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 기자】 우리는 종종 박물관에 있는 그림들을 보면서 감상하다. 그러나 이 예술품들의 원래 색들은 훨씬 더 밝을 것이다. 색이 시간이 지나면서 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색이 저하되는 ‘퇴색(color degradation)’은 그동안 빛 노출 때문이라고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 과학자들은 퇴색의 새로운 원인으로 습기를 지목했다.

이 연구를 이끈 스탠포드 대학의 싱크로트론 방사선 광원(SSRL) 전문가인 샘 웹(Sam Webb) 교수는 “이러한 이유가 왜 어떤 그림들은 빛에 노출되지 않는 어두운 방에 보관되어 있어도 색이 바래는지를 설명해준다”고 말했다.

빛에 노출되지 않아도 습도에 노출되면 퇴색돼

웹 교수는 "많은 르네상스시대의 그림들은 색이 바래거나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원인을 이해하는 것은 과거의 걸작들을 유지하고 보호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스탠포드 대학을 비롯해 미국 에너지부의 SLAC 국립가속기연구소, 암스테르담 대학,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Rijksmuseum)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공동 연구에서 연구팀은 왜 As(V)라고 불리는 비소(As)의 한 형태(종류)가 오피먼트(orpiment)라는 노란색 황화비소(arsenic sulfide) 색소와 함께 발견되는지, 그 이유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전 연구에서는 색소를 As(V)로 변환하면 색이 저하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이러한 변화의 기본 이유는 여전히 불분명했다.

As(V)를 연구하기 위해 연구팀은 17세기 르네상스시대의 걸작품인 얀 다비드존 드 힘(Jan Davidszoon de Heem)의 그림 "유리 꽃병 속의 꽃의 정물화(Still Life with Flowers in a Glass Vase)”를 샘플로 이용했다.

그림의 중앙을 보면 노란 에글란틴 장미는 흰색으로 바래고 있다. 이 노란 장미의 색 변화를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연구원들은 SSRL의 빔 라인 중 하나에서 나오는 밝은 X선으로 샘플 여기저기에 투사했다.

이렇게 투사한 X선 사진을 통해 연구팀은 그림 샘플의 단면과 As(V)의 위치에 대한 2D 이미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비소는 습도에 따라 이동하기 때문

연구에 동참한 SSRL국립가속기연구소의 요한나 넬슨 웨커(Johanna Nelson Wecker) 연구원은 "SSRL의 X선은 우리로 하여금 그림의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었다. 우리는 빛에 노출되었지만 분해되지 않은(퇴색되지 않은) 층들을 보았다”고 말했다.

X선으로 이미지를 찍은 후, 연구팀은 X선 현미경을 이용해 As(V)의 화학 반응을 고해상도와 3D로 이미지화 했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그림의 퇴색 경로를 매핑할 수 있었다.

넬슨 웨커는 “이러한 경로들은 습도에 노출되면 비소가 이동할 수 있는 흔적을 만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화학학회(ACS)저널 최근호에 실린 연구에서 연구팀은 비소가 예술가가 사용하거나 색소를 바른 곳에만 머무르지 않고 습도에 따라 이동한다는 발견했다.

다시 말해서 그림의 색소 속에 있는 비소가 습도로 인해 빠져나오기 때문에 결국 색이 퇴화되는 퇴색 현상이 일어난다는 연구다.

따라서 오래된 그림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습도 노출을 막는 것은 물론 색소의 비소를 이동하지 않도록 온도 조절은 물론 화학적 접근법도 필요하다고 연구팀은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