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 ‘동심초’의 원전은 당나라 때 여류시인 설도의 ‘춘망사(春望詞)’

【뉴스퀘스트=김승국 전통문화칼럼니스트 】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이별의 노래’ 등 주옥같은 수많은 한국 가곡을 작곡하였던 원로작곡가 김성태(1910~2012) 선생이 1945년 작곡한 가곡 ‘동심초(同心草)’ 1절이다. 하염없이 꽃잎이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어느 봄날, 임이 떠나간 동구 밖 언덕에 서서, 돌아올 기약 없는 임을 그리워하며 원망 어린 마음을 달래는 한 여인의 가련한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선연하게 보이는 듯한 노래다.

내가 이 노래를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시절이었다.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친구 누님이 우리 꼬맹이들 앞에서 불러주었던 노래다. 당시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했던 나로서는 꽃처럼 예뻤던 누님이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불러주던 모습에 정신이 나가버렸다.

그리고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우리 가곡의 아름다운 선율과 떠나간 임을 그리워하는 애절한 가사가 나의 정신 줄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하였다. 그로부터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고왔던 누님은 이제는 고인이 되었거나 파파 할머니가 되어있을 것이다.

가곡 ‘동심초’ 가사의 원전(原典)은 1천 년도 훨씬 더 된 중국 당나라 때의 명기이자 여류시인인 설도(薛濤: 770?-830?)의 한시(漢詩) ‘춘망사(春望詞)’ 4수(首) 중 제3수라 알려져 있다. 원작 시는 다음과 같다.

風花日將老(풍화일장로)

佳期猶渺渺(가기유묘묘)

不結同心人(불결동심인)

空結同心草(공결동심초)

바람에 꽃잎은 날로 시들고

꽃다운 기약은 아득만 한데

한마음 그대와 맺지 못하고

공연히 동심초만 맺고 있다네

설도의 한시를 김억(金億:1896~?)이라는 천재적인 우리 시인이 아름답게 번역하여 내놓았는데 그것이 오늘날의 가곡 ‘동심초’의 가사이다, 김억은 모두가 알다시피 민족시인 김소월의 시 스승으로서 한국 초기 시단을 이끌었던 대표적 시인으로서 호는 안서(岸曙)이다. 동심초의 원전인 춘망사(春望詞)는 1200년 전의 중국의 여류시인이 쓴 글이지만, 잃어버린 사랑을 그리워하는 사람의 심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조선조 여류시인 이옥봉의 ‘몽혼(夢魂)’, 설도의 ‘춘망사’에 비견

조선 중기 여류시인 이옥봉(李玉峯·?~1592) 또한 임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한시(漢詩)로 써 내려간 몽혼(夢魂)은 설도의 시에 비견된다.

近來安否問如何(근래안부문여하)

月到紗窓妾恨多(월도사창첩한다)

若使夢魂行有跡(약사몽혼행유적)

門前石路半成砂(문전석로반성사)

요즈음 어찌 지내시나요, 안부를 묻습니다

달그림자 창으로 오르면 그리움이 깊습니다

꿈속에 헤맨 길에 내 발자국 남았다면

집 앞 돌길은 문 앞 돌길이 반은 모래가 되었을 거예요.

나는 누가 내게 알려주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동심초’ 가사의 원작자가 율곡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이라고 말해주었던 것을 오랫동안 그대로 믿고 지냈다. 그런데 우연히 인터넷 여행을 하다 원작자가 중국의 여류시인 설도(薛濤)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내게 잘못 알려준 이는 신사임당을 추켜 올리려는 시도가 과했었나 보다.

벚꽃은 만개할 때도 아름답지만 바람에 꽃잎이 흩날려 떨어질 때도 아름답다. 오늘처럼 만개한 벚꽃잎이 바람에 흩날려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면 수십 년 전 친구 누님이 불러주던 가곡 ‘동심초’를 나도 모르게 흥얼거려진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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