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창업의 꿈을 이룬 와인 평론가

【뉴스퀘스트=이철형 와인 칼럼리스트】 작은 기업에 취업해서 그 기업이 성장하는데 기여했다가 어느 시점에서 대기업이 된 그 회사를 그만두고 그 경험과 경력을 살려 창업해서 성공하는 것은 직장인이라면 모두 가고 싶어 하는 꿈의 길일 것이다.

1997,8년의 IMF와 2008년의 세계 금융위기를 인생 선배들이 겪는 모습을 보고 좋은 일자리를 찾고 있는 21세기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는 더더욱 이상적인 모습일 것이다.

취미가 직업과 창업이 되는 경우라면 금상첨화이니 요즘 시대 언어로 보면 취미창업, 직장인 창업의 길이라고나 할까? 

여기 그 길을 간 사람이 있다.

바로 나이는 로버트 파커보다는 11살 어리지만 설립 초창기였던 아주 작은 와인 전문지에 젊음을 무기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가 50대의 나이에 퇴직하고 독자적으로 사업을 하여 성공한 제임스 서클링(James Suckling)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제임스 서클링은 1958년생으로 미국의 유명 와인 잡지인 ‘와인 스펙테이터’의 총괄 편집장과 유럽 편집장까지 역임한 후 2010년 사임하고 지금은 자신의 와인 평가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시가 잡지인 ‘시가 아피치오나도(Cigar Aficionado)’의 유럽 편집장을 역임하기도 해서 와인 평론가이자 시가 평론가이기도 하다.

2010년 교황 베네딕트 16세가 영국을 방문할 때 ‘하나의 와인, 하나의 세상(One Wine One World)’이라는 프로젝트를 수행하여 환송 만찬용 와인을 미국의 캘리포니아, 멕시코, 헝가리, 슬로베니아, 프랑스의 루씨옹, 이탈리아의 푸리울리 산 포도로 화이트 와인 1종과 레드 와인 1종을 만들기도 했다. 

2011년에는 세계적인 공연제작 회사인 아이엠지 아츠(IMG Arts) 사와 디비노 투스카니(Divino Tuscany)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토스카나의 톱 와인 생산자들을 함께 모아 시음회를 진행하여 토스카나 와인의 이해를 돕고 홍보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진행하는 등 연간 약 12개의 다양한 와인 이벤트를 개최하고 있다. 

그는 어떤 인연으로 와인과 관련을 맺게 되었을까?

그는 학부에서 정치학과 저널리즘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할 때인 1978년에 지방 언론사에서 범죄관련 뉴스를 정리하는 계약직으로 근무하면서 전공을 살린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아버지가 와인을 좋아해서 와인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대학원을 졸업하고 당시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지역잡지로서 구독자가 800명에 불과했던 와인 스펙테이터의 기고자 모집 광고를 보고 여기에 지원했다가 1981년 이 회사에 입사하게 된다.

1983년 이 잡지사가 러시아 출신 와인 작가 겸 사업가와 보르도 와인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시작하면서 와인 테이스팅의 길에 들어서게 되는데 1984년에는 처음으로 유럽을 방문하여 이탈리아의 주요 와이너리들을 방문할 기회를 갖는 행운까지 얻는다. 그리고는 1985년에는 파리에 유럽 사무소를 설립하는 임무를 맡아 파리에 거주하면서 본격적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포트 와인 등 유럽 여러 지역의 와인들에 대한 평가를 하게 된다.

1987년에는 와인 소비시장으로서 세계 와인 문화를 이끌어온 영국 런던으로 자리를 옮겨서 11년을 근무하고 1998년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으로 이주하여 정착하게 된다.

입사직후 6년간 참으로 숨가쁜 직장 생활을 한 셈이다.

런던에 살던 1990년에 빈티지 포트(Vintage Port)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2010년 돌연 와인 스펙테이터를 사직하고 자신의 이름을 딴 사이트를 운영해오고 있는데 그의 사이트는 주로 동영상 위주로 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의 예상치 못한 사직은 사주와의 불화설 등 당시 많은 억측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독자 여러분이 사주였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젊어서부터 투자해서 기껏 키워 놓았더니 나가서 경쟁사를 차리니 괘씸하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그동안 회사 성장에 기여했고 경쟁은 하겠지만 상대가 되지 않을테니 축복을 할 것인가? 

한편 그의 입장에서는 이제 회사도 이만큼 성장했고 내가 성장하는데도 도움을 주어 감사하기는 하나 내가 나가서 경쟁사를 차리더라도 회사에 크게 누가 되지는 않을 테니 더 늦기 전에 나가서 내 사업을 하자라는 생각이지 않았을까 싶다.

제 3자 입장에서 보면 사업 환경 변화에 따라 새로운 사업방식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회사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이 다른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이 경우 회사가 자신의 생각을 받아들여 주지 않으면 자신의 방식대로 해보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가 있는데 그가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경우 대단한 용기가 필요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 같다. 아무리 걸어온 그 길을 방식을 달리해서 간다고는 하지만 젊은 나이도 아니고 사업 경험도 없는데 안정된 수입이 보장된 큰 조직에서 나와서 창업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기에.

그럼 제임스 서클링은 어떻게 유명하게 되었을까?

사실 로버트 파커와 달리 그가 유명하게 된 드라마틱한 계기는 없다.

다만 그는 불과 23살의 나이로 초창기의 와인 스펙테이터에서 근무하기 시작해서 그 이후 2010년 52세의 나이로 그만둘 때까지 주로 유럽 지사에 근무하면서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때부터 와이너리를 직접 다니면서 와인을 평가하여 오늘날 세계 유명 와인 잡지가 된 와인 스펙테이터의 성장을 함께 일구어 낸 인물이라는 것이 그가 유명하게 된 이유라면 이유다.

그가 와인 스펙테이터가 성장하는데 기여한 인재임에는 틀림없으나 그 역시 와인 스펙테이터라는 배경이 없었으면 오늘날의 그도 없을 지도 모른다. 

우리가 언론사는 기억해도 언론사의 편집자를 기억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는가? 

하나 와인의 경우에는 그 테이스팅을 누가 하느냐는 생산자들이나 애호가들 입장에서는 깊은 관심을 갖고 주시하게 된다. 더구나 소비자들에게 큰 영향력을 갖는 와인 전문지의 경우에는 더 주목할테니 와인 스펙테이터 독자들이 그의 와인 평가 실력을 인정했던 것이고 그가 독립했을 때 그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그는 어떤 방식으로 와인을 평가할까?

그는 와인 스펙테이터에 근무하던 때와 같이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와인을 평가하는데 칼라에 15점, 아로마에 25점, 바디감과 구조감에 25점, 마지막으로 전체적인 인상(느낌)에 35점을 배분한다.

그는 와인 평가를 할 때 대부분의 평가자들이 향부터 평가하여 여기에 중점을 두는 것에 비해 자신은 향보다는 입안에서 느껴지는 과일의 응축도, 탄닌감, 알코올, 산도 등의 강도와 지속성 그리고 균형감에 더 무게를 두는 편이라고 말한다.

특히 전반적인 인상을 좌우하는, 삼키고 난 후의 여운을 중요시한다고 한다. 만남에서 첫인상보다는 지속적인 여운의 매력을 중시한다고나 할까? 와인은 사람과 같아서 세상에 같은 것은 없으니 과학적 분석보다는 감성적으로 얼마나 자신에게 와닿느냐에 무게를 둔다고 의미이기도 하다.

그에게 명품 와인은 자신이 찾고자 하는 특징들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와인이라고 한다.

즉 그 나름의 맛과 향에 대한 편향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어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와인은 음악이나 문학, 사랑과 같아서 정서적으로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이 좋은 와인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런데 와인 스펙테이터 근무 시절과는 달리 자신의 사이트를 운영하면서부터는 그가 평가하는 와인은 대개 90점 이상이거나 아예 점수를 주지 않거나 하고 있다.

95점 이상이면 반드시 병째 사서 마시라는 것이고 90~94점이면 자신이 한 잔이라도 마시고 싶은 와인이자 구매해도 좋은 뛰어난 와인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88점 아래로는 구매해서 마셔도 좋으나 조심하라는 의미인데 자기로서는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고 하니 결국 마시지 말라는 얘기이자 소비자의 판단에 맡긴다는 뜻이다.

그리고 오크통에서 숙성하고 있어 아직 병입하지 않은 와인의 경우에는 90~91, 93~94점과 같이 일정 범위의 두가지 점수를 준다. 이는 나중에 숙성기간 동안의 변화에 따라 병입 후에 다시 평가의 여지를 남겨두는 셈이다. 

그는 보르도 와인과 이탈리아 와인을 선호하는 편이라고 알려져 있다. 

스스로도 산지오베제, 네비올로, 아글리아니코 등의 이탈리아 토착 품종으로 만든 와인에 친숙감을 보이는 반면 신대륙 와인들에 대해서는 잼 혹은 주스 같다고 표현하여 그다지 좋게 평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연간 약 4,000종의 와인을 평가하는데 그 중의 반 정도가 이탈리아 와인이다.

그는 세계 와인을 대상으로 평가하지만 주로 이탈리아, 보르도, 샴페인, 호주, 뉴질랜드, 캘리포니아, 칠레, 아르헨티나를 위주로 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사업 성격상 리스크 회피를 위해서도 소비 시장이 큰 지역을 주로 다룰 수밖에 없을 것이다.

평가 지역을 놓고 보면 로버트 파커와 유사하나 다른 점은 이탈리아 와인에 더 집중한다는 느낌을 주고 로버트 파커가 제임스 서클링과 다른 점은 그는 론 지방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그럼 그가 100점 만점을 준 와인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1) The Beaulieu Vineyard Cabernet Sauvignon Georges de Latour Private Reserve 2019

2) Tua Rita Redigaffi 2015

3) Chateau Petrus 2015

4) Chateau Mouton-Rothschild 2010

5) Dow’s Vintage Port 2007

6) Almaviva 2015

7) Sena 2015 등이 있다.

자, 이제 그럼 이 시대의 가장 유명한 와인 평론가인 로버트 파커와 제임스 서클링을 비교 정리해보자!

나이로 보면 로버트 파커가 1975년부터 나름 와인 평가를 하기 시작했다고 하니 그는 28살부터 와인사업을 겸업으로 시작해서 본격적으로는 31살인 1978년에 평가지를 창간했고 37살인 1984년에 와인평가를 전업으로 한 것이 된다.

로버트 파커보다 11살 어린 제임스 서클링은 23살인 1981년에 와인 잡지사에 입사했고 25살부터 유럽 현지에서 활동을 하게 된 것이어서 나이로는 11살 차이가 나지만 둘 다 미국에 막 와인 붐이 일기 시작하던 초기이자 세계적으로도 와인 생산 기법의 획기적인 변화가 이루어지던 1980년대 초반을 전후하여 와인 잡지사를 창간하거나 와인 잡지사에 입사하여 와인 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했다는 공통점도 존재한다.

시기적으로 볼 때 행운도 많이 따른 두 사람이다.

달리 보면 시대 흐름을 미리 잘 읽은 사람들이라고도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보르도 와인을 좋아하는 점에서도 둘은 유사하지만 로버트 파커는 보르도와 론 지방의 와인에 집중하는 반면 제임스 서클링은 보르도와 이탈리아 와인에 집중하여 평가하고 있어서 평가하는 시장을 어느 정도 분리한 듯한 생각을 갖게 한다. 보르도야 국제 와인시장 위상상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시장이기는 하다. 물론 이들은 전세계 와인을 평가 대상으로 하고 있고 실제로 전세계 와인에 대한 점수를 발표한다. 

둘 다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평가하지만 로버트 파커는 96점 이상이 아주 특별한 와인이 되고 제임스 서클링은 95점 이상이 아주 특별한 와인이 된다. 둘 사이에 1점 차이가 난다.

그리고 로버트 파커는 실제로는 50점 만점 기준인 셈이고 제임스 서클링은 90점 아래로는 잘 주지 않으니 실질적으로는 10점 만점 기준인 셈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로버트 파커는 색, 향, 풍미, 뒷맛의 여운, 전체적인 느낌에 장기 숙성력까지를 감안하여 평가를 하고 제임스 서클링도 이 요소들을 평가하기는 하지만 풍미와 뒷맛의 여운 그리고 전체적인 느낌에 더 중점을 둔다는 점이 둘의 평가의 차이라면 차이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로버트 파커를 유명하게 만든 보르도 와인 1982 빈티지에 대한 두 사람의 평가를 비교해보자. 

제임스 서클링의 경우 2012년 말에 자신이 20대 중반에 오크통의 와인을 시음한 이후 30년이 지나서 다시 평가한 점수이고 로버트 파커 점수는 별도 표시가 없으면 2013년 초에 평가한 자료인데 동일한 와인에 대한 이들의 점수를 비교해보면 그들이 꽤나 일치하는 면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음의 와인별 점수에서 앞의 점수는 제임스 서클링의 평가이고 뒤는 로버트 파커의 점수다.

Chateau Mouton Rothschild Pauillac 100 점/ 100 점(2016년)

Chateau Lafleur Pomerol 99점/ 98점

Chateau Latour Pauillac 98점/ 100점

Chateau Margaux Margaux 97점/ 97점(2016년)

Chateau Cheval Blanc St. Emilion 97점/ 98점

Chateau Canon St. Emilion 97 점/ 95점(2000년)

Chateau La Mission Haut-Brion Graves 97점/ 97점

Chateus Lafite- Rothschild Pauillac 96 점/ 98점

Chateau Haut-Brion Graves 95 점/ 95점 (2016년)

Chateau Trotanoy Pomerol 95점/ 96점 (2014년)

이들은 이런 명품 와인들을 시간을 두고 계속 평가를 해나가는데 평가하는 년도에 따라 다소 점수가 변하기도 해서 그 원인이 오픈하는 병의 문제인지 그들이 평가하는 시점에서의 그들의 기분의 문제인지는 알 수가 없다.

물론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대개 3점 이내의 편차를 보이니 일관성은 있는 셈이다.

이들처럼 직접 자신만의 와인 테이스팅 기준을 정해서 마시는 와인마다 평가해보고 이들의 평가와 비교해보는 보는 것도 와인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일 수 있으니 독자 여러분들께 자신만의 테이스팅 노트를 기록해보길 권한다.

그래서 둘 중 누구의 평가가 자신의 입맛과 더 유사한 지 알아 두면 마셔보지 않은 와인의 경우 그들의 점수를 고려해서 구매하면 실패 확률을 줄이는 방법도 될 것이다.

취미 창업을 꿈꾸거나 직장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열정과 용기와 난관을 이겨내는 지혜가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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