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줄타기는 전통연희의 백미 중 백미

【뉴스퀘스트=김승국 전통문화칼럼니스트 】

남사당 줄광대 권원태
남사당 줄광대 권원태

 2005년 1,230만 명이라는 국내 최다 관객을 동원한 영화 ‘왕의 남자’의 압권은 마지막 장면인 어름산이(줄광대) 장생(감우성 분)과 공길(이준기 분)의 줄타기 장면이었다. 위험한 외줄 위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줄광대의 아슬아슬한 묘기, 그리고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익살스러운 재담과 소리(노래)가 어우러진 줄타기는 전통연희의 백미 중 백미이다. 줄타기(tightrope-walking performance)는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용어로 세계 각국에서 서로 다른 양상으로 전승되고 있다. 

  우리의 줄타기는 줄놀음 혹은 줄판이라고도 불리며 줄광대가 줄 위에서 줄 아래의 어릿광대와 재담을 나누는 2인극 형태로, 관중과 소통하면서 삼현육각의 반주에 맞추어 줄소리(승도창)와 재담, 잔노릇(곡예)과 춤을 연행(演行)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줄타기는 삼국시대부터 전승돼

  줄타기가 연희로 정립된 것은 삼국시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때 자생적 전통 기반 위에서 중국에서 전래한 서역 계통의 산악백희의 영향을 받아 변화, 재창조되었다. 줄타기에 대한 문헌적 자료와 연구 자료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 줄타기 예능 보유자인 김대균 선생의 석사논문에 잘 정리되어 있고, 줄타기 연행이 행하여 졌던 구체적인 근거는 고려시대부터의 각종 자료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줄타기(기산풍속도)
줄타기(기산풍속도)

  문헌자료에 의하면 줄타기가 신라시대의 팔관회와 연등회에서 연희되었던 것으로 보이나 고려사 고종(제23대, 1214~1259) 32년 4월 8일 팔관회 때 놀았던 각종 재인에 대한 자료가 기록되어 있고, 조선 성종(1470~1494) 19년 3월에 명나라 사신 동월(董越)은 “호화스런 놀이 차림과 몸도 가볍게 노는 도약, 승도(繩渡, 줄타기), 사자놀이 등이 갖가지 최고의 기예를 연희하였다”라고 기록하였고, 동(同)시대 학자 성현은 “날아가는 제비와 같이 가볍게 줄 위에서 돌아간다”라고 하여 조선시대의 줄타기는 국빈(國賓) 연희로도 공연되었으며, 그 수준 또한 상당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줄타기는 순수하게 줄만 타는 광대줄타기와 남사당패의 놀이 중 하나인 어름줄타기 두 계통이 있다. 

  줄타기는 관이나 민간의 큰 잔치나 대동제, 단오 등의 마을 단위 행사 때에도 공연되었다. 당시에는 솟대타기, 판소리, 죽방울, 땅재주, 판춤 등이 함께 공연되었으며, 행사의 대미는 항상 줄타기가 장식하였다. 

우리의 줄타기는 재주와 음악이 어우러지는 줄광대와 어릿광대의 2인극

  줄판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줄을 중심으로 관중이 둥그렇게 자리 잡고 관람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라야만 모든 관중이 줄광대와 협연자의 움직임과 숨소리까지도 포착하는 근거리에서 관람할 수 있다. 줄광대는 관중의 눈과 마음을 통해 교감을 느끼며 신명에 도달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줄타기는 줄광대, 어릿광대, 삼현육각, 관중이라는 4가지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고, 줄광대는 자신이 보유한 잔노릇(곡예), 재담, 줄소리 등 연행 능력을 바탕으로, 어릿광대, 관중과 적극적인 의사소통을 하며, 관중 또한 참여가 가능한 열린 구조의 줄판을 형성한다. 어릿광대는 줄 위에 있는 줄광대와 재담을 주고받으며 줄광대의 연행 효과를 극대화하도록 도와준다. 삼현육각의 악사들은 줄광대와 어릿광대가 각 놀음을 할 수 있도록 반주하여 전체 판놀음의 분위기를 상승시켜 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관중은 광대들의 놀음에 추임새로 화답하며 광대들과 소통한다. 

김대균 줄타기 예능보유자
김대균 줄타기 예능보유자

  줄광대는 줄의 탄력과 신체 부위를 이용하여 잔노릇을 구사한다. 줄광대가 비상하면 줄은 줄광대를 받아줄 준비를 하고 줄이 흔들리면 줄광대는 호흡을 조절하여 줄과 하나가 된다. 잔노릇은 크게 개별 동작, 연결 동작, 결합 동작, 모방 동작 등으로 구분하며 이러한 동작은 외홍잽이, 양다리외홍잽이, 코차기, 쌍홍잽이, 겹쌍홍잽이, 옆쌍홍잽이, 겹옆쌍홍잽이, 쌍홍잽이거중틀기, 외무릎꿇기 등 무려 35가지 정도나 된다. 

우리의 줄타기는 세계 유일의 독창적인 종합예술

  지금까지 밝혀진 줄광대 명인 계보는 200여 년 전 영, 정조 시대의 김상봉(金上峯)을 필두로 최상천(崔上天), 그리고 2代인 김관보(金官甫)와 이봉운, 그 후 배출된 뛰어난 재인이었던 이동안(李東安), 김영철(金永哲), 김봉업(金奉業), 임상문(林尙文), 이정업(李正業), 오돌끈(吳돌끈) 등이 있었고, 여성 줄꾼으로 임명옥, 임명심, 정유색, 전봉선, 한농선 등이 '줄타기' 명인으로 활약하였다. 

  현재 ‘줄타기’의 명맥을 잇고 있는 사람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 예능 보유자로 지정된 김대균 선생과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놀이 6종목 중 하나인 어름(줄타기)의 어름산이(줄광대)이자 이수자인 권원태 선생 등이 있다.

  줄타기는 잔노릇, 재담, 줄소리 등이 유기적으로 얽혀 상호작용하는 종합예술이다. 우리의 민속예술의 생명은 즉흥성과 가변성의 발현이라 할 수 있는데, 줄타기는 우리의 민속예술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전통연희의 백미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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