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의 중국 10대 여성 인물’로 선정되기도

중국 최초의 여성 외교 수장의 기록을 세울 것으로 기대되는 화춘잉 외교부 부장조리. 10여 년 동안의 외교부 대변인 시절 세련되고 강단 있는 성격으로 유명했다.[사진=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중국 최초의 여성 외교 수장의 기록을 세울 것으로 기대되는 화춘잉 외교부 부장조리. 10여 년 동안의 외교부 대변인 시절 세련되고 강단 있는 성격으로 유명했다.[사진=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뉴스퀘스트=베이징/전순기 통신원】 중국은 인구의 절반인 여성의 역할을 무척 강조한다. 그래서일까, 일본 제국주의와 국민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인 1949년 10월 1일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 중국은 한국보다 여성들의 사회 활동이 일찍부터 상당히 활발했다.

특히 21세기에 들어서는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여성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집에서 유유자적하는 것은 절대로 말이 안 된다. 전업주부라는 말은 아예 없다고 해도 괜찮다. 당연히 지난 70여 년 세월 동안 정부를 비롯한 각종 당정 기관들에서 고위직으로 활약하는 여성들도 꽤 많았다. 이 때문에 4명의 부총리 중 한 명을 여성으로 등용하는 것도 종종 가능했다.

부장(장관)들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지난 70여 년 동안 총 22명의 여성이 등용돼 활약했다. 지난 3월 출범한 국무원(행정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총 26개 부처에서 2명의 부장이 배출됐다. 외교부라고 예외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고 해야 한다. 하지만 외교부는 다르다. 지금까지 단 한 명의 부장이 배출되지 않았다. 여성 고관들에게는 아예 철옹성이라고 해도 좋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앞으로는 달라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외교부 내에 그동안 보지 못했던 대단한 여걸이 맹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외교부 경력 30년의 화춘잉(華春瑩. 53) 신문사 사장(司長. 국장) 겸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이다.

향후 승진을 거듭하면서 빠르면 2027년 열릴 제15차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국회) 1차 회의에서 부장 자리를 꿰찰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설사 이때 꿈이 좌절되더라도 나이가 있는 만큼 2032년에는 막차를 타고 여성 외교 수장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중국 외교사에서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울 것으로 기대되는 화춘잉은 장쑤(江蘇)성 후이안(淮安)시 출신으로 부모는 현지 정부의 나름 꽤 고위급 간부로 활약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70년 출생과 동시에 금수저가 됐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녀는 교만하지 않았다.

중국 언론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엄한 가정교육 탓에 늘 겸손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학업 성적도 좋을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과의 사이도 나빴다고 하면 이상하지 않았을까 싶다. 1988년 한국의 수능에 해당하는 가오카오(高考)에서 시 전체 1등을 차지하고 명문 난징(南京)대학 외국어학과에 진학한 것은 누가 봐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녀는 학창 생활을 아주 잘 했던 것으로 지금까지 유명하다고 한다. 뛰어난 성적으로 입학했으면서도 자만하지 않고 외교관이 되겠다는 자신의 목표를 향해 묵묵히 전진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2학년 때 영어 담당 교수와 프리토킹이 가능했던 것은 다 까닭이 있었다고 해야 한다.

대학을 졸업하던 1993년 그녀는 외교부에 입부, 자신의 목표를 가볍게 이룰 수 있었다. 처음 배치된 것은 서유럽사(국)였다. 당시 그녀는 이 사의 유일한 여성, 즉 홍일점이었다고 한다. 이후의 캐리어 역시 승승장구라는 단어를 써야 할 것 같다. 우선 1995년에 주싱가포르 대사관의 3등 서기관으로 부임, 4년을 일했다. 1999년에 돌아와서는 바로 부처장으로 승진했다. 그녀의 나이 30세 때였다.

33세가 되던 2003년부터 무려 7년 동안은 주유럽연합(EU) 대표부의 2등 및 1등 서기관, 참사관을 차례로 역임했다. 이는 남성도 해내지 못했던 외교부 내의 기록으로 현재까지 알려져 있다. 당연히 승진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2012년 외교부 신문사 부사장 겸 대변인이 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후 그녀는 대변인으로 맹활약을 했다. 외신에서 패기 넘치는 여성 대변인이라는 의미의 패왕화(霸王花)라는 별명으로 부른 것은 하나 이상할 것이 없었다. 2021년 신문사 사장을 겸직하는 부장조리로 승진한 것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현재 여성 대변인의 자리를 자신보다 두 살 어린 마오닝(毛寧) 신문사 부사장에게 물려줬다고 해도 좋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후에 정기적으로 열리는 내외신 브리핑에 거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내외신의 주목을 받고 있다. 10여 년 동안 대변인으로 보여준 인상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중국 최초의 여성 외교 수장 후보로 거론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해야 한다.

그녀는 충분히 사상 최초의 기록을 수립할 역량을 보유한 대단한 인재로 외교부 내외에서 평가받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겸 국가주석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한다. 장점도 하나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외교관답게 언행이 세련됐다. 그러면서도 강단이 있다. 베이징에 주재하는 600여 명 외국 언론사 특파원들의 공격적 질문에도 막히는 법이 없었다. 때로는 논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특파원들이 혀를 내두르는 것은 절대 괜한 게 아니다.

상당히 논리적이기도 하다. 특파원들이 “그게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도 종종 그녀의 레토릭에 말려드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그녀가 평소 독서를 즐겨 하는 습성에 기인하는 장점이 아닌가 싶다. 여기에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 겸손함까지 더할 경우 그녀가 4년 후 사상 최초 여성 외교 수장의 기록을 세워도 이상할 것은 없다고 해야 한다.

물론 그녀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은 있다. 공직자 월급이 빤한데 하나 뿐인 딸을 미국 유학을 보낸 것이 이를테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지 못한다는 이 딸에게 매달 상당액을 송금한다는 사실까지 더할 경우 향후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탈탈 털게 되면 먼지가 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남편이 그녀의 캐리어를 이용, 상당히 큰 규모의 사업을 한다는 사실 역시 그녀의 앞길을 막을 수도 있는 약점이 아닌가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장점이나 능력은 약점들을 커버하고도 남는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20년 1월 1일에 ‘2019년의 중국 10대 여성 인물’로 선정되는 기염을 토한 것은 이런 사실을 잘 말해준다고 해야 한다. 바야흐로 중국에도 여성 외교 수장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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