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근의 과기누설(61)
바이러스들, 잠에서 깨어나 인류 위협할 수도
동토의 3만 년 된 바이러스, 생물체 감염 능력 확인
이미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와 미라 바이러스 부활 가능, 실험 통해 확인
“인류의 역사는 바이러스와의 투쟁의 역사” 실감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 기자】 처음으로 ‘대전쟁(Great War)’이라는 명칭이 붙은 세계 제1차 대전은 미국의 참전으로 결국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승자도 패자도 없는 참혹한 싸움으로 결말이 난 전쟁이었다.

이 전쟁이 끝나게 된 이면에는 심각한 바이러스가 자리하고 있다. 연합군, 동맹군 할 것 없이 엄청난 군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감기 바이러스 스페인 독감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1918년 유럽과 심지어 미국에서 무려 70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생명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의 진실을 밝혀 내기 위해 당시의 바이러스를 부활시킨 학자는 미국 육군 병리학연구소의 제프리 토벤버거 박사다.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 부활에 이미 성공

그는 2008년 미국 알래스카에 묻혀 있던 한 스페인독감 여성 희생자의 폐 조직을 채취한 뒤, 여기서 이 바이러스의 8개 유전자 배열을 재구성하는 데 성공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가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알게 된 그는 “자연은 언제든지 무서운 테러리스트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자연에 존재하는 바이러스와 세균이 얼마나 위험한 공격자로 변할 수 있는지를 암시하는 내용이다. 자연에서는 항상 변이가 일어나며, 인간의 면역체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변종들이 언제든지 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베리아를 비롯한 북극의 얼어붙은 영구 동토(凍土)에는 많은 바이러스들이 묻혀 있다. 그러나 온난화와 함께 얼어붙은 이 땅이 녹기 시작하면서 휴면 중인 바이러스들이 기지개를 펴고 있다.

이 바이러스들이 부활하면 어떤 문제들이 발생할까? 인간의 건강에 어떠한 위협으로 다가올까? 결코 공상과학소설 이야기가 아니다. 온난화로 바로 우리 목전에 다가온 현실이다.

프랑스, 러시아, 그리고 독일 기후 과학자들로 이루어진 공동 연구팀은 영구 동토층에서 수만 년 동안 잠복해 있던 고대 바이러스가 되살아나 단세포 생물체인 아메바를 감염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고대 바이러스가 새로운 능력을 발휘해 다세포 동물인 인간을 비롯해 살아 있는 생물체를 감염시킬 수 있다는 끔찍한 내용을 시사한다.

3만년 잠자던 영구 동토 바이러스들, 실험결과 생물체 감염시킬 수 있는 것 확인

공개 사이트인 학술지 ‘바이러스(Viruses)’ 최근호에 발표된 이 논문에서 공동 연구팀은 시베리아의 영구 동토층에서 여러 개의 거대한 바이러스 표본을 수집한 후, 이들이 여전히 현생 생물체들을 감염시킬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테스트했다.

이전의 연구들에 따르면 영구 동토층은 이 속에 있는 바이러스들의 출현을 막는 훌륭한 방부제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북반구의 영구 동토층에서 많은 냉동된 멸종 동물의 사체들이 추출되었다. 이전의 연구는 또한 영구 동토층에 잠복해 있는 식물 씨앗들을 부활시켜 자랄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했다.

그리고 영구 동토층에 갇힌 바이러스와 박테리아가 되살아나면 숙주를 감염시킬 수 있다는 여러 증거들이 있다. 공동 연구팀이 새로운 작업을 통해 이러한 주장들을 확인하기 위해 실험에 착수한 것이다.

연구팀의 노력은 휴면 중인 3만년 된 바이러스가 다시 되살아날 수 있고 감염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2014년 연구에 대한 후속 조치였다.

기후변화로 시베리아를 비롯해 북극의 영구 동토층이 녹으면서 그 속에 있던 바이러스들이 유출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바이러스 판도라 상자가 본격적으로 열릴 경우 지구촌의 새로운 심각한 위험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진=픽사베이]

이 팀은 2015년에 바이러스를 되살려 아메바를 감염시키는 것을 확인한 바 있다. 연구팀은 다시 새로운 작업으로 시베리아 전역의 여러 영구 동토층에서 여러 개의 바이러스 표본을 수집해 실험실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러나 연구팀은 안전상의 이유로, 사람이나 다른 생물체는 제외하고, 소위 거대 바이러스와 아메바를 감염시킬 수 있는 바이러스만을 수집했다고 밝혔다.

만약 사람이나 다른 동물들을 감염시킬 수 있는 바이러스를 부활시킬 경우 안전상의 문제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출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온난화로 바이러스 판도라 상자 열리나?

연구팀은 바이러스 샘플들을 되살리는 과정에서 그들이 여전히 아메바를 감염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바이러스의 생명력이 끈질기다는 것도 발견했다. 그들은 또한 샘플들이 발견된 영구 동토층의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을 통해 바이러스가 2만7000년에서 4만8500년 사이의 휴면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자신들의 발견이 훨씬 더 큰 문제를 암시한다고 경고했다. 지구가 따뜻해지면서 영구 동토층이 녹기 시작해 인간을 감염시킬 수 있는 바이러스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위협이 공상 과학 소설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들은 이에 앞서 1918년 독감 대유행 기간 동안 알래스카에서 사망한 여성의 폐 샘플에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발견해 부활시킨 과거 연구를 상기시켰다.

그리고 또 다른 연구팀은 시베리아에서 발견된 것으로 300년 동안 그곳에서 휴면 상태에 있던 미라 상태의 여성에게서 천연두와 관련된 바이러스를 발견했다.

우리는 다시 우리의 미래의 지평을 열고 이러한 의문을 던질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수만 년 전의 고대 바이러스가 지금 부활한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하고 말이다.

결코 구름 잡는 상상도 공상도 아니다. 바로 우리의 목전에 다가온 현실이다. 이제 동토층은 고대바이러스를 꼭 잡아 메어 출현을 막는 방부제가 아니다. 

온난화와 함께 바이러스들을 묶어 둔 바이러스 판도라 상자가 열리기 시작했다. “인류의 역사는 바이러스와의 투쟁의 역사”라는 것을 실감해야 하는 그 때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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