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자유 제한으로 피서 떠나기엔 부담
“옥류관 냉면 먹으려 암표 구하기 전쟁”
보신탕 문화는 남북한이 큰 차이 드러내

평양의 한 야외매대에서 주민들이 빙수를 즐기고 있다. 노동신문이 지난 23일 보도한 사진이다. [사진=연합뉴스]
평양의 한 야외매대에서 주민들이 빙수를 즐기고 있다. 노동신문이 지난 23일 보도한 사진이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기자: 해수욕을 어디로 다녀왔습니까?

여성: 묘향산으로 다녀왔습니다.

지난 1985년 남북 고향방문단 교환 방문 때 벌어진 이른바 ‘묘향산 해수욕’ 논란의 단초가 된 남측 기자와 북측 여성 사이의 대화다.

‘산으로 해수욕을 간다’는 앞뒤 맞지 않는 북한 주민의 대답에 일각에서는 “북한은 산이나 계곡으로 멱 감으러 가는 것도 해수욕이라 부른다”는 억지 감싸기 발언까지 나왔지만 사실이 아니다.

북한도 해수욕에 대해 “바다물에 미역 감는 것”(조선말대사전, 2007)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남측 방문객과의 만남을 위해 이런 저런 ‘예습’을 했지만 돌발 질문에 엉뚱한 답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름철 피서 문화는 ‘묘향산 해수욕’ 만큼이나 격차가 크다. 여기에는 사회⋅경제적 수준 차이는 물론 문화 격차도 한 몫 한다고 볼 수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이동의 자유다. 지방 간은 물론이고 특히 평양~지방 사이의 이동에 제한을 두고 있는 북한에서는 동해안과 서해안의 바닷가를 마음 내키는 대로 오간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통제와 여러 제한이 따르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허가를 받는다 해도 피서를 위해 오갈 교통편이 마땅치 않은 것도 문제다. 버스와 철도 등 대중교통은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때 “불비(不備, 제대로 갖춰지지 못함)하다”고 토로했듯이 엉망이다.

자가용 차량의 경우 상상하기 어렵다. 한국도 1980년대 이후 개인의 승용차 소유가 늘어나면서 피서나 휴가를 위해 지방을 관광하거나 가족⋅친구와 멀리 떠나는 일이 가능해졌다는 걸 돌이켜보면 북한의 상황이 어느 정도 이해될 수 있다.

물론 북한 주민들도 나름대로의 여름나기 피서법이 있다.

가장 일반적인 건 가까운 강이나 바다를 찾아 물놀이를 즐기는 것이다. 강원도 원산의 명사십리나 함남 마전해수욕장 등은 여름철 해수욕으로 유명하다. 북한이 공개한 선전화보나 TV영상에도 모래사장을 가득 메운 인파가 드러나기도 한다.

금강산이나 묘향산 등지의 산행이나 계곡⋅폭포에서 일가족이나 직장 동료들과 즐기는 모습도 쉽게 접할 수 있다. 특히 묘향산은 평양에서 비교적 가까운 편이라 인기가 높다고 한다.

하지만 강이나 바닷가를 도보로 찾을 수 있는 거리가 아니라면 여간해서는 접근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힘이 센 기관이나 단위에서 버스 등을 빌려 길을 떠나는 게 아니라면 별도의 이동수단을 구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다.

김정은 시대들어 여름철 더위를 식힐 수 있는 먹거리가 다양해진 점은 눈길을 끈다. ‘에스키모’라고 불리는 아이스크림은 물론 평양과 지방도시에 등장한 이동매대에서 판매하는 빙수는 주민들이 가장 즐기는 아이템 중 하나다.

올해의 경우 평양을 중심으로 토마토빙수가 큰 인기라는 게 노동신문 등 북한 관영매체의 보도다.

평양의 경우에는 옥류관냉면이 가장 관심을 끄는 먹거리다. 한 평양 출신 탈북민은 “대동강변 옥류관은 풍광도 좋고 서비스와 맛이 좋아 평양 시민이나 지방 방문객의 경우 꼭 한번 가보려 하는 곳”이라며 “여름철 냉면의 경우 기관⋅지역별로 쿠폰이 할당되기 때문에 암표구하기 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북한 대동강맥주. [사진=조선중앙통신]
북한 대동강맥주. [사진=조선중앙통신]

대동강맥주는 최근 들어 남성들에게 호평받는다. 봉학맥주 등 기존 북한 제품에 비해 맛이 뛰어나고 여름철에는 청량감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다. 북한 당국도 TV와 신문 등을 통해 대동강맥주를 띄우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1년 8월 러시아 맥주 ‘발티카’ 생산라인을 돌아본 뒤 북한에도 수준급 맥주공장을 지으라고 지시했고, 175년 전통의 양조장 업체인 영국의 ‘어셔’ 공장 시설을 통째로 수입해 2002년부터 대동강맥주를 생산중이다.

북한 주민들은 여름철 최고의 보양식으로 ‘단고기’를 꼽는다. 한국 사회에선 상당기간 전부터 혐오식품으로 여겨지는 보신탕 문화가 여전히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탈북민들은 “오뉴월 단고기장물은 발등에 떨어져도 약이 된다”고 말한다. 그만큼 먹을 게 부족한 북한에서 보신탕이 큰 인기를 끈다는 의미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실정을 알고나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드러내면서 실망감을 보인다.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올 여름 북한 매체들은 주민들의 피서법을 부쩍 자주 소개하고 있다. 3년 넘는 기간 동안 코로나 비상방역에 막혔던 접촉과 이동제한이 풀리면서 점차 활기를 띠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주민들은 ‘묘향산 피서’ 수준의 인식에 머물러 있다. 2500만 인구 가운데 40%인 1100만 명이 만성적인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는 국제기구들의 보도는 북한 체제가 ‘생존’을 넘어 주민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쪽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점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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