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실험장 살던 탈북민 괴롭힌 ‘괴질’
“두통에 시도 때도 없이 코피 흘려”
함북 길주 출신 880여명 전수 조사

함북 길주군 풍계리 북핵 실험장의 갱도. [사진=연합뉴스]
함북 길주군 풍계리 북핵 실험장의 갱도.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 함북 길주 출신으로 2019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이 모 씨는 심장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아파 수면제 없이는 잠을 설친다.

인근 풍계리에서 벌어진 6차례의 핵실험을 모두 겪은 그는 “길주에 있을 때 병원 의사들이 길주에는 간암⋅위암 환자가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며 자신 또한 그 피해 때문인지 불안해하고 있다.

북한 핵 실험장은 해발 2012m의 만탑산 지역에 있다. 단단한 화강암 지대라고는 하지만 북한이 2006년 10월 첫 핵실험을 시작으로 이곳에서만 모두 6차례 갱도에서 실험을 벌렸다.

전문가들은 이로 인한 인공지진으로 ‘산맥 피로’ 현상이 생겨 방사능이 지하수를 통해 유출되거나 인근지역이 오염됐을 가능성을 제기해왔다. 산악지대에서 발원한 남대천이 길주군을 가로질러 김책시와 화대군 경계를 지나 동해로 흘러들기 때문이다.

탈북민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이 지역에선 핵 실험 이후 ‘귀신병’이라 불리는 괴질이 돌았다고 한다. 가만히 있어도 식은땀이 나고 이유 없이 앓는 사람이 생겨 “상문이 꼈다”는 수근거림이 나왔다는 것이다.

초상집에 다녀온 뒤 갑자기 알 수 없는 병에 걸리거나 급사하는 경우 귀신이 따라왔기 때문이라 여기는 속칭 ‘상문살(喪門煞)’이 난 것이란 얘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 가능성과 실태를 본격적으로 추적⋅분석한 연구보고서가 나와 사태 해결에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지 관심을 끌고 있다

풍계리와 인근 지역의 주민 거주 상황. [사진=TJWG 제공]
풍계리와 인근 지역의 주민 거주 상황. [사진=TJWG 제공]

대북 인권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은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핵 실험장 일대의 주민 54만명이 직간접적인 방사능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있다며 정부의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이 보고서는 풍계리 부근에 거주하는 북한 주민 수 십 만명에 대한 방사성 물질 전파 가능성을 지도에서 특정하는 ‘매핑(mapping)’ 작업 방식으로 작성됐다. 풍계리 인근 8개 시군(길주군·화대군·김책시·명간군·명천군·어랑군·단천시·백암군) 주민 약 108만 명 중 핵 실험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주민을 50%로 가정하면 약 54만 명에 이르는데 25%로 추산할 경우 약 27만 명이 피해군에 속할 수 있다는 게 보고서의 주장이다.

특히 농수산물과 송이버섯 등 지역 특산물의 밀수와 유통으로 북한 주민뿐 아니라 인접한 중국과 한국·일본의 국민들도 위험에 처할 수 있는 경로도 제시하고 있다.

보고서는 “중국 정부는 북한 방사성 물질 유출과 확산을 경계해왔지만 북한 농수산물의 밀수·유통을 근절하지 못하고 있으며, 한국 정부는 2015년 중국산으로 둔갑해 북한으로부터 수입된 능이버섯에서 기준치 9 배 이상의 방사성 세슘 동위원소를 검출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 발간과 관련해 통일부는 풍계리와 인근 지역 출신 탈북민에 대한 방사능 피폭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전수조사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귀축가 주목된다.

검사 대상은 탈북민은 모두 881명으로, 이들은 1차 핵실험 이후 길주군과 핵실험장 인근 지역에서 거주하다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사람들이다.

앞서 통일부는 2017~18년에도 길주군 및 인근 지역 탈북민 40명을 대상으로 방사선 피폭 검사를 실시했으며 9명에게서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하지만 핵실험으로 인한 방사능 오염의 인과관계가 확정되지 않는다면서 더 이상의 진행은 없었다. 이번엔 전수조사를 통해 탈북민들이 호소하는 ‘귀신병’의 실체를 규명하겠다는 뜻이다.

북한의 무모한 핵과 미사일에 대한 집착은 도를 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주말 가상의 전술핵 미사일을 동해 상공 800m에서 폭발시키는 훈련을 참관하고 “핵공격 태세를 완비하라”고 지시했다.

핵 실험장 인근 주민의 안전과 건강을 외면한 ‘귀신병’ 처럼 핵 공포는 이제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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