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의 초상(10호 1968년)

▲ 여학생의 초상(10호 1968년)

【뉴스퀘스트=정형렬 갤러리피코 대표 】 청색 계열의 단아한 원피스 교복, 흰색의 셔츠 어깨 위를 걸치고 있는 금색톤 주황빛깔의 고운 실크 스카프는 색감의 대비 효과를 높이면서 여학생의 자태를 한층 우아하게 빛내주고 고귀한 존재임을 드러내 주고 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소녀는 수줍음과 수심을 간직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차분한 분위기를 발산하고 있다.

그녀는 모델을 하고 있는 가운데 점차로 발그레하게 상기된 얼굴이 되어 가는 듯하나 잘 견뎌낼 심성의 소유자일 것 같다.

흰색의 벽을 배경으로 하면서 창문의 일부가 배경으로 포함되어 구도상의 단조로움을 덜어주고 있다.

창문을 통해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어른거리는 사물이 비치면서 뭔가를 말하고 싶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의자에 등지고 있는 단발머리 여학생은 성숙미를 물씬 풍기고 있다.

그녀는 책을 무릎위 오른손에 쥐고 있으나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있다. 책의 색깔은 소녀의 청초한 이미지를 돋보이게 하려는 듯 초록색깔을 띠고 있다.

그녀의 허리를 기점으로 아래 배경벽의 색깔을 진하게 함으로써 전체적인 안정감을 주고 구획의 표시와 함께 공간감을 살려 주고 있다.

이러한 45도 각도의 초상화는 네덜란드의 거장 렘브란트, 베르메르, 고흐 등이 한결같이 선호하는 형식이다. 특히 렘브란트, 베르메르의 초상화 배경에는 빛이 들어오는 창문을 배치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 그림에서 윤자선은 빛 대신 창문에 하늘색을 써서 막혀 있는 분위기를 탈피하고 개방감을 표현해 주려고 했다.

또한 제국미술대학 선배이자 절친인 이쾌대도 45도 각도 포즈의 초상화를 즐겨 그렸고 그가 그린 윤자선의 초상화도 마찬가지로 얼굴을 약간 틀은 반정면상이다.

앞모습과 옆모습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이 초상화 양식은 자연스러운 스냅사진의 얼굴처럼 내면의 표정을 담아낼 수 있는 초상 표현 방식이다.

여학생은 양 손을 다소곳이 모으는 포즈를 취하며 차분하게 공손과 겸손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학생들이 선생님과 배움에 대한 자세에 있어 가장 상기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여겨진다.

스승님에 대한 교실에서의 해괴하고 무도한 행위들이 종종 벌어지는 교권 붕괴 사태는 예나 지금이나 북한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패륜적 작태로 여겨질 것이다.

윤자선 作 '풍어의 기쁨'(36.5-29.5 1976년)
윤자선 作 '풍어의 기쁨'(36.5-29.5 1976년)

▲ 윤자선 作 '풍어의 기쁨'(36.5-29.5 1976년)

윤자선의 작품은 그의 온화한 성격처럼 대개 차분하고 고요한 서정적 장면이 주류를 이룬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사회주의적인 주제화 화면이면서 격정적일 정도로 들뜬 희열과 감격의 도가니 속으로 우리의 시선을 몰입하게 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노동에 대한 꺼리낌과 피로감을 줄일 요량으로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여성들을 회화 화면의 전면에 등장시켜 노동에 대한 신성함과 고무감을 북돋아주어 왔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리얼리즘 회화의 전성 시절에도 이러한 근로 여성들이 험한 작업 현장의 주인공으로 곧잘 등장하곤 한다. 러시아 한인 화가 변월룡의 그림에서도 여자 어부 영웅의 그림이 인상깊게 그의 대표작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 풍어의 기쁨에서 등장하는 여인들이 잡아 올리는 출렁대는 그물에는 요동치는 금빛과 은빛 물고기들이 한아름 퍼덕이며 만선의 풍요를 상징하고 있다.

어선을 사선형으로 배치시켜 흔들거리며 파도 속을 가로질러 가는 듯한 역동성의 효과와 함께 짙은 군청색의 바다와 현격한 색채 대비 효과를 뿌려주듯 밝은 복장을 한 여인들의 노래소리와 함박웃음이 더욱 생동감 있고 강렬하게 느껴진다.

이 소품 그림은 마치 ‘작은 거인’이라는 비유를 대입해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마치 대작(大作)을 보는 듯한 환영어린 웅장함의 아우라를 집약적으로 응축시키고 있다.

윤자선 作 '진달래꽃'(10호 1973년)
윤자선 作 '진달래꽃'(10호 1973년)

▲ 윤자선 作 '진달래꽃'(10호 73년)

대기와 대지가 모두 진달래꽃의 감미로운 분홍빛과 연한 보라빛으로 물들으며, 꽃망울을 터뜨리는 봄의 화려함에 눈이 부시고 아려온다.

만발하는 진달래 꽃잎의 생동하는 붓터치의 힘과 사뿐사뿐 경쾌한 마띠에르에서 유화 맛이 실감나도록 물씬 느껴지는 작품이다.

가장 먼저 피어 봄의 서막을 알리는 봄의 전령으로서 진달래꽃은 자신을 피워내고 싶은 간절한 열망과 에너지가 폭발적이어서 삽시간에 불이 붙어 타오르는 듯하다.

진달래와 단짝을 이루는 개나리가 같은 관목 꽃으로서 서로 단짝을 이루며 뒤섞여 피어 노랑색과의 혼합 색상이 다정스럽고 화사롭다.

이 그림의 전반적인 분위기에서도 그의 다감하고 온화한 이미지가 꽃향기처럼 감돈다.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라는 김소월의 진달래 시 구절처럼 이 그림 속 풀밭에는 온통 진달래 꽃잎이 홍건히 뿌려져 있는데 초록빛깔과 개나리꽃의 노랑빛도 함께 뒤범벅이 되어 동심처럼 아기자기한 환상이 밀려온다.

이렇듯 화면에는 생동한 기운이 넘쳐 흐르는 가운데에서도 1세대 화가 특유의 기품있는 묵직한 색조톤 구성도 가미하여 전반적인 기조는 차분하고 중후한 아우라도 동시에 풍겨온다.

진달래 꽃대궐 후면의 그늘에 가려진 꽃잎들과의 운치있는 색상 대비와 명암 대조가 예리하다.

그리고 배후에 있는 청회색의 고풍스러운 건물의 차분한 인공미와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와 같은 활력적인 꽃들의 자연미가 이질적이면서 조화로운 화면 배치도 돋보인다.

한편 윤자선 서명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경쾌하고, 감각미 넘치는 예술적인 필체도 그의 유화 붓놀림처럼 인상 깊게 다가온다.

故 윤자전 작가
故 윤자선 작가

▲ 윤자선(1918~작고?)은 누구인가?

1세대 화가 박득순의 윤자선에 대한 회고담이다.

'월북작가 윤자선은 나보다는 5, 6세 밑일 것이다. 참 어질면서도 용해 빠진 인물이다. 가정도 괜찮았던 거 같은데 그가 왜 어떻게 좌익에 가담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6.25 직전에 서울역을 지나 용산중학교로 가던 길목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

그는 벌써 좌익이라는 소문이 날대로 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북으로 가야 할지, 머물러 있을 것인가를 상의해 보았으면 하는 눈빛이었던 거 같다. 나는 왜 그때 그런 생각을 못했는지 아쉽다.’

박득순을 비롯하여 월남행을 택한 1세대 작가들은 북한에서 사회주의자들의 비정함과 냉혹함을 미리 겪었기 때문에 낭만적 사회주의자들이 품은 이상적 환상을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윤자선은 종로3가의 갑부집에서 태어나 창신공립보통학교를 다녔던 윤자선은 갸름하면서 곱상한 인상이었으며, 낭만적 사회주의자였고 가까웠던 친우들도 주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는 일본의 제국미술학교를 나왔고 친구 이쾌대가 그의 초상화를 남길 정도로 친분이 각별하였으며, 그의 가녀린 인상처럼 여리고 인자한 성품이었다.

그는 해방 후 서울에서 숙명여자중학교, 경기상업학교, 서울경동중학교에서 미술교원을 하면서 좌익적인 미술가동맹에서 조직한 가두전람회에 출품 하였다.

6.25 당시 서울미술제작소에서 김일성 초상화를 그린 계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부득이 월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조성되었던 듯이 보인다.

조선역대미술가편람에서도 1918년생인 그의 작고년도를 알 수 없어 물음표로 표기하면서 "윤자선은 교원이라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후대교육사업에 힘쓰면서 여가시간을 내어 크지 않는 유화작품들을 그리곤 하였다. 기초가 든든하고 색채형상 기량이 일정한 높이에 있었기 때문에 그림이 조형성이 있고 미술적으로 탐탁한 데가 있었다"고 적고 있다.

그는 북으로 가서도 조선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로, 전후 평양건설대학 미술교원으로 창작사업과 교육사업을 꾸준히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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