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와 수리개'...선명한 기운과 부드럽고 세련된 감각이 그의 체취를 능히 식별케 해
'옛 성터의 겨울'...생동감 넘치는 화가의 개성이 매우 잘 드러나

【뉴스퀘스트=정형렬 갤러리피코 대표 】

리경남 화가의 '소나무와 매'(128-64.5 2006년)
리경남 화가의 '소나무와 매'(128-64.5 2006년)

▲소나무와 매(128-64.5 2006년)

매는 우리 민족에게 예로부터 용기의 화신으로서 지사(志士)에 비견되었고, 정직한 선비의 상징이었다. 한번 마음 먹은 먹잇감은 놓치지 않고 포획하는 성향 때문에 작심한 뜻은 굽히지 않는 의로운 지사의 풍모를 갖추었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독수리와 달리 살아 있는 짐승만 직접 사냥해서 잡아먹기 때문에 올곧은 선비의 기상을 지녔다고 추앙받은 날짐승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매는 육지의 맹수 호랑이와 유사한 성격을 지녀서 우리 민족에게 유독 사랑받은 맹금류였다.

소나무는 식물이지만 그 형상이 구렁이의 몸짓처럼 유독 유연하고 탄력적인 몸체를 지니면서도 거친 표피(피부 살갗)를 지니고 있어 암수 동체를 한몸에 구현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나무를 회화로 표현할 때, 어떤 나무 보다도 역동성이 감지된다. 그 나무 본체는 커다란 뱀이나 구렁이가 움직이는 장면이 순간적으로 정지된 듯하고, 소나무 잎새는 바람결에 흩날리는 말갈기나 긴머리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예로부터 이 소나무와 매의 두 조합을 우리의 화원들이나 문인들은 주요 소재로 삼고 즐겨 그렸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그림들이 아래 첫번째의 신윤복의 <소나무와 매>와 두번째의 리석호 <소나무>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수려한 색채를 즐겨 쓰던 신윤복이 이 그림에서 만큼은 사의성(寫意性)이 농후한 수묵화로 그린 점이 이채롭다.

신윤복의 '소나무와 매'
신윤복의 '소나무와 매'

 

리석호의 '소나무'
리석호의 '소나무'

또한 리석호도 그의 평소 지론이나 성향과는 달리 진채세화(진한 채색과 섬세한 묘사력을 풍부하게 사용한) 화풍으로 소나무와 매를 그렸다. 그의 초지일관된 사의성이 북한 화단에서 비판받고 있던 시기에 그가 자신의 다른 존재감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그의 평소 화법과는 달리 의도적으로 그린 것이다. 물론 이 그림의 출현 직후부터 그는 북한화단에서 대단한 평가를 재획득하며 조선미술박물관의 대표적인 그림으로 칭송받고 있다.

그런데 리경남은 이 두분들의 장점을 취하면서 수묵 담채로 담백하면서도 청아한 빛깔을 전반적인 바탕에 깔아놓으면서도 입맛을 돋우는 신선한 양념처럼 채색을 유효적절하게 가미하여 원근감과 입체감의 풍미가 뚜렷하다.

어찌보면 가장 리석호다운 화풍의 <소나무와 매> 그림을 후대에 구현한 장본인이 아닌가 여겨진다. 소나무도 쭉 위로 뻗어있지 않고, 누워서 뒤틀리고 꿈틀거리는 와송의 굴곡적인 형세를 매우 운율적으로 묘사하였고, 매의 자세나 표정도 곧 표적을 향해 날아오르기 직전의 긴장감을 안겨주고 있다.

리경남 화가의 '소나무와 수리개'(80호 2010년)
리경남 화가의 '소나무와 수리개'(80호 2010년)

▲소나무와 수리개(80호 2010년)

벼랑 위 바위 아래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의 아슬아슬한 모습이 신비로운 절경으로 다가온다. 흙과 바위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뿌리를 박는 그 몸짓에서 생명력 자체의 강인함이 전율처럼 느껴진다. 소나무의 뿌리는 벼랑 위 바위와 주변의 흙떼를 한몸과 같이 단단하게 결속시켜 부서지거나 갈라지는 것을 막아주고 있다.

하지만 벼락이 치거나 산사태가 나서 절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면 소나무도 종말의 숙명을 비껴가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사태는 소나무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찾아오지 않을 수 있다. 소나무는 향후 일어날지도 모를 그런 위험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숙명을 묵묵히 수용한다.

어쩌면 안온해 보이는 곳에서 자란 소나무에게도 불시에 찾아올 벌목이나 이식(移植)의 위험은 상존해 있기에 어느 곳이 좋다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리경남의 소나무잎의 색감은 짙푸른 청록빛이 유달리 생신(生新)하다. 껍질의 형세와 빛깔은 또 어떤가? 마치 허물이 벗겨지는 과정의 구렁이의 껍질처럼 짙은 고동색과 두텁고 억센 살결이 뽀얗게 드러나고 섬세하고 보드라운 무늬가 공존하고 있다.

리경남의 그림은 굳이 서명을 보지 않더라도 청초하고 선명한 기운과 부드럽고 세련된 감각이 그의 체취를 능히 식별하게 해준다. 벼랑 아래 깍아지른 바위는 시원스러운 붓질로 오목조목하게 표현하여 질감과 음양감을 입체적으로 살려주고 있다. 가까이 보이는 이끼 낀 잿빛의 바위 너머 저멀리 아래의 회색빛 바위 절벽은 완전히 고립된 동떨어진 섬과 같은 또다른 아득한 여운을 남겨주고 있다.

극지방과 사막 지역에 사는 생물들의 생태를 보면서 그 지역의 척박함에 기피의 시선을 보내지만, 그들은 단단한 적응력으로 안착을 하여 그곳만이 유일한 삶의 터전으로 여기고 강인하고 억세게 버티며 살아갈 채비를 갖추고 있다.

이 소나무도 나락으로 떨어질 비운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지만, 그 의연한 기상과 자태로 볼 때는 오히려 그 시원한 바람과 탁트인 경관을 만끽하는 달관의 기품이 느껴진다. 소나무 옆에서 벼랑 사이로 곡예 비행을 유유히 즐기는 수리개에서도 곡예 비행사의 흥분과 긴장이 동시에 엿보인다.

절벽위 소나무의 모습이 그 자체로 벼랑 위에서 곡예 비행을 하고 있는 위태로운 북한의 생생한 현실로 비춰지는 것은 왜일까? 그리고 시대적 수명을 마감하는 고구려 말기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왠지 모르게 비운의 운명을 연상케 한다. 절벽 아래에서는 아직 시야에 들어오지 않지만 새시대의 군상들이 포복 걸음으로 잠행하며 숨죽인 맥박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고구려 말기의 연개소문이 강력한 카리스마로 중원의 대륙과 언제라도 맞붙어 굴복하지 않고 적극 공세를 펼쳤던 시절이 상기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전쟁 준비와 국방에 온힘을 쏟아 부은 결과는 그 지도자의 당대 위력이 지속되지 못하고 사후에 곧바로 소멸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물론, 곧이어 수십년간의 파란만장한 투쟁 끝에 발해라는 대제국으로 거듭났지만 말이다.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가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 위치하여 오래전 그 모습이 재현되는 듯한 환영을 불러일으킨다.

리경남 화가의 '옛 성터의 겨울' (50호, 2006년)
리경남 화가의 '옛 성터의 겨울' (50호, 2006년)

▲옛 성터의 겨울 (50호, 2006년)

리경남의 '옛 성터의 겨울'은' 그의 생동감 넘치는 개성이 매우 잘 드러나고 있는 수작이다. 소나무와 기타 나무들의 줄기와 가지 위에는 청명한 빛이 투과하는 눈을 이고 있다. 어지러이 교차하고 얼키고 설켜 있는 나무가지들은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굽이굽이 휘어져 꿈틀거리고 있는 듯 보이나,

한편으로 작가가 의도한 붓질에서는 전반적으로 단정하고 안정감을 주면서도 질서 정연하고 가지런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 위에 붙어 있는 나뭇잎들과 솔잎들은 바람에 흔들리고 맑은 색채감를 새벽별처럼 반짝거리며 그 휘황한 빛의 잔상을 그림 표면에 흩뿌리고 얼어붙었던 빛의 덩어리들은 눈 위에 녹아 흘러내리고 있다.

옛 성터의 단정하게 보수된 깔끔한 인공미와 대각선 구도로 대담하게 가로지른 겨울 나무들의 자연미가 조화롭게 공존하며 푸근한 겨울날의 추억을 회상하게 하는 아늑한 그림이다. 또한 성의 직선적인 견고함과 벽돌의 단단한 이미지에 나뭇가지들의 굴곡진 곡선과 하늘거리는 나뭇잎의 선명한 대비가 인상적이다.

이 성의 가운데 열려 있는 문의 공간 여백은 마치 누군가 반가운 손님을 향해 활짝 열어 놓고 기다리는 분위기이다. 곧 이 성 안의 그리운 이와 회상의 이끼가 묻어 있는 자연경관들을 만나기 위해 반가운 손님이 금방이라도 찾아올 것 같은 정겹고도 생생한 현장감을 선사하며, 화사한 빛과 온정의 기운을 드리우고 있다.

리경남 화가 
리경남 화가 

◇리경남(1940~ )은 누구인가?

리경남의 그림 세계를 체험하면 색상이 은은하면서도 강조할 부분은 칼라가 짙은 원색에 가깝다. 그에게서 발산되는 색채 미감의 대조 화법은 시원스럽고 활력이 넘치며 고상미와 세련된 감흥이 고조된다. 그만의 몰골기법으로 표현된 형상과 명암은 유난히도 시각적으로 입체감이 도드라지고 영롱하며 투명하다.

특히 겨울의 눈 풍경에서는 그의 이러한 특징과 장점이 빛을 발한다. 그의 그림은 수채화에 가장 가까운 조선화라고 평가받을 만하다. 그의 필력은 속도감이 넘치면서도 섬세한 공력이 투여되고 그의 색채감은 포인트와 악센트의 농도가 효과적으로 집약되면서도 리듬감을 탄력있게 조절하여 부드럽고 담백함이 잘 어울려 있다.

조선화의 몰골기법을 가장 정통하게 구사하면서도 활달하게 펼치는 두 명의 화가를 꼽으라고 한다면 김상직과 리경남을 우선 추천한다. 이 두분 화가의 화면에서는 망설이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다. 특히 리경남의 회화에서는 환한 빛이 피어오르고 경쾌한 리듬을 몰아가며 달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리경남을 조선화 분야의 ‘빛의 화가’라고 부른다면 적절한 별칭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추운 겨울 영상을 너무나 밝은 빛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빛 덩어리로 가득 채우기 때문에 동장군이 설 자리가 없어지고 만다. 쌓인 눈이 녹아 스러진다는 뜻의 북한어 ‘눈석이’라는 그의 대표작에서도 빛의 온화한 열기가 화폭에 투영되어 겨울은 이내 따사로운 봄을 맞이할 것 같은 계절의 전환 분위기를 띄워 놓기 마련이다.

북한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에서 화가로 일하고 있는 리경남은 유화에서 조선화로 바꿔 가장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유화로 시작했으나 조선화를 그리기로 결심한 후 피나는 노력 끝에 조선화 대가로 성공했으며 500여점의 ‘국보작품’을 창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자기 작품이 남과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할 때 고통스러웠다고 술회했다. 구상주의 회화의 좁은 범주 틀 내에서의 격전의 회화세계인 북한 화단에서 이러한 번뇌와 고민의 해결은 모든 북한 화가들의 난제일 것이다.

이 과정에 대해 한 소식지는 ‘침식을 현장으로 옮기고 붓을 잠시도 놓을 새 없이 조선화 창작에 파묻힌 그의 모습은 돌격선에 선 병사의 자세와 다름이 없었다고 한다.

눈에 핏발이 서고 붓을 쥔 손에 자개바람이 일(쥐가 일어날) 정도로 피나는 노력을 한 끝에 드디어 그는 유화창작가로부터 조선화 창작가로 힘차게 방향타를 돌릴 수 있었다.’고 전한다.

그의 작품성과 특징에 대한 북한의 평가는 이렇다. “조선화의 전통적인 몰골기법을 적용한 그의 작품들에서는 오랜 옛날부터 현재까지 상례로 되여온 흰색바탕을 볼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몰골기법으로 화폭을 창조함에 있어서 사물대상으로부터 느끼게 되는 인간의 감정에 맞는 다양한 색조의 배경을 주었다.

간결하면서도 정서가 풍부한 배경을 줌으로 하여 그의 작품들은 백색의 여백을 주었을 때보다 훨씬 깊이 있고 사색적인 형상세계를 펼치게 되였다. 또한 힘있는 필치와 세련된 묘사, 현실에 대한 진실한 감정, 간결하면서도 조형예술성이 뚜렷하고 사색적이며 매 작품마다 정서가 흘러넘치고 있다.”

리경남은 지난 1990년 이탈리아에서 진행된 제12차 수채화 콩쿠르에서 ‘특등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는 1945년 평북도 정주군읍에서 출생하고 1968년 평양미술대학 졸업하였다. 1997년 인민예술가 칭호를 수여받고, 2005년 평양국제문화회관에서 최웅권과 2인 미술전람회 진행하였다.

리경남 화가 발언의 전문이다. “인생의 황혼기라고 할수 있는 60대에 이르러서야 나의 그림이 다른 화가들의 그림과 비슷하다는것을 절감했을 때 고통스러웠다. 창작가라면 응당 새것을 들고나와야 한다는 질책이 나의 량심을 흔들었다.”

어떤 북한 인사는 생전에 그의 그림을 보면서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10년은 더 젊어지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열렬한 골수팬들이 존재한다.

그의 아들 리윤진은 아버지의 피를 이어 받아 평양미술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였고, 맏딸 리혜정은 평양미술대학을 졸업, 만수대창작사에서 창작가로 일하고 있다고 매체는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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