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근의 과기누설(63)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기자】 미국의 TV 다큐로도 유명한 ‘역사를 찾아서(In Search of History)’라는 책을 쓴 시어도오 화이트(Theodore H. White, 1915~ 1986)는 정치 전문기자로 명성이 자자한 타임지의 저널리스트였다.

2차 대전 당시에는 종군 기자로 이름을 날렸다. 역사가이자 저술가인 그는 또한 1960년 미 대통령 선거(케네디가 후보로 나왔다)를 시작으로 4번의 대선을 취재하면서 “과연 무엇이 대통령을 만드는가”에 대해 예리한 필체를 유감없이 발휘해 이목을 끌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를 ‘정치 기사의 대부’로 극찬할 정도였다. 그래서 어느 곳을 가던지 그는 극빈 대우를 받았다.

종교적으로 돼지고기를 부정한 한 미국의 언론인의 에피소드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유대교에 철저하고 독실한 유대인인 그는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신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늘 생각해 왔다. 사실 이러한 전통은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 모두에게 해당된다.

그런 그가 돼지고기 요리의 본고장인 중국에 와서 몇 달을 체류하게 되었다. 당연히 많은 사람을 접해야 한다. 그래서 아마 꽤 고통스러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중국 공산당의 외교 총책인 저우언라이(周恩來) 국무원 총리가 그를 초청하여 만찬을 베풀었다. 식탁 가운데에는 화려한 황금빛 색깔의 통돼지구이인 췌이피르우주(脆皮乳猪)가 놓여 있었다.

저우언라이는 전통적인 중국인의 식사 예법에 따라 고기 한점을 집어 들고 먹기를 권하였다. 유대인인 화이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처하여 진 땀을 흘리며 계속 사양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화이트는 "실은 우리 집은 정통파의 유대교로 계율에 따라 돼지고기는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계속 거부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화이트에게 돼지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그의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는 커다란 불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연회의 분위기가 식어버렸다.

저우언라이는 정치와 외교의 교수만이 아니라 설득의 교수였다. 특유의 재치를 발 휘하였다. “드시지요. 여기는 중국입니다. 중국에서는 이것은 돼지고기가 아니라 선생님이 좋아하는 오리 고기입니다.” 유대인이 즐기는 오리를 등장시킨 것이다.

참석자들은 모두 크게 웃었다. 화이트도 용기를 내어 몇 점을 입에 집어넣었다. 훗날 그는 그때교리에 어긋난 짓을 했다는 이유로 하나님에게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그러나 뛰어난 맛에는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후에도 종종 돼지고기를 입에 댔다고 한다. 누가 “뻥”치고 “초”친 이야긴 지는 모르지만 ‘정치인의 술자리’와 함께 종종 회자되는 이야기다.

중국과 우리나라는 황사와 분진제거에 효과 있다고 믿어

다소 주춤하고 있지만 황사가 며칠째 기승을 부리며 한반도를 공략하고 있다. 황사에 국내 미세먼지가 가세하면서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사람들은 돼지고기가 황사와 미세먼지, 그리고 중금속 입자를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돼지고기가 분진(粉塵)과 납과 같은 중금속 제거에 좋다는 믿음은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자료에 따르면 황사가 밀려오는 봄철의 돼지고기 소비량이 보통 때보다 다소 많다고 한다.

물론 따지자면 황사나 미세먼지를 씻어내는데 돼지고기가 좋다는 믿음보다 과학적으로 잘 고안된 마스크가 더 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당연하다. 훌륭한 마스크를 버리고 돼지고기에 의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약과 음식은 그 근원이 같아서 좋은 음식은 약과 같은 효능을 낸다는 약식동원(藥食東原)이라는 사고는 중국에서 비롯된 오랜 전통이다.

Open Rice
황금 빛의 통돼지구이인 췌이피르우주(脆皮乳猪)는 오늘날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 가운데 하나다. 중국은 전세계 돼지고기 생산과 소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사진=Open Rice]

우리나라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어떤 것을 먹으면 어디에 좋고, 어떤 것은 좋지 않다는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쉽게 들을 수 있다.

오늘날 돼지고기는 중국전체를 석권하고 있고, 중국은 전 세계 돼지고기의 생산과 소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요리에 육(肉)이라는 글자가 붙으면 모두 돼지고기다. 우리나라에서도 돼지고기는 전체 육류 소비량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돼지고기를 선호한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돼지고기는 영양 면에서도 좋지만, 특히 폐와 다른 장기들을 깨끗이 하는 분해효소가 많기 때문에 물이 깨끗하지 않고 위생적으로 불결한 환경에 사는 중국인들이 많이 먹는다는 것이다.

옛날 신문사 식자공들도 일 끝나면 삼겹살 즐겨

아득한 옛날 이야기가 돼 버렸다. “납 가루가 목구멍 넘어가기 전에 돼지고기를 먹어야 할 것 아 냐?” 일이 빨리 안 끝나고 늘어질 때면 인쇄공들이 토해내던 불만이다.

필자는 직접 목격한 경우다. 당시 영자신문 코리아헤럴드 식자공들이 일이 끝난 후 종종 식당을 가기에는 비싸서 그런지 모여 앉아 프라이팬에 삼겹살을 구우면서 소주를 곁들이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같이 먹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납을 녹여 활자를 만들던 시대가 지났으니 신문사나 인쇄소에서 납중독을 피하기 위해 마감 후 돼지고기를 굽는 풍경도 사라졌다.

그러나 지금까지 여전한 곳도 많다. 탄광촌 광부들은 돼지고기를 구워 먹으며 검은 가래를 없앤다고 한다. 진폐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적어도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는 없다. 그러나 황사와 미세먼지에 좋다는 돼지고기가 많이 팔리고 어려운 농가에 보탬이 된다면 반가운 일이다.

또 짱구를 굴려 얄궂게 표현해서 돼지고기의 효능이 황사에 좋다고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 아니지만, 또 과학적으로 부정한 경우도 없다는 것에 후한 점수를 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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