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시장경제 체제 하의 가격시스템 역할과 의미 새겨야"

정부의 라면가격 인하 압박에 식품업체들이 지난 1일 일제히 라면가격을 내렸다.[사진=연합뉴스]
정부의 라면가격 인하 압박에 식품업체들이 지난 1일 일제히 라면가격을 내렸다.[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신동권 KDI 초빙연구위원 】최근 뜨거운 음식 라면이 언론을 뜨겁게 달구었다. 지난 6월 18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밀가격을 내린 부분에 맞춰 (라면가격)을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하였고, 이에 호응한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도 “라면-과자값 조속히 내려야”라고 입장을 밝혔다.

또한 21일 한덕수 총리는 “공정위가 담합 가능성을 좀 더 열심히 들여다 봐야”라고 언급하고, 26일 농림축산식품부는 제분업체와의 간담회에서 밀가루 가격인하요청을 하였다. 이에 7. 1부터 농심신라면(4.5%), 삼양식품 12개 대표제품(4.7%), 오뚜기(5%), 팔도(5.1%) 등 라면가격이 인하된다고 한다(이상, 동아일보, 2023. 6. 28). 라면에 이어 과자, 빵 등도 인하될 예정이라고 한다.

라면은 1870년대 일본 요코하마 중화거리 혹은 1922년 삿뽀로, 중일전쟁 이후 일본에 남겨진 전리품이라는 설이 있고, 불황에도 잘 팔리는 대표불황지표 상품이다. 한국은 세계1위의 라면소비국이다(EBS 지식채널).

'라면'이란 단어는 중국의 납면(拉麵:라몐)에서 왔으나, 1963년 일본서 개발된 인스턴트라면이 한국에 전래되면서 일본어 ’라멘‘이 멘에 해당하는 면 부분만 한자음을 그대로 읽어 라면이 되었다고 한다

1958년 일본의 기업인 낫신식품이 면을 기름에 튀겨 건조하는 방식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닭뼈 육수맛을 낸 ’치킨라면‘을 출시하였는데 세계최초의 인스턴트 라멘이었다. 창업주였던 안도모모후쿠는 96세로 사망하는 날까지 매일 인스턴트 라멘을 먹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는 1963년 삼양라면이 최초였다. 처음에는 일본식 라면이 인기가 없었다. 라면을 먹어본 박정희 대통령이 ’고춧가루가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였고 한국식 매운라면이 탄생하였다고 한다. 1986년 신라면이 출시되면서 매운 라면이 더 인기를 끌게 되었다(이상 나무위키).

현재 라면의 1위는 농심라면이다. 그런데 삼약식품이 1위 자리를 내준 것은 소위 1989년 ’우지파동‘ 때문이었다. 삼양이 공업용 우지를 사용했다는 혐의였는데, 7년뒤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농심은 60%이상의 시장을 점유하였고, 삼양은 이미 파산 직전의 회사가 된 뒤였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1년동안 라면은 13%가 올랐고, 이번 가격인하는 13년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주식인 쌀을 대체할 정도로 애용되는식품이기 때문에 항상 정부의 관심 대상이 된다.

13년 전 가격인하는 공정위의 소위 ’라면담합‘ 사건 조사가 진행중이던 때인 것으로 기억된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던 그 당시의 상황은 지금의 상황과 유사하였다. 물가가 폭등하던 시기였고, 공정위는 정부의 물가잡기에 호응하여 각종 생필품에 대한 담합조사에 열중이었다.

필자는 2012년 초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으로 부임하였는데 그 당시 유난히 대형 민생사건들이 많았다. 처음으로 처리한 비료담합 사건은 나중에 소송으로 진행되어 농민들이 소액이지만 배상금을 받았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그 후 두 번째로 처리한 사건이 ’라면담합‘ 사건으로 기억된다. 이번에 한덕수 총리가 담합 아닌지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한 발언 배경을 잘 알 수는 없지만 업체들은 과거 라면담합 사건의 기억이 났을 것이다. 빨리 인하조치를 한 이면에는 그런 기억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라면담합‘ 사건은 나중에 대법원에서 무혐의로 확정되었는데, 대법원이 근거로 제시한 것 중에 선두업체가 가격을 올리면 후발업체가 가격을 올리는 관행을 지적한 바 있다. 가격합의가 아니라 과점시장에서의 의식적 병행행위 정도로 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판단한 이면에는 라면값은 정부가 관리하므로 업체의 재량이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도 보인다.

그 이후에 처리한 4대강 담합사건이나 증권사 채권수익율 담합사건 등 여러사건이 기억나는데 이러한 사건들의 공통점은 정부정책이나 행정지도가 개입되었다는 점이다.

이번에 추경호 부총리의 발언이나 농림축산부의 제분업계 간담회 같은 것이 전형적인 행정지도에 해당한다. 행정지도는 행정절차법에 근거가 있는 정상적인 행정행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행정지도는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하는 부당한 공동행위(담합)와 관련하여 문제가 된다. 공정위는 이에 대하여 행정지도가 개입된 공동행위에 대하여 심사지침을 두고 있다. 그 핵심 내용은 법령에 근거를 가진 행정지도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 적용을 제외하지만, 법령에 근거가 있다 하더라도 행정지도의 범위를 넘는 경우에는 공정거래법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공정거래법 집행과 정부의 행정지도 간에는 긴 악연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대법원은 맥주3사 사건(2003), 보험료담합 사건(2005), 소주담합 사건(2014) 등에서 행정지도에 의한 행위로 보고 공동행위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 업체들의 라면 값 인하는 정부의 행정지도의 결과임이 명백해 보인다. 언론을 통해서 공개적으로 밝히고 인하를 권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리적으로 명확하게 법령에 근거가 있는 행위로 볼 지는 의문이 간다.

정부가 가격에 개입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밀가루가격이 내렸다고 해서 라면이나 과자 가격이 필연적으로 내려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번 가격인하가 별 실효성이 없다는 점도 언론에서는 많이 제기되고 있다.

유명한 “나, 연필(I, pencil)”이라는 레너드 리드의 에세이에서는 연필 한 자루가 생성되기 까지의 복잡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나, 연필은 나무, 아연, 구리, 흑연 등의 기적들의 복합적인 조합이다. 하지만 자연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기적들에 훨씬 더 놀라운 기적이 추가되었다: 창조적인 인간 에너지의 구성 - 인간의 필요와 욕구에 반응하고 인간의 주도적인 사고가 없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자발적으로 구성되는 수백만 가지의 작은 노하우!(I, Pencil, am a complex combination of miracles: a tree, zinc, copper, graphite, and so on. But to these miracles which manifest themselves in Nature an even more extraordinary miracle has been added: the configuration of creative human energies—millions of tiny know-hows configurating naturally and spontaneously in response to human necessity and desire and in the absence of any human master-minding!”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만(Milton Friedman)은 가격시스템의 역할과 의미를 이보다 더 잘 묘사한 문헌이 없다고 격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물가가 폭등하고 국민들이 생필품 가격 때문에 고통받는 현실을 외면하기는 어려운 정부입장도 충분히 이해는 간다. ’자유시장경제‘라고 하는 원칙만으로 정부운영을 할 수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행정지도로 업체들이 불필요한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공정위에 근무하면서 담합이 문제가 되면 해당 부처에서 행정지도 사실을 부인하거나 책임을 오롯이 업체에 전가하는 행태를 많이 보았다.

신동권 KDI 초빙연구위원
신동권 KDI 초빙연구위원

불가피하게 행정지도를 해야 한다면, 업체들이 불측의 피해를 보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하며, 업체들도 각자의 독립된 판단에 따라 가격을 결정하고 인하하는 것이 공정거래법 위반 오해를 낳지 않는 방법이다. 만약 업체들이 정부정책에 호응한다고 모여서 인하율을 협의하면 또 다른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시장경제에서는 원칙적으로 가격에 대한 개입보다는 ESG활동 등을 통해 기업 스스로 사회 책임경영을 실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일요일 오늘 필자도 라면으로 한끼를 해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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