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출어람' 증명하듯 세련되게 다듬은 형상에 다양하고 실험적 색채 구사로 독특한 정체성 확립

【뉴스퀘스트=정형렬 갤러리피코 대표 】

최창호 화가의 '겨울 금강산'(225-143, 2013년)
최창호 화가의 '겨울 금강산'(225-143, 2013년)

▲겨울 금강산(225-143, 2013년)

최창호는 북한의 솟구치는 기상을 가장 강건하고 예리하게 표출하면서도 예술적으로 아름답게 조각해 놓는다. 마치 화산 폭발하는 산들이 갑자기 빙하기를 맞아 얼어버린 듯한 기묘한 형상들을 표현한다.

장대한 산봉우리들은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 기둥처럼 숭엄하고 화려하게 채색되고, 섬세하고 번뜩이는 소묘력으로 다이아몬드 같은 눈부신 면각미와 각선미를 화폭 곳곳에 흩뿌리듯 심어놓는다.

최창호의 화풍에서는 정영만과 선우영의 예술혼이 동시에 스며들어 어른거린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는 유독 두 화백의 형상과 색채가 이상적으로 혼연일체 융합되어 놀랄만치 완벽한 궁합을 이루는 시너지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최창호는 추상화가 정영만의 도제식 제자로 성장한 행운아이지만 스승의 그늘이 주는 혜택을 누리는데 만족하지 않고 그것을 탈피하고자 몸부림친다. 그는 스승을 넘어서고자 가혹하리만치 형상을 세련되게 다듬고 색채를 다양하고도 실험적으로 구사하는 작가로서의 독특한 정체성을 끊임없이 확립해 왔다.

그는 선우영의 고상하고 화려하면서도 중후한 명품 색상을 또 다른 독창적 개성의 원천수로서 자신의 창조적인 화폭에 끊임없이 끌어다 물을 대고 있다. 여기서는 전면의 구리빛 얼음조각 같은 산맥이 안정감 있게 화면의 무게중심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좌측의 진보라색 산들과 우측의 짙은 회갈색 산맥과 함께 이질적이면서도 견고하게 밀착된 빛깔 연대를 이룬다. 이는 색채 파노라마같은 연결식 병풍 군단이자 계단식 아르페지오(분산화음) 연주와 같은 장엄한 하모니를 이룬다.

작가는 이곳이 생명이 숨쉬는 공간임을 확인시켜주기 위해 황갈색 계열의 거대한 나무들을 깃발처럼 꽃아놓아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전체적인 산맥의 추상적 분위기와는 불협화음을 보이는 구상적인 요소를 띠면서도 회화적 신선미를 발산한다.

이 역시도 정영만의 검정 먹빛 산맥들 위로 나부끼는 거대한 추상적 나뭇가지들에 대한 최창호식 변주곡이다. 그 위로는 얼음장 같은 청보라색 산맥들이 다시 한번 거대한 지층을 이루며 겨울의 엄혹함을 환기시킨다.

냉온의 기류가 대기의 순환처럼 교류하면서 마지막으로 하얀 설산이 꼭대기 상층의 지붕 덮개처럼 전개되는데 주황색 휘장을 둘러 감으면서 황제와 같이 화려하면서 장대한 위엄을 보인다. 그 위로는 시퍼런 하늘이 다시 바다물처럼 넘실대는 생동적 분위기를 조성하며 설산의 진면목을 음각과 양각이 교차되는 얼음 조각 작품처럼 부각시키고 있다.

그림의 아래위 폭이 넓기 때문에 가능한 구도이다. 이 그림은 2010년대부터 만수대 창작사 주요 화가들에게 제공되는 두꺼운 닥나무 종이에 그려져 마치 배접을 한 느낌이 든다. 종이의 재질이 고급스럽기 때문에 묵직한 분위기 속에서도 여백 자체가 밝고 화사한 색감을 살리는데 크게 안받침하고 있다.

최창호 화가의 '금강산'(60호,2008년)
최창호 화가의 '금강산'(60호,2008년)

▲ 금강산(60호, 2008년)

그림 속의 흑색산은 우리나라 금수강산 중에서도 최고로 수려하다는 금강산이다. 밤이 아닌 낮에 비친 이 흑색의 산은 오로지 명암기법에 의해서만 그 위용을 드러내도 얼마든지 멋스럽게 보일 수 있다고 도도함을 과시하고 있다.

그 세세한 면면은 검푸른 바닷물이 일렁이며 햇빛에 반사되는 것처럼 속살의 일부를 슬며시 비치는 듯 보인지만, 거센 운해 위에서 잠기기도 하고 둥둥 떠 있기도 한 모습은 그다지 안정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마치 커다란 배가 망망대해 속을 헤치고 나아가는 웅장한 모습을 형상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웅혼한 기상이 서려 있고 신비감이 감도는 금강산이 적막강산의 산이 아님을 암시하듯 포인트로 단풍 색감을 곳곳에 미세하게 입힘으로 해서 단조로움을 벗어나 생기를 더해주고 있다.

정종여가 아름다운 꽃들로 북한 조선화의 정원을 화려하게 꾸며 놓았다면 리석호는 고산준령(高山峻嶺)으로 북한 조선화의 우람한 성곽을 이뤄놓았다. 정종여의 우아미(優雅美)와 리석호의 야성미(野性美)가 음양의 상호 조화 속에 서로를 휘감으며 맞물고 하늘로 올라가는 쌍룡이 되어 여의주를 삼키며 북한 조선화를 승천시키는 우리 민족의 반쪽 미술사의 쾌거를 이룩해 놓았다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리석호의 화법(畵法)이 북한 내부의 치열한 공방과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북한 조선화의 기류를 관통하지 못했다면 사실주의적 기조에 치우친 북한식 화법은 지금과 같은 기상을 떨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리석호의 화법은 아주 창의적으로 북한식 토양에 흡수되었기에 북한 조선화는 참다운 위용을 갖출 수 있었다. 그의 맑고 도도한 영혼은 담백하고 투명한 색감의 그의 색채에서 여지 없이 잘 반영되어 있고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강한 것과 일맥 상통하듯이 그의 일필휘지 선의 부드러운 맵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강한 힘을 발산한다.

거친 산맥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 화법은 훗날 금강범 정영만의 흑백 칼바위산, 오늘날 북한 미술계의 최전방 공격수로서 각광받는 최창호의 채색이 요소요소 도사리며 침투한 깍아지른 바위산맥들 속에서 유감 없이 계승 발전되고 있다.

북한 현대 회화에 있어 수묵 추상의 산맥 그림은 리석호, 정영만, 최창호로 족보를 잇는다. 이들은 북한의 본류와 주축할 형성한 걸출한 미술계 스타 사령관들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들의 바톤을 이어받거나 계보를 형성한 후배 화가들은 희소하고 아직 그 명맥을 이어갈 정도의 역량을 갖춘 이들의 성장은 지켜볼 일이다.

최창호 화가 
최창호 화가 

◇최창호(1960~ )는 누구인가?

어째 모순처럼 보일는지 모르지만, 북한에서 최강 혹은 최고라고 자랑하는 화가는 반추상에 가까운 화가들이다. 단순 사실주의에만 치중한 그림은 처음 볼 땐 쌈박하게 끌리지만, 오래 두고보면 밋밋하고 질리는 것이 북한에서도 어쩔 수 없는 공통 현상인 것 같다.

오래 두고 볼수록 회화다운 곰삭은 맛이 우러나고 그 참맛을 느끼게 하는 것은 회화성 높은 반추상 형식의 사의(寫意)적 그림이라는 것이 북한에서도 입증된 것이나 다름 없다고 본다. 그리고 이는 추후 남북한 통합을 위한 예술적, 정서적 공감대와 소통의 지평을 넓히는데 활용되어져야 할 것이다.

북한 조선화의 모태 1세대 리석호와 북한의 국보로 불리는 2세대 정영만 그리고 그 계보를 잇는 현존 최전방 스트라이커가 최창호이다. 북한은 형체를 도무지 식별할 수 없는 추상화는 회화로 인정하지 않지만, 영혼과 기상 그리고 진실이 담긴 반추상 형식의 그림은 리석호의 그림에 대한 논쟁과 더불어 다양한 각도에서 일찍이 조명되었다.

1950년대부터 조선화의 정립을 위한 이와 같은 실험정신은 되새김을 거듭하며 조선화 기법의 한 축이 되어 더욱 억센 생명력으로 뿌리를 내리며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함축과 집중’, 달리 표현하면 ‘강조와 생략’의 표현 기법으로 통칭할 수 있다.

내면적 심상의 중요한 강조점은 얼마든지 과장하고 힘주어 표현하는 반면, 나머지 부분은 약화시키거나 생략해도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회화 분야에서는 널리 적용되는 원리이기도 하지만, 사실주의 형식의 유화에서는 구현하기 쉽지 않은 조선화에서의 오랜기간 정착된 표현주의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최창호는 1960년생으로 평양미대 수재이고 최고의 소묘력을 인정받던 화가이다. 역시 기본기가 최고 출중한 화가에게서 응용력이 탁월하게 구사될 수 있다는 원칙이 다시 상기되는 대목이다.

그가 반추상 기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자신감은 기본기에 충실했던 저력이 뒷받침된 것이라고 보여진다. 그는 북한 최대미술창작사인 만수대창작사의 최고의 현역 간판 스타이고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작가이다.

최창호는 평양미대 수재반에서 다른 3명의 조선화 수재들과 동문수학했다. 화조화의 오영성, 인물화의 김동환, 소나무 화가 전영이 그들이다.

오영성은 정창모를 능가할만한 화조화의 거목으로 성장 가능하고, 김동환은 현재 조선미술가동맹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전영도 조선미술가동맹 서기장을 역임하면서 북한 미술계 최고의 실세들로 자리하고 있다.

한편 그 수재 화우들은 동기간의 라이벌 의식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소묘력은 누구도 최창호를 따라갈 수 없었다고 인정하며 탄복했다고 전한다.

최창호는 만수대창작사 소속 화가로 현재 중국 북경에서 북한이 주관하는 최창호의 단독 전시회를 열어줄 만큼 대내외 위상과 기량이 절정에 오르는 맹위를 떨치며, 국가로부터 전폭적인 지원과 신임을 한몸에 받고 있다.

그는 그런 기대에 부응하며 2008년 북경에서 열린 세계미술박람회에서 최고상인 금상의 수상 영예를 조국에 안겨준다.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