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浙江)성 리수이(麗水)시 서기로 50대 초반의 젊은 피로 아버지 후광도 무시 못해

한때의 황태자 후하이펑 저장성 리수이 서기. 미래의 국가급 지도자를 예약했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사진제공=신화(新華)통신]
한때의 황태자 후하이펑 저장성 리수이 서기. 미래의 국가급 지도자를 예약했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사진제공=신화(新華)통신]

【뉴스퀘스트=베이징/전순기 통신원】 중국은 누가 뭐래도 만인이 평등하다는 절대 명제를 슬로건으로 외치는 사회주의 국가이기는 하다. 그러나 개개인의 신분이 타고날 때부터 확연하게 갈린다는 이른바 수저론, 계급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조금 심하게 말하면 웬만한 자본주의 국가보다 더 심하다고 해도 크게 무리가 없다. 이는 훙얼다이(紅二代. 혁명 원로의 자제), 관얼다이(官二代. 고위 관리의 자제)라는 단어가 아무렇지도 않게 일반 시민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현실이 무엇보다 잘 증명한다.

실제로도 이런 금수저들은 타고날 때부터 출발선이 다르다. 빨리 출세하는 것은 기본에 속한다. 게다가 마음만 먹으면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평생 먹고 사는, 경제 문제와 관련한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아도 된다.

사례는 진짜 부지기수라고 해도 좋다. 후진타오(胡錦濤. 81) 전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아들인 후하이펑(胡海峰. 51) 저장(浙江)성 리수이(麗水)시 서기가 아마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가 아닐까 싶다. 최근 일부 외신이 그를 집중 보도했다면 더 이상 설명은 필요하지 않다.

중국 권부 정보에 밝은 베이징 소식통의 최근 전언에 따르면 그는 외신들이 이례적으로 주목한 것에서 보듯 최근 정말 승승장구를 하고 있다.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현실을 잘 알 수 있다.

안후이성(安徽)성 지시(績溪)시 출신인 그는 베이팡자오퉁(北方交通)대학과 칭화(淸華)대학 EMBA 과정을 마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후 30대 중반부터 칭화대학이 설립한 이른바 샤오반(校辦) 기업인 칭화퉁팡(淸華同方) 계열사의 사장 등으로 일했다. 초고속 출세는 했으나 정치와는 일정한 거리가 있었다고 해야 한다.

하지만 정치 DNA는 어쩔 수 없었다. 2013년 5월 나이 41세 때 저장성 자싱(嘉興)시 부서기로 임명되면서 정치에 입문한 것이다. 이후 한때 중국 정계의 황태자로 불린 잠룡답게 정치 투신 4년 째이던 2017년 3월 자싱 시장에 오른다.

이어 고작 1년 3개월 만인 2018년 6월에는 인근의 리수이 서기로 영전했다. 훙얼다이, 관얼다이를 우습게 보는 궈얼다이(國二代. 국가급 지도자의 자녀)의 대표라는 타이틀에 어울리는 정치 행보라고 할 수 있었다.

한때 그는 요직 중의 요직인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시 서기로 영전할 것이라는 소문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다롄 서기 영전은 불발에 그쳤다. 다롄 서기는 부부장(차관)급 자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엄청난 요직이라고 해야 한다. 지금은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됐으나 한때 당정 최고 지도자 물망에 올랐던 보시라이(薄熙來. 74)가 젊은 시절 차고앉은 자리였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이 자리에 올라설 수 있다면 후 서기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수밖에 없다. 향후 승승장구를 거듭하면서 최소한 부총리 자리 이상을 바라볼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총리 내지 총서기 자리까지 넘보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다롄 이동설은 진짜 설에 그쳤다. 베이징 소식통의 전언을 종합하면 후 전 총서기 겸 주석은 이에 대해 상당히 섭섭해 했다고 한다. 하기야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자신의 후임인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겸 국가주석에게 은근히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었다. 둘의 관계는 나름 상당히 괜찮은 것으로 보이니 그럴 만도 했다. 외신에서 내년에는 후 서기의 행보가 각별한 주목을 모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닌가 보인다.

그는 내년 다롄 서기로 이동하지 않을 경우 중앙 정부의 부장(장관)으로 승진도 가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약간 젊기는 해도 부장에 앉지 못할 나이도 아니다. 일부에서는 상무부 등 구체적인 부처 이름까지 나오고 있기도 하다. 그의 젊은 시절 기업 경영 이력을 감안할 경우 충분히 감당이 가능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는 장점이 많은 젊은 피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아버지로부터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아무나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아니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어릴 때부터 제왕학을 본능적으로 배웠다는 말이 된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으면서도 겸손한 것도 그의 장점이라고 해야 한다. 얼굴에서 풍기는 온화한 분위기는 다 이런 성격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또 결단력도 대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젊은 시절 기업을 이끌면서 보여줬던 장점이라는 것이 주변의 전언이다.

이와 관련, 칭화퉁팡 계열사에서 일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베이징의 기업인 한우(韓武) 씨는 “후 서기와 비슷한 시기에 칭화대학 EMBA를 졸업하고 칭화퉁팡 계열사에 입사했다. 당시 그에 대한 인상은 아직도 강렬하다. 한번 일을 추진하면 포기라는 것이 없다. 망설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저돌적이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면서 그가 진짜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약점도 없지 않다. 너무 늦게 정계 생활을 시작해 경험이 다소 일천한 것은 역시 장점이라고 하기 어렵다. 여기에 아버지의 든든한 후광이 경우에 따라서는 약점으로 작용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중앙 무대에 한 번도 서보지 못한 채 50대에 접어들었다는 사실도 내세울 것은 못 된다.

그럼에도 그의 앞날이 기대되는 것은 50대 초반의 젊은 피라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해야 한다. 게다가 비슷한 연령대에 그보다 스펙이 좋은 케이스가 별로 보이지 않는 현실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아버지의 후광을 볼 수밖에 없는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도 감안해야 한다. 시진핑 주석 본인도 그랬으니 말이다. 한때의 황태자였던 그가 이제 미래의 국가급 지도자를 미리 예약해가고 있다고 봐도 크게 무리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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