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방송, 통신 대표... 런민르바오, CCTV 신화(新華)통신
신화통신은 국내에서는 언론, 해외에서는 외교부 역할

푸화 신화통신 사장. 현재 자리에서 역량을 발휘할 경우 정치적으로 더 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제공=검색엔진 바이두(百度).
푸화 신화통신 사장. 현재 자리에서 역량을 발휘할 경우 정치적으로 더 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제공=검색엔진 바이두(百度).

【뉴스퀘스트=베이징/전순기 통신원 】 중국에서 23만여 명의 기자들은 속된 말로 정권의 나팔수로 불린다. 이들 중에서 단연 최고의 나팔수들은 전국의 신문, 방송, 통신을 대표하는 런민르바오(人民日報), CCTV(중국중앙텔레비전), 신화(新華)통신의 기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언론사들의 사장은 중국의 대표적인 정권 나팔수들의 수장이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다. 한마디로 나팔수 중의 나팔수, 단연 최고 에이스 나팔수라고 해야 한다.

당연히 지위도 상당히 높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부장(장관)급의 자리로 이동할 수 있는 자격을 가졌다고 해도 좋을 공산당 중앙위원회 200여 명 중앙위원으로 활동한다. 이들 중 한명인 신화통신 푸화(傅華. 59) 사장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10월 말 막을 내린 제20차 전국대표대회(매 5년마다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에 입성한 바 있다.

정권의 최고 에이스 나팔수인 푸 사장은 장쑤(江蘇)성 난퉁(南通)시 루둥(如東)현 출신으로 1985년 고향 인근의 양저우(揚州)사범학원 중문과를 졸업한 후 언론인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첫 직장은 경제지인 중궈상바오(中國商報)였다. 이곳에서 차장급으로 일한 다음에는 중앙 정부로 자리를 옮겨 국무원 특구판공실 비서국에서 처장(과장)으로도 근무했다. 이어 30대 후반에 베이징 팡산(房山)구 구장조리(부구장보)를 거쳐 부구장에 올랐다. 하지만 크게 출세했다고 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43세 때인 2007년 시청(西城)구의 선전부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전공을 제대로 살리면서 능력을 인정받은 끝에 3년 후 요직인 베이징 선전부 부부장이 된 것이다. 이듬해에는 내친 김에 부비서장으로까지 승진할 수 있었다.

2014년 나이 50세 때 그는 드디어 베이징의 기관지인 베이징르바오(北京日報) 사장에까지 오른다. 이후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중국기자협회 부주석을 겸임한 다음 징지르바오(經濟日報) 사장으로 이동하더니 2020년 다시 관가로 돌아와 중앙선전부 부부장이 된 것이다.

1년 뒤 57세가 된 그는 신화통신으로 다시 이동, 총편집(사장에 준하는 편집국장)으로 근무한 후 이듬해 6월 사장에 올랐다. 자연스럽게 4개월 후에는 중앙위원의 타이틀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는 아직 60세가 되지 않았다.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워도 정치적으로 더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야심이 있다면 당정 최고지도자 중 한 명이 될 수 있는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도 노려보지 말라는 법도 없다. 더구나 비슷한 사례도 없지 않다. 신화통신의 선배 기자라고 해도 좋을 류윈산(劉雲山. 76) 전 상무위원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세기 70년대와 80년대 기자로 활동하다 정계에 진출, 승승장구한 끝에 상무위원이 됐다. 당시 권력 서열 5위였던 중앙서기처 서기도 역임했다.

그는 제2의 류윈산이 될 수 있는 능력도 갖췄다고 해도 좋다. 무엇보다 화려하지는 않을지는 모르나 경험이 풍부하다. 기자로서 취재 현장에서 오래 활동한 것을 우선 꼽을 수 있다. 여기에 한국의 구청에 해당하는 구 위원회에서 부구장까지 지낸 경험도 만만치 않다고 해야 한다. 당 중앙선전부 부부장를 지낸 이력 역시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경영 능력 역시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베이징르바오와 징지르바오를 거쳐 신화통신의 사장으로 일하는 것은 절대 괜한 게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남북한의 평양과 서울에서 런민르바오 특파원을 지낸 원로 언론인 쉬바오캉(徐寶康. 74) 씨의 평가를 들어봐야 할 것 같다.

“기자들의 집합소인 언론사, 그것도 거대 신문사와 통신사의 사장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조직을 이끌어가는 능력도 그렇겠지만 경영 능력도 대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푸 사장은 언론사 세 곳의 사장을 지냈거나 현재 일하고 있다. 그만큼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말이 된다. 앞으로 정치적으로 더 클 여지가 있다고 본다.”

기자협회의 부주석에서 일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친화력 역시 간단치 않다. 23만여 명의 기자들을 대표하는 간부로 일하다 보면 본인의 원래 성격이 그렇지 않더라도 그럴 수밖에 없게 된다.

학구적인 스타일도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이는 그가 언론사와 관가에서 일하는 틈틈이 런민(人民)대학 마르크스학원에서 주경야독 끝에 중국 공산당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사실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그가 중국 언론계에서 내로라하는 이론가로 손꼽히는 것은 다 까닭이 있다고 해야 한다.

단점이 없을 까닭이 없다. 이를테면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너무 나서지 않는다거나 평소 업무 스타일이 조용한 것은 정치적 야심을 품어야 할 언론계 리더로서의 장점은 결코 아니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보인다. 이에 대해 징지르바오에서 그의 밑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구진쥔(顧金俊) 부주임은 “그분은 너무 조용하다. 나서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봐도 좋다. 그러나 이제는 리더가 됐으니 스타일을 바꾸는 것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고 아쉬워하면서도 그가 잘 될 수 있는 자질은 분명히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신화통신은 중국에서는 언론으로 통하나 해외에서는 외교부의 역할도 일부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교가 없는 국가에서 신화통신 지국이 대사관 역할을 대신하는 것은 이로 보면 하나 이상할 것이 없다. 따라서 런민르바오와 CCTV, 신화통신 중 가장 파워가 막강한 곳을 꼽으라면 역시 신화통신이 먼저 거론돼야 한다. 이로 보면 그가 정권의 나팔수 삼두마차의 진정한 수장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보인다. 현재의 자리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할 경우 그가 진짜 제2의 류위산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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