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TV로는 알 수 없는 은밀한 ‘제3방송’
“생활양식 벗어났다” 신상 털며 손가락질
한류문화 탐닉하는 젊은 세대는 불만 커져

지난해 9월 8일 평양에서 열린 정권수립 기념 축하공연에서 가수 정홍란이 노래하고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지난해 9월 8일 평양에서 열린 정권수립 기념 축하공연에서 가수 정홍란이 노래하고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뉴스퀘스트=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 관영 선전매체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북한 주민들의 삶은 어떨까.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TV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김정은 찬양과 북한 체제 선전만 나올 뿐 교통사고나 화재는 물론 살인・강도 등의 뉴스는 없다. 어쩌다 가물에 콩나듯 사고 소식이 들린다면 그건 김정은 우상화와 절대충성 유도를 위한 것이다.

고기잡이 나갔던 어선이 풍랑을 만나 침몰했는데, 선실의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젖지 않게 비닐로 감싼 채 품에 안고 죽은 선원이 발견됐다면서 영웅시하는 레파토리다.

그렇다고 북한이 사건・사고 하나 없는 무재해에 행복만 누리는 인민낙원은 아니다. 사소한 일탈에서부터 대형사고까지 벌어지는 건 여느 사람 사는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외부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북한 당국으로서는 노동신문과 TV 외에 내부 소통을 위한 또 다른 매체를 이용한다. 미디어를 주민이 접근할 수 있는 것과 대외용으로 철저하게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탈북민들에 따르면 북한에는 ‘제3방송’이란 유선방송 시스템이 가동 중이다. 각 세대를 연결하는 이 방송망을 통해 각종 하달사항이 전달되고 사상교양이나 총화 일정이 통보된다.

그 내용은 매우 노골적이고 우리 시각에서 보면 인권이나 개인정보 보호 같은 개념은 전혀 없는 듯한 양상이다.

예를 들면 “평천구역 육교동의 스물여섯살 남자 김철남 동무는 역전거리에서 술에 취해 부화방탕 거리면서 불안감을 조성하고...”라고 알리며 당국이 일정한 교양을 주었다거나 책벌을 가했다는 내용을 전한다.

한 여성의 신상과 사진을 공개하면서 “황색바람에 물들어 머리는 빠마질을 하고 영어글씨가 쓰여진 샤쓰를 입고 돌아쳤다”는 비난성 알림도 방송을 통해 그대로 공개된다.

주로 청바지를 입었다거나 성조기가 그려진 티셔츠 차림, 노출이 심한 옷을 입었다는 등의 지적과 비판이 주를 이룬다. 이른바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위배된다면서 주민들의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 등 행동 하나하나를 통제하는 것이다.

매주 토요일 직장이나 기관 단위로 벌어지는 일종의 비판모임인 총화시간에는 주로 조직 내 사상적 해이 문제가 다뤄지지만 제3방송에는 외부로 드러난 일탈행위가 도마에 오른다고 한다.

북한은 지난 2020년 12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만들어 남한 드라마와 영화 등을 보거나 유포하는 행위에 대해 최고 사형에 이르는 가혹한 처벌에 나서고 있다.

올 들어 평양문화어보호법까지 만들어 남한식 말투 단속까지 나서는 바람에 주민들이 북한말 배우기에 나서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진다는 게 대북매체의 보도다. 남편을 ‘오빠’라 부른다거나 남자친구와 여자친구를 ‘남친’, ‘여친’이라 부르는 행위를 모두 남조선풍에 오염된 행위로 간주해 처벌하다보니 벌어진 일이다.

최근에는 코로나가 수그러들면서 미뤘던 결혼을 하려는 젊은층이 많아지자 “신랑이 신부를 허리 위로 들어 올리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등의 규제까지 나온다고 한다. 남한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결혼식장에서의 이벤트를 따라하지 말라는 의미다.

북한 체제의 통제에 익숙한 기성세대들은 망신주기성 캠페인이나 처벌을 감내하는 분위기였지만 북한판 MZ세대(20~30대 젊은층)의 경우는 달라졌다고 한다.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하면서 남한식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 악세사리・신발 등의 유행을 따라한다는 것이다. 한류문화 중독현상이다.

올해 39살로 MZ세대의 끄트머리에 걸쳐있는 김정은으로서는 이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감지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부쩍 자주 “청년세대가 외부 자본주의 문물에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체제가 물먹은 담벼락처럼 허물어질 수 있다”고 위기감을 호소하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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