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오랜 정전체제, 실질적 전쟁억제체제로 작동

1951년 10월 판문점에서 열린 정전회담 모습.[사진=주한미군제공/연합뉴스]
1951년 10월 판문점에서 열린 정전회담 모습.[사진=주한미군제공/연합뉴스]

【뉴스퀘스트=권태오 예비역 육군 중장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여 전세가 역전되자 깜짝 놀란 김일성은 베이징 주재 인도 대사를 통해 정전(停戰)을 언급하며 조건을 제시하였다.

‘첫째, 북한군은 38선 이북으로 철수하겠다. 둘째, 남반부는 유엔군이 점령하라. 셋째, 다만 미군은 인천상륙작전 이전인 부산 교두보(낙동강 방어선)로 철수하여 주둔하라’는 것이었다. 말이 안 되는 조건이었지만 9개월 후인 1951년 6월, 유엔주재 소련대사 말리크도 이 말을 반복하였다.

그렇게 시작된 휴전 회담의 관심사는 크게 세 가지였다. 휴전선의 설정, 휴전 후 정전협정 준수 보장책, 그리고 포로교환 문제였다.

첫 번째 휴전선 설정과 관련하여 공산 측에서는 전쟁 이전의 경계선인 38선을 고집하였으나 유엔군 측에서는 정전협정을 조인하는 날 쌍방의 접촉선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정전협정을 맺고 난 후 정전상태를 감독하기 위해서 중립국 감독위원회를 두자고 했는데 공산 측은 이 위원회에 참전국인 소련을 포함시키겠다고 억지를 부렸다.

포로에 관해서 공산 측은 개인 의사와 무관하게 현재 수용하고 있는 모든 포로를 무조건 상대방에게 돌려보내자고 주장하였으나 유엔군 측은 포로 각 개인이 자유의사에 따라 갈 곳을 정하도록 하자고 설득하였는데 이 의제가 가장 오랫동안 휴전협상을 지연시켰다.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시작된 회담은 판문점으로 자리를 옮겨 협정 조인 때까지 총 158회 개최되었는데 이는 역사상 가장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던 휴전회담이었다.

그리고 끝까지 협정조인을 가로막았던 포로 자유송환 문제는 이승만 대통령의 반공포로 석방(1953.6.18.)이라는 초강수를 거치는 우여곡절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유엔군 측의 요구대로 관철되었다.

한, 영, 중 3개 국어로 작성된 군사적 차원의 협정문은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에 쌍방의 수석대표가 서명하였고 12시간이 지난 2200시를 기해 발효되었다. 이로써 전 전선에서 총성이 멎고 3년 1개월간의 전쟁은 휴전으로 마무리되었다.

곧이어 완전한 종전을 위해 참전국 모두가 참가하는 정치 분야 협상이 시작되었는데 주 의제는 한국통일과 외국군대의 철수 건이었다.

그러나 회의 참가국 모두는 나름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고 특히 전쟁을 치르고도 해결되지 못한 한국 통일문제는 도무지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결국 협상은 아무런 성과 없이 중단되었고 더 이상 국제사회는 정치협상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군사 정전체제로 70년이 지난 지금, 남과 북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남한은 전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거지 나라에서 출발하여 70~80년대 고도성장하며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발전하였다.

88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외교의 지평도 확대되어 현재 쿠바, 시라아를 제외하고 유엔의 192개 회원국과 수교를 하고 있다. 특히 군사적으로는 전쟁 초기 변변한 총 한 자루 없던 군대가 자주국방을 이룩하고 세계6위의 강군으로 성장하였고 4위의 방산 수출국이 되었다.

반면 북한은 해방 당시 남한보다 생활수준이 나았던 지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전이후에도 ‘전인민의 무장화, 전국의 요새화, 전군의 간부화, 전군의 현대화’를 주창하며 전쟁 준비에만 몰두하여 비록 핵무기까지 개발하기는 하였지만 국가 경제는 파탄에 이르러 1990년대 중반 2백만 명이 아사하는 참혹한 상황까지 겪었다.

현재 북한의 경제 수준은 2022년 기준 남한 GDP의 56분의 1 수준으로 전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로 전락하였다. 외교적으로도 비록 수적으로는 159개국과 교류하고 있으나 핵과 인권, 테러리즘 등으로 인해 점차 단교하는 국가가 늘고 있고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있다.

권태오 예비역 육군 중장
권태오 예비역 육군 중장

정전 70년 동안 북한은 총 3121회의 침투와 국지도발을 자행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전으로 비화되지 않고 성공적으로 전쟁이 억제되어 온 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기초하여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과 정전을 관리하는 유엔사의 역할이 지대했음을 절대 간과할 수 없다.

세계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성공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한반도의 정전체제는 껍데기뿐인 정치적 선언을 뛰어넘는 실질적인 전쟁억제체제로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