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육아에 병든 부모, 돈보다 휴식 원해”

맞벌이 직장인 이진욱(41) 씨는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장인장모께 용돈이 담긴 봉투를 건넸다가 되돌려 받았다. 2009년 첫 아이 백일 무렵부터 2011년에 태어난 둘째까지 두 아이 육아를 장모에게 맡기고 있는 상황이라 성의껏 두둑하게 봉투를 준비한 이 씨로서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사위가 정성껏 마련한 봉투를 되돌려주면서 장모 김말선(62) 씨가 어렵게 꺼낸 말은 “한 달만 쉬고 싶네”였다.

거의 매년 어버이날을 앞두고 실시되는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이 가장 선호하는 어버이날 선물 1순위는 ‘현금’이다. 하지만 정작 부모가 원하는 선물은 따로 있다. 특히 자녀를 출가시킨 후 손주 육아를 전담하거나 분담하고 있는 부모에게 가장 필요한 선물은 ‘휴식’인 듯하다.

2012년 말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맞벌이 가구 약 510만 가운데 절반가량이 자녀 육아를 시가나 처가에 맡기고 있다. 조부모 육아가 크게 늘면서 ‘황혼육아’라는 표현이 생겨나고, 황혼육아가 가져온 각종 질환을 가리키는 ‘손주병’이라는 신조어도 있다. 실제로 황혼육아 중인 조부모들은 긴 시간 아이들을 돌보느라 쉼 없이 몸을 움직이고, 안전사고 등의 위험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어 육체적 정신적으로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처음엔 아이들 크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쁨에 힘든 줄 모르고 버티지만, 손목, 허리, 무릎 등 아픈 곳이 늘어나고 통증이 심해지면 손주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참아내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

이 씨의 장모 역시 갑작스러운 심리 변화로 황혼육아 중단을 선언한 게 아니다. 2011년에 이미 손목터널증후군을 앓아 밤잠을 못 자게 할 정도로 심한 손목 통증에 시달렸으며, 2012년에 허리디스크 시술을 받았으나 재발해 지난해 또 다시 병원 신세를 졌다. 장모 김 씨가 병원을 찾을 때마다 의료진으로부터 듣는 말은 “푹 쉬셔야 한다”였다. 최근 허리 통증이 심해지고, 안구건조증까지 겹치자 부쩍 우울해진 김 씨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절박함에 잠정적 육아 중단을 선언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조사에 따르면 ‘손목터널증후군’으로 진료를 받은 사람 수가 2008년 10만 명에서 2012년 16만 명으로 50% 이상 증가했다. 2012년 자료를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전체 환자의 79%가 여성이며, 연령별로는 50대가 41%로 가장 많았다.

손목터널이란 손목 앞 쪽 피부조직 밑에 뼈와 인대들로 형성된 작은 통로로, 힘줄과 신경이 손 쪽을 향해 지나가는 곳이다. 정확한 발병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갑자기 무리하게 손목을 사용할 경우 손목터널을 덮고 있는 인대가 두꺼워지면서 신경을 압박해 통증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기 안아주기나 분유먹이기, 손빨래 등이 모두 손목 사용을 필요로 하는 육아 활동이다. 손목터널증후군 초기엔 손목 통증과 함께 손바닥과 손가락 끝이 찌릿찌릿하게 저리는 증상이 나타나고, 심한 경우 잠을 설치게 할 정도다.

육아의 기본인 아이 안아주기는 황혼의 조부모에게 손목뿐만 아니라 허리와 무릎 질환까지 안겨줄 수 있다.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의 몸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허리를 뒤로 젖히면 그 무게가 고스란히 척추와 무릎관절에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 아이를 돌보려면 주로 의자보다 바닥에서 생활하고, 수시로 앉았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해야 하는 것도 척추와 관절에 해로울 수 있다.

 
안산 튼튼병원 김형식 병원장은 “손목, 허리, 무릎에 손주병이 생기는 것을 막으려면 수시로 스트레칭을 하고 휴식과 근력운동에 쓸 수 있는 개인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며 “쪼그려 앉거나 오랫동안 아기를 안아주지 말고 빨래나 설거지 등은 분담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김형식 튼튼병원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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