계에 널리 전파한 공로는 인정받아야 한다.

마이크로크레딧에 관한 유럽의 행동 강령은 마이크로크레딧의 모범사례를 수립하고 운영 및 보고 표준을 파악한다.

행동강령은 고객 및 투자자, 거버넌스, 리스크관리, 보고 표준, 관리정보 시스템까지 크게 5개의 카테고리로 나뉜다.

궁극적으로 이 행동강령은 마이크로크레딧이 사회에 제공할 수 있는 뛰어난 가능성을 인식하고 소액금융의 지속가능한 관행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것이다.

안치용 ESG연구소장
안치용 ESG연구소장

지나친 상업화 경향과 함께 급속히 증가한 마이크로크레딧 기업은 저마다 각기 다른 규칙을 만들었고 견제가 어려웠다.

일각의 부정적 관행에도 불구하고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마이크로크레딧 제도의 정착과 확산에 관한 실험과 논의는 계속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가난한 사람은 계속 금융서비스에서 소외되고 제외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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