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위안으로 불리는 세계 최대 규모 외환보유고 관리인

차기 런민은행장으로 유력한 판궁성 런민은행 당 서기. 벌써부터 미스터 위안으로 불리고 있다.[사진제공=징지르바오(經濟日報)]
차기 런민은행장으로 유력한 판궁성 런민은행 당 서기. 벌써부터 미스터 위안으로 불리고 있다.[사진제공=징지르바오(經濟日報)]

【뉴스퀘스트=베이징/전순기 통신원】 지난 6일부터 나흘 동안 중국을 방문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금융 정책에 관한 한 조 바이든 대통령보다 더 권한이 막강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가 미국의 실질적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것은 결코 괜한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를 지배한다고 봐도 좋을 달러의 가치를 좌지우지할 권한을 가지고 있으니 그래도 이상할 것은 없지 않나 싶다.

방중 기간 카운트파트인 류쿤(劉昆) 재정부장은 말할 것도 없고 리창(李强) 총리와 허리펑(何立峰) 부총리까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옐런 장관을 만난 것은 이로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미중 관계에 밝은 베이징 외교 소식통들의 10일 보도에 따르면 그런데 전혀 의외의 인물이 옐런 장관과 회동해 외신을 비롯한 중국 언론의 화제를 모으고 있다.

주인공은 바로 중앙은행인 런민(人民)은행의 판궁성(潘功勝. 60) 당 서기이다. 현재는 부행장에 외환관리국 국장까지 겸임하고 있으나 사실상 런민은행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내에 물러날 것이 확실한 이강(易綱. 65) 대신 행장으로 취임할 것이 확실시되고도 있다. 중국의 당정 최고 지도자들 역시 이렇게 그를 옐런 장관에게 소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언제인가는 런민은행 행장이 될 것으로 기대됐던 그는 한마디로 싹수가 있는 인물이었다고 해도 좋다. 고향인 안후이(安徽)성 안칭(安慶)시 일대에서는 어릴 때부터 총명한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고교 시절 잠시 일탈한 탓에 대학은 주위의 기대와는 달리 약간 이상한 곳으로 갔다. 지금도 전국의 똑똑한 고등학교 학생들에게는 상당히 생소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저장(浙江)야금경제전문학교 회계학과에 진학한 것이다.

그는 하지만 대학 입학 후에는 정신을 차리고 학업에 매진했다. 졸업과 동시에 모교의 경제학과에서 최연소 교수로 일할 수도 있었다.

1987년 런민대학 경제학과 석사 과정에 진학한 것은 그로서는 신의 한 수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런민대학의 위상이 장난이 아니었던 때문이다. 게다가 졸업생들의 인맥도 정말 어마무시했다.

졸업만 하면 앞날은 보장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이번에는 주위의 기대에 확실하게 부응했다. 가볍게 석사 과정을 마친 후 93년에는 박사 학위까지 취득할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천재처럼 영민했던 그에게 이제 거칠 것은 없었다. 겨우 30세의 나이에 중국 최대 국영 은행 중 한곳인 궁상(工商)은행 본점의 주택대출부 부처장으로 취임, 6년 동안 일하기도 했다.

이 기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정치경제학과와 MBA 과정의 박사 후 방문학자로 연수를 하면서 캐리어까지 착실하게 쌓았다. 1999년 귀국 후 궁상은행 본점 처장으로 승진한 것은 크게 이상할 것이 없었다.

이후 그는 더욱 거침없는 승진 행보를 이어갔다. 본점 부부장을 거쳐 2003년 광둥(廣東)성 선전(深圳)시 지점 부행장을 지낸 다음 2007년에는 이사 자리에까지 올랐다. 행장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듯 보였다.

그러나 나이 45세 때인 2008년 그는 역시 대형 국영 은행인 눙예(農業)은행으로 이동하는 인생의 대전기를 맞게 된다. 다행히 직위는 부행장이었다. 아마도 당정 최고 지도자들이 그를 키우기로 작정하고 결행한 인사이동이 아니었나 보인다.

그가 부행장으로 있던 2011년 상반기에 미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에서 공부한 것은 무엇보다 이 사실을 잘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2012년 6월 미국에서 귀국하자마자 런민은행으로 이동해 부행장이 됐다. 이번에도 행장 자리는 바로 눈앞에 와 있는 듯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이후 11년 동안이나 부행장으로 머물렀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이를 잘 말해준다. 그럼에도 그는 외환관리국 국장 자리까지 겸하면서 차곡차곡 경륜을 쌓았다. 결국 지난 7월 1일 런민은행의 실질적 1인자인 당 서기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행장이 되지 못하면 이상하다고 해야 한다.

그가 행장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많다. 무엇보다 1인자인 당 서기라는 위상이 그렇다. 현재는 부서기를 지낸 이강이 행장을 맡고 있으나 앞으로도 절대 그럴 수는 없다.

현재 런민은행에 그보다 더 행장에 적임자인 인물이 없다는 사실 역시 이유로 꼽아야 한다. 여기에 그가 영국과 미국 유학을 통해 선진적인 금융 시스템을 확실하게 배웠다는 사실까지 더할 경우 그가 연내에 행장에 오르는 것은 거의 필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장점이 많은 뱅커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뱅커의 운명이라고 해야 할 꼼꼼함을 어릴 때부터 키워왔다는 사실을 우선 꼽아야 한다. 그가 무려 3조2000억 달러 전후의 외환보유고를 잘 관리한 것은 이로 보면 하나 이상할 것이 없다고 해야 한다.

청렴하다는 사실 역시 장점이라고 해야 한다. 사택에서 오래 거주한 탓에 변변한 집 한 채 없다는 사실은 주위에 널리 알려져 지금은 전설처럼 유명하다. 이외에 누구하고도 잘 어울리는 붙임성, 잡기나 술담배를 하지 않는 결벽증도 단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도 인간인 만큼 단점도 있다. 예컨대 바른 말 잘하는 성격을 꼽을 수 있다. 그가 주변에 능력을 인정은 받으면서도 뒤를 팍팍 밀어주는 확실한 백그라운드가 없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그는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겸 국가주석에게도 대놓고 아부를 하지 않는 인물로 유명하다. 그가 런민은행 서기로 임명됐을 때 일부 주변 지인들이 깜짝 놀란 것은 분명 괜한 게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중국 경제는 좋지 않다. 때문에 달러 대비 위안(元)화의 가치는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상황이 더욱 어려워질 경우 현재의 환율인 1 달러 당 7.2 위안이 붕괴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지난 수년 동안 유지해온 6 위안대 진입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지난 1일 궈수칭(郭樹淸) 런민은행 서기와 이강 부서기가 해임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런민은행 행장으로도 취임할 향후 그에게 주어진 최대 임무는 위안의 환율을 잘 관리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가 벌써부터 미스터 위안으로 불리고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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