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와 역사화에 대한 뛰어난 발자취 수 없이 남겨...

정현웅 화가의 '꿈'(34.5/25 1967년)
정현웅 화가의 '꿈'(34.5/25 1967년)

【뉴스퀘스트=정형렬 갤러리피코 대표 】

▲꿈(34.5-25 1967년 종이에 유화)

<꿈>에서는 그의 동심에 대한 찬란한 색조의 꿈결 같은 장면이 환상적이고도 신비스런 감흥으로 포착되어 있다. 전체적인 색조는 화려하면서도 강렬한 가운데 바탕면과 아이의 얼굴, 그리고 모자와 베개, 웃옷 등이 마치 한 몸과도 같은 통일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빈센트 반 고호의 그림에서도 볼 수 있는 화면 위에 물감이 마른 후에 덧칠하는 웻트 온 드라이(Wet on Dry) 기법도 엿볼 수 있으나, 겹침과 겹침 위로 화려한 원색의 채색이 곳곳에 드러나 있는 병치혼합 기법이 섞여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 그림 화면의 가운데에는 두 개의 선이 보이고 대칭의 구획을 이룬다. 이는 다름 아니라 하드커버의 책 표지 위에 그린 그림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캔버스나 목판 재질의 화판이 귀해서 이와는 다른 종이 재질 위에 그린 유화 그림일 수도 있겠지만, 그의 당대 미술계의 위상을 감안해 보았을 때는 예술가로서의 억누르기 힘든 감흥을 즉흥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임시적인 화판을 만들어서라도 이를 즉각 실현해 옮긴 것으로 판단된다.

그림 속의 인물은 울긋불긋 화려한 털실의 방울 모자를 쓴 채로 밖에서 실컷 놀다 들어온 채로 달콤한 피곤에 지쳐 새근새근 꿈나라로 여행을 떠나버린 소녀 아이다. 귀엽고 탐스러운 방울털 모자와 함께 색감과 무늬가 잘 조화를 이루는 알록달록한 베갯잇의 그윽한 표현력에서 대가의 기(氣)와 정통함이 느껴진다.

천진난만하게 잠자는 행복한 아이의 모습에서는 어머니의 따뜻한 모성과 정성어린 배려의 손길이 읽혀진다. 아이의 얼굴 만으로는 남자 아이인지 여자 아이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빨간색 털실의 외투로 보아 여자 어린이임을 짐작케 해준다.

전체적으로 바탕과 묘사된 오브제(Objet)들은 웻트 온 드라이(Wet on Dry) 기법으로 그려진 반면 아이의 얼굴 묘사에서는 순수 회화적 전통기법으로 채색함으로써 정현웅 화백의 감성 기법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보기 드문 수작이다.

이 그림은 한땀 한땀의 꿈결같은 환상 속에서 펼쳐지는 동화적인 파노라마를 연상시키며 어느덧 추억 여행 속에서 들려오는 기적소리의 환청에 잠기게 한다. 그리고 이 아이가 곧 어렷을 적 우리 자신임을 발견하게 해주는 따뜻한 작품이다.

정현웅 화가의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31/22 연대미상)
정현웅 화가의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31/22 연대미상)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31-22 연대미상 종이에 과슈)

정현웅의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는 비록 작은 화면이긴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우국지사의 애국 시민들을 위한 독립의식 고취를 위한 강연 장면이 담겨 있는 귀중한 항일운동 역사 시리즈물의 한 작품이다. 비밀 교육 장소에는 남녀노소가 모두 시선을 애국계몽 운동가에게 집중하고 강의를 경청하고 있다. 그는 민족혼을 일깨우고 독립정신을 불어넣으며 그 실천 방법론에 대해 열띤 강의를 실시하고 있다.

나라 잃은 백의민족의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진지한 자세로 독립운동가의 말씀에 몰입되어 있는 모습에서 희망의 씨앗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짙게 풍겨온다. 전체적으로 파스텔톤의 분위기가 지배적이어서 훈훈하고 부드러운 온기가 물씬 느껴진다. 문을 열고 들어오다 출입문가에 서서 강의를 듣는 소녀가 이 분의 딸인지는 몰라도 상당히 영특해 보인다.

열변을 토하고 있는 강연자는 한손엔 책을 들고 다른 손가락은 힘주어 액션을 보이며 혼신을 다하고 서 있어서 좌우 양쪽에서 비균형적 대칭을 이루고 있다. 동아일보 삽화가 재직시절 일장기 말살 사건에 연루되었던 작가의 이력에 비추어 볼 때 강연자의 정의로움에 불타는 모습은 작가의 젊은 시절을 연상시킨다.

정현웅 화가의 '소몰이(65/45 1965년 판화)
정현웅 화가의 '소몰이(65/45 1965년 판화)

 ▲정현웅 소몰이(65-45 1965년 판화)

정현웅의 소를 주제로 한 월북 이전 작품으로 우공(牛公)<1949년 1월 1일 작>에서는 우리의 전통 흑소의 이미지를 지니고 우직한 끈기와 밀리지 않는 뚝심, 그리고 강인한 기상을 발휘하는 숫소를 형상했다. 그외 1949년 단편소설 <소>와 1950년 김을진의 현상문예희곡가작 <소>에 삽화를 그린 작품들이 있다. 그리고 월북 이후에는 1963(5)년 판화 <소몰이>와 1968년 판화 <소관리공> 작품들이 있다.

정현웅은 1948년 「틀을 돌파하는 미술」에서 다음과 같은 명문을 남겼다. “틀을 깨고 인민 속으로 직접적으로 뛰어드는 가장 새롭고, 가장 강력한 미술 양식에 인쇄미술이 있다.” 이 판화 <소몰이>는 이 글의 연장선상에서 본 문장이 뜻하는 광휘를 눈부시게 발하는 그림이다. 이 아담하고 다부진 여인이 힘에 부치면서도 양손으로 억척스럽게 소를 몰고 가는 장면을 인간과 소, 소와 소의 관계 속에서 역동적이고 극적인 대비 효과를 살려내며 흥미롭게 묘사하였다.

색조에 있어서도 여인의 빨간 두건과 푸른 치마. 탄탄하고 윤기있는 살색과 흰 저고리, 그리고 무심하게 여인과 동행하는 군청빛깔의 흑소와 여인의 진을 빼며 안가려고 버팅기는 황소로 해서 6가지 칼라가 각각 대칭을 이루며 그림의 제재(題材)마다 선명하고 깔끔한 이미지를 제고하고 있다. 한편 이 판화의 디테일은 가히 명품이다. 특히나 소의 근육과 힘줄, 굴절된 뼈마디, 피부결과 땀구멍까지를 구석구석 표현함에 있어서 그 세밀함과 정치함은 대가의 따라올 수 없는 경지와 각고어린 장인정신을 돋보이게 한다.

◇정현웅(1911-1976)은 누구인가?

 

삽화작가(출판미술가), 미술평론가, 고구려 고분벽화 재현가, 동화작가, 역사화가, 일제시대 저항화가, 판화가 등 이 모든 명칭이 정현웅의 다재다능을 상징하는 타이틀이다. 일제시대 동아일보 기자이자 삽화가로서 명성을 떨치던 그는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살 사건 후 동아일보가 폐간되자 조선일보로 자리를 옮겨 수많은 명작들의 삽화를 그리면서 당시 우리의 삽화를 예술작품의 경지로 끌어올린 천재적인 재능의 소유자다.

또한 그는 당대의 미술평론가로서 지성적인 섬광이 번득이는 논평을 쏟어내며 우리 미술계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비전을 드러내었다. 그는 일제시대 41년 유화로 그린 저항작품 <대합실>에서 정든 고향을 떠나는 우리 민족의 서러움을 표현한 작품을 그려 전시하는 기개를 발휘하기도 했지만, 애석하게도 도판으로만 남아 있다.

그는 월북 후 우연히 발견한 고구려 고분 벽화의 재현에 사명감을 갖고 많은 제자들과 함께 모사작업에 십여년 진력한다. 이는 의도적이건 결과적이건 정치적인 풍랑 속에서도 그가 미술의 외길을 걷는데 안전한 방패막이가 되어 준다.

그는 남한에서도 동화와 역사화에 대한 뛰어난 발자취를 수 없이 남겼지만, 이는 월북 후에도 더욱 더 많은 후배와 제자들에게 칭송을 받으며 출판미술가로서의 독보적인 업적을 이어간다. 그는 <누구 키가 더 큰가>, <실뜨기>의 조선화 수상작들을 통하여 아동의 심성을 예리하고 재미 있게 묘사하고 애정어린 시선으로 동심의 세계를 탁월하게 표현하였다. 또한 <전주성 입성>, <거란군을 격퇴한 고려군> 등을 통하여 역사화가로서도 어느 분야에 못지 않은 상징적인 지위를 누린다.

정현웅은 일본에 미술 유학 도중 6개월도 채 안되어 학비 조달과 신체 쇠약 등의 문제로 중퇴하고 귀국하여 3년간 도시락을 싸들고 도서관에서 생활하며 세계문학전집을 독파하였다. 이 때의 독서량이 그가 남한에서 삽화가로서 역량을 배양하고 북한에서 역사화를 구상하고 역사적 인물들을 형상화하는 역사화가로서 대성하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특히 1960년대 중반 이전에는 삽화가나 유화가로서 활동했다면 그 이후부터는 주로 조선화가로서 소질을 발휘한다. 일찍이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와 모사에 월북 초기부터 10여 년간 헌신한 것도 조선화가로서의 자연스런 전환을 이루는데 지대한 도움을 주었다.

그는 조선화가로서 북한 미술사에 길이 남을 주옥같은 아동화들(청개구리 이야기, 누구 키가 더 큰가 등)과 역사화(전주성에 입성하는 동학군, 거란 침략자를 격멸하는 고려군 등)들을 탄생시킨다. 또한 1966년 제9회 국가미술전람회 조선화 입선작 ‘실뜨기’는 할머니와 손녀가 다정스럽게 눈을 맞추며 실뜨기하는 장면을 묘사한 정감어리고 서정미 넘치는 대표적 조선화로 꼽힌다.

그의 조선화 명작들은 은은하고 감미로운 색채 표현, 원숙하면서도 부드러운 필치의 선묘기법, 차분하면서도 재미있는 구성미가 돋보이며 우리를 동심으로 젖게 하는가 하면 역사의 생생한 현장 속으로 몰입시켜 감동을 안겨준다.

정현웅은 아이들을 너무나 좋아하여 고분벽화 모사 사절에도 동네 아이들과 춤을 추며 같이 어울려 놀아 그가 십수년이 흐른 후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 이제는 성인이 된 당시의 마을 꼬마들이 ‘고분 할아버지’가 왔다고 반갑게 맞아주며 기뻐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아동화에는 작가가 아이들과 함께 느끼고 어울리며 호흡한 생동한 이미지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른거리고, 아이들과 함께 뒹구는 듯한 박동치는 현장감이 되살아난다. 작가는 삽화와 만화에 이어 북한 조선화에서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선도적인 아동화가로서 회화사에 길이 빛날 따뜻하고 아름다운 아동화의 명화들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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