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평가를 어디까지 믿을까?

【뉴스퀘스트=이철형 와인 칼럼리스트】 ​전세계에 와인이 몇 종류나 있을까?

와인업계에 첫 입문하던 2000년에 필자가 읽은 1990년대 초반에 저술된 일본 와인 서적에는 약 50만 종이 있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저 와인을 평생 몇 가지나 마셔볼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 이후 알게 된 정보에 따르면 보르도에만도 와이너리가 약 8,000여개라고 하는데 각 사토별로 최소 10개 브랜드만 잡아도 8만개가 되고 샴페인 브랜드만도 몇 만종이라는데 겨우 50만종 밖에 안될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와인생산국에서의 1인당 와인 소비는 지난 3~40년간 꾸준히 감소해왔지만 전세계 와인 소비 시장은 반대로 연평균 3~5%씩 꾸준히 신장해왔다. 이것은 와인 생산은 꾸준히 증가했다는 것이고 이 말은 기존 생산자들이 기존 브랜드의 생산량을 늘린 것도 있겠지만 새로운 생산자들도 새로 많이 시장에 진입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에 1990년초반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는 중동부 유럽의 와인 생산자들의 부활을 가져왔고 심지어는 중국까지도 5대 와인 생산국에 진입할 정도로 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꽤 많은 국산와인 생산자들이 좋은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여 세계 품평회에서 입상을 할 정도이니 전체 와인 시장은 더 넓어져서 아마 지금은 백만종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든다.

당장 대형 마트 와인 코너에만 가봐도 그 많은 와인 브랜드에 눈이 휘둥그래질 지경이다.

국내 수입사도 최소 400~500개 정도는 될 것으로 추정되는데 상위 10개 회사는 최소한 브랜드 취급수가 300~700개는 되니 이들 상위 수입만으로도 국내 수입브랜드수는 최소 5~6천개는 된다. 

그러니 국내 수입되는 브랜드는 전체로는 최소 2~3만종은 될 것으로 추정된다.

와인의 종류가 많다는 것은 소비자입장에서 선택의 폭이 넓은 것이기에 좋기는 하나 많은 것도 정도 문제이지 너무 많으면 무엇을 골라야 할지 망설이게 된다.

다 마셔보고 내 입맛에 맞는 것을 고를 수 없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선택 장애를 일으킬 정도로 이렇게 많은 와인들 중에서 와인을 고를 때 기준이 무엇일까?

지인의 추천?

셀럽들이 마시는 와인?

대통령 만찬주에 나왔던 와인?

프랑스 보르도의 1등급부터 5등급까지의 61개 샤토 와인들?

매장 직원이나 소믈리에가 권하는 와인?

칼럼등을 통해 언론에 소개되는 와인?

직접 마셔보고 취향에 맞는 와인?

이중에 어떤 방식을 택하든 와인을 구매할 때 참고하는 것 중의 하나가 와인 평론가나 와인 전문 잡지, 혹은 세계적인 와인 품평회에서 평가해서 알려주는 점수나 등급일 것이다.

이런 품평에서 좋은 점수를 받거나 좋다고 평가된 와인들은 그래도 믿을 만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와인을 골라주는 사람이나 잡지, 조직인 셈이다.

조선시대에 세자빈을 고르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닌 채홍사의 역할이라고나 할까?

우선 선택의 폭을 줄여주니 소비자에게 도움이 된다.

하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입맛은 개인의 취향인데 그런 평가들이 과연 내 입맛과도 맞을까? 라는 의심이 살짝 든다. 사실이 그렇기도 하고.

또 하나 개인의 입맛도 경험치에 따라 달라지게 되는데 반드시 그들의 점수나 등급 지정을 믿어야 할까? 라는 생각도 들게 된다.

과연 유명 와인 평론가나 잡지, 와인 품평회의 점수나 등급을 얼마나 믿어야 할까?

필자는 필자가 마셔보지 않은 와인에 대해서는 해당 생산국가 출신 와인 평론가의 평가는 55% 정도로 믿는다. 약간은 믿으나 완전히 믿지는 못한다는 의미다.

하나 5% 정도 더 믿는 것은 그 지역 와인에 대한 전문가라는 점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세계 와인 품평회에서 전문가들을 만나보면 자기 나라 와인에 대해 점수를 우호적으로 더 많이 주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그 이유는 소위 ‘국뽕 정신’을 발휘하여 자기 나라 와인을 무조건 좋게 평가해서 라기보다는 그 전문가가 자기 나라 와인에 대한 경험치가 많으니 자국 와인에 대한 명확한 판단 기준이 정해져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일반 된장 요리를 먹어본 적은 있으나 청국장을 처음 먹어보게 되는 외국인의 경우 청국장 맛과 향에 대한 평가가 한국인만큼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한 것과 같은 이치다.

생소한 품종의 생소한 낯선 와인을 만났을 때는 기존 다른 품종의 익숙한 와인만을 기준으로 하여 평가한다는 것은 주관적 입맛으로 점수를 주는 것이니 덜 객관적일 수 있기에 고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와인은 각기 품종별 토양별 특성이 있는 것이고 그 특성을 제대로 표현해냈느냐가 객관적 기준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그렇다. 와인 평가자 입장이 되면 내 입맛에 맞고 안 맞고는 별개 문제인 것이다.

필자의 경우 와인 생산국 출신보다는 와인 수입국에 속한 전문가의 점수는 80% 정도로 믿는다.

80% 정도를 믿는 이유는 다양한 국가들의 와인을 마셔보았을 것이기에 국가간 비교를 통해 어느 정도 폭넓은 기준점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20% 정도 믿지 않는 구석을 두는 이유는 국적에 따라 음식과의 궁합까지를 고려하면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또 하나 아무리 객관적으로 평가하려고 한다고 해도 개인 취향의 차이도 어느 정도는 작용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개인 취향이라 함은 향의 강도와 다양성에 대한 선호와 신맛과 탄닌감의 강도나 조화에 대해 선호의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와인을 평가할 때 기준도 평가자나 평가 기구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숙성 가능성 정도를 고려하느냐 여부도 그 중의 하나다.

당장 마셔서 맛있는 와인이 있고 장기 숙성해서 마시면 좋아질 와인이 있다고 할 경우 이를 지금 당장 평가한다면 어떤 기준으로 평가해야 할까?

대개는 숙성 가능성은 배제하고 현재의 결함의 유무와 더 긍정적인 맛과 향의 존재와 다양성과 정도 등으로만 판단하기에 사실 지금의 평가가 평가 싯점이 달라지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같은 와인을 매년 평가해서 발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심지어는 브리딩이나 에어레이션의 가능성도 배제하고 평가하는 것이 대부분의 와인 평가회의 평가기준이다. 

유명한 개인 평론가를 제외하고는 전문평가기구의 평가의 경우에는 통상 5~8명의 와인 전문가들이 하나의 패널이 되어 평가하는 시스템이기에 평가 집단의 모수가 작다는 것도 때로 그만큼 부정확성을 높일 수 있다.

물론 전문가들을 엄선해서 모으기에 평가에 참여하는 인원수가 증가한다고 근본적인 평가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거라고는 생각한다.​

그럼 여기서 와인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와인 양조가/생산자, 와인 수입업 및 유통업 종사자, 소믈리에, 와인 칼럼니스트, 와인전문기자, 와인 양조학 교수, 와인 교육 기관 강사 등이 이에 해당한다. 와인업계 관련 종사자들인데 사실 10년 이상 와인을 다양하게 마신 와인 애호가들도 전문가라고 할 수는 있으나 와인 애호가들은 말 그대로 개인의 취향이 정해져 있을 가능성이 높아서 전문가임에도 와인 전문가 그룹에는 포함시키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대략 와인 평가들 사이에 점수차이가 두드러지게 많이 차이나는 경우는 많지는 않지만 분명히 가끔씩 나타나기도 하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헷갈리기도 한다.

자신의 취향과 유사한 평가자나 잡지, 와인 품평회를 선택하여 주로 그것의 평가를 참고하는 것도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면서 입맛에 맞는 와인을 선택하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믿을 만한 와인 평론가나 와인 전문 잡지, 와인 평가회 등의 점수를 참고하고자 할 경우에는 소비자가 먼저 와인을 마셔보고 나름의 점수를 준 다음에 평가 점수가 몇 점인 지 찾아 비교해보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몇 번을 반복하다 보면 자기와 유사한 점수를 주고 있는 평론가나 잡지를 발견하게 되고 그 다음부터는 그가 좋은 점수를 준 와인인지를 살펴보고 해당 와인을 선택하는 식인데 이렇게 하면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

허나 이런 것도 알고 보면 전문가의 함정이란 것을 피하기 어렵다.

와인 전문가들의 평가 기준은 일반 소비자들과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일반 소비자의 경우도 와인을 마셔본 경험에 따라 초심자냐 애호가냐 또는 그 중간 단계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실제로 와인 평가를 해보면 달라지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도 참고할 만한 기준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와인 선택에서 오는 아픈 실패의 경험을 줄여주는 것은 확실하다.

최소한 1차 내지 2차 필터링의 역할은 분명히 해준다.

실제로 와인 품평회에서 와인을 평가해보면 좋은 와인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더 느끼게 된다. 그래서 와인 평가의 세계에 대해 살펴보면 좋을 것 같아서 다음 몇 차례에 걸쳐서 와인 평가의 세계를 알아보고자 한다.​

다음 칼럼에서는 와인 평가의 세계 1편 와인 평론가 열전으로 20세기와 21세기 초반을 주름잡고있는 유명한 와인 평론가 2인중 한 명부터 시작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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