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자 시절 화폐개혁 실패로 트라우마
경제 행보 없이 김덕훈 총리에게 떠맡겨
식량난 위기 극복 실패시 애꿎은 희생양만...

식량증산을 촉구하는 북한 선전포스터. [사진=조선중앙통신]
식량증산을 촉구하는 북한 선전포스터. [사진=조선중앙통신]

【뉴스퀘스트=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 김정은이 믿을 건 군대뿐이었다. 대북제재와 코로나 사태, 식량난 등 퍼펙트 스톰에 가까운 심각한 경제난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1일 군대 투입이란 처방을 내린 것이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이날 평양에서 국방성 간부와 인민군 군종⋅군단 지휘관들이 참석하는 노동당 중앙군사위 제8기 5차 확대회의를 주재했다.

이 자리에서는 주요 경제현장에 군대를 파견해 “전국적 범위에서 강위력한 투쟁을 힘있게 조직⋅전개할 데 대한 문제”가 논의됐다고 한다.

김정은은 “우리 인민 군대는 마땅히 투쟁의 주체가 되고 본보기가 되어 제시된 (경제건설의) 단계별 목표들을 무조건 결사 관철함으로써 한해 또 한해 온 나라가 반기는 부흥의 실체를 반드시 안아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사자 속출’ 같은 심상치 않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지만 식량 긴급 수입⋅조달 같은 대책은 없이 군대를 투입해 ‘사회주의 농촌건설과 경제발전’ 같은 구호만 외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의 이런 움직임은 아버지인 김정일 통치 시기 선군정치를 떠올리게 한다.

모든 분야에서 군을 우선시한다는 의미의 ‘선군’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대의 최고 화두로 떠올랐다.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하고 이듬해 대홍수가 발생하는 등의 여파로 북한은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대기근과 집단 아사사태를 겪었다.

탈북⋅망명한 황장엽 노동당 전 비서는 “200~300만명이 굶어 죽었다”고 주장했고, 한⋅미 정보 당국도 46만명 가량이 아사했다고 판단할 정도의 대재앙이었다.

당시 김정일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군부대를 협동농장 등 농업현장과 산업시설에 파견했지만 성과는 별로 없었다. 전력난 등에 원자재난까지 겹겹인 난관에 군대의 전횡까지 더해지자 주민의 불만만 키웠다.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으로 27세의 나이에 절대 권력을 거머쥔 김정은도 초기에는 선군의 기치를 내세웠다. 핵과 경제건설을 병행한다는 경제⋅핵 병진 노선도 그 연장선에 있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수 년 만에 병진노선을 철회하고 핵과 미사일 개발에 올인하고 있다.

2018년 봄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싱가포르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까지 치달았지만 결국 ‘비핵화’의 사슬에서 스스로를 풀어내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이후 북한 경제는 핵⋅미사일이 자초한 강력한 제재와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끝없는 추락을 하고 있다.

김정은이 지시한 평양종합병원 건설과 강원도 원산의 대규모 해양리조트 프로젝트 등이 줄줄이 파산하거나 아예 실종돼는 극한의 상황을 맞은 것이다. 이른바 ‘1호사업’도 제대로 추진하기 어려운 건 심각한 국면이다.

김덕훈 북한 내각 총리가 지난해 10월 말 한 농장을 방문해 수확된 벼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김덕훈 북한 내각 총리가 지난해 10월 말 한 농장을 방문해 수확된 벼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김정은은 총리 김덕훈을 내세워 농업현장과 공장⋅기업소 현지시찰을 주도하도록 하고 있다. 자신은 미사일 시험발사나 대규모 정치행사와 공연관람 등에 치중하면서 경제는 총리가 책임지도록 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 분야는 평양 지역에 건설하는 뉴타운 성격의 아파트 단지 착공식에서 첫 삽을 뜨는 등의 상징적 행보에 머물고 있다.

이는 성과를 내기 어려운 경제문제에 손댔다가 낭패를 보기보다는 총리에게 맡겨 실패에 따른 리스크를 전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미 김정은은 후계자 시절인 2009년 11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가 장마당 돈주와 주민들의 거센 반발이 일자 철회하고 이듬해 봄 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에게 책임을 들씌워 처형한 바 있다.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그때의 트라우마 때문에 경제 문제에는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이고 당 간부들에게 떠넘기는 모습을 보인다는 분석이다.

벌써부터 ‘김덕훈 내각 총리가 희생양이 될 것’이란 얘기가 평양의 고위 간부들 사이에 입소문이 난다고 하니 또 한 번 피바람이 불까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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