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자오쉬 중국 외교부 부부장. 불운의 아이콘으로 불리나 차기 부장이 될 것으로보인다.[사진제공=런민르바오(人民日報)]
마자오쉬 중국 외교부 부부장. 불운의 아이콘으로 불리나 차기 부장이 될 것으로보인다.[사진제공=런민르바오(人民日報)]

【뉴스퀘스트=베이징/전순기 통신원】 어느 사회에서나 천하의 인재들은 눈에 잘 띈다. 그렇다고 모두가 다 중용되거나 출세하는 것은 아니다. 잘 풀릴 것 같으면서도 안 되는 경우 역시 꽤나 많다. 이런 케이스에 직면하는 사람을 우리는 불운의 아이콘이라고 부르지 않나 싶다.

중국의 관계(官界)에도 이런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엘리트의 요람으로 불리는 외교부로만 한정하면 마자오쉬(馬朝旭. 60) 부부장(차관)이 바로 이 불운의 아이콘이 아닌가 보인다.

베이징대학 경제학과 출신인 그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정말 잘 나갔다. 왕이(王毅. 70) 외교부장이 2개월여 전 제20차 전국대표대회(매 5년마다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정치국 위원 겸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으로 승진하면서 퇴임하자 바로 후임으로 거론됐다면 더 이상 설명은 필요 없다.

하지만 정작 후임으로 임명된 사람은 그가 아니었다. 3년 후배인 친강(秦剛. 57) 전 주미 대사가 주인공이었다. 그로서는 정말 아쉬웠겠으나 후일을 기약하면서 와신상담을 하지 않으면 안 됐다.

놀랍게도 기회는 너무나 빨리 왔다. 친강 외교부장이 아직까지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비리 등으로 고작 7개월여 만에 낙마한 탓에 다시 그의 이름이 후임으로 거론된 것이다. 이번에는 거의 결정적이었다고 해도 좋았다. 심지어 외신들은 그의 외교부장 기용설을 기정사실화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는 분루를 삼켜야 했다. 구관이 명관인지는 모르겠으되 엉뚱하게도 왕 위원 겸 주임이 원래 자리에 컴백한 탓이다. 정말 지지리도 복이 없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당연히 그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나이로 볼 때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질 가능성도 높다.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시 출신인 그는 어릴 때부터 천재로 유명했다고 한다. 주변 친인척들이 대단한 인물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았나 싶다. 베이징대학에 진학한 것은 따라서 일도 아니었다.

그는 베이징대 대학원에서 정치경제학을 공부할 때인 1986년에는 싱가포르의 한 방송국이 주최한 ‘아시아 대학생 토론대회’에 참석해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영어에 능통한 달변가라는 말이 될 수 있다.

1987년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그가 선택한 길은 외교부 공무원이 되는 것이었다. 아마 적성도 잘 맞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후 그는 마치 물 만난 고기마냥 펄펄 날았다. 승진 역시 엄청나게 빨랐다. 33세 때인 1996년에 부처장에 올라섰다면 진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36세 때인 1999년 모교에서 정치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도 받은 그에게 이제 거칠 것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유럽의 각국 주재 대사관에서 근무하다 2004년 본부로 돌아온 후 가볍게 부사장(부국장)으로 승진했다. 출세가도를 달렸다고 해도 좋았다.

2009년에는 외교부 내의 엘리트들만 간다는 신문사(공보국) 사장(국장) 겸 대변인이 되는가 싶더니 2년 후에는 가볍게 부장조리(차관보)로까지 올라섰다. 그의 나이 48세 때였다.

이후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유엔 제네바 사무국 대사 등을 지낸 후 2019년 외교부 부부장이 됐다. 왕이 부장을 제외하면 외교부 내의 서열이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 부장급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은 아마 이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두 번이나 부장 인사에서 시쳇말로 물을 먹은 그는 불운의 아이콘으로 불리기는 하나 장점이 대단히 많다. 박사 학위를 보유한 인재답게 상당히 논리적인 것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대학원에서 그를 지도한 베이징대 천펑쥔(陳峰君) 교수의 설명을 들어봐야 할 것 같다.

“그는 단순히 머리만 좋은 것이 아니다. 상당히 논리적이다. 어떨 때는 지도교수들보다 더 뛰어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오만하거나 그렇지도 않았다. 가능하면 상대를 배려하면서 설득하려고 하는 노력을 늘 기울이고는 했다. 교수들과 주위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공직 생활을 하면서 4년 만에 박사 학위를 받은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는 외교관답게 상당히 사교적인 인물로도 유명하다. 주재했던 국가들의 친지들이 최소 수천여명에 이르는 것은 이로 보면 하나 이상할 것도 없다. 이들 중에는 국가급 지도자들도 꽤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청렴한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그의 장점으로 꼽힌다. 35년 공직 생활을 하는 동안 금전적인 문제로 단 한 번도 구설에 오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재산도 허름한 작은 아파트 한 채 외에는 거의 없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기도 하다.

말할 것도 없이 그 역시 단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워커홀릭(일중독)을 거론해야 할 것 같다. 본의가 아니기는 하겠으나 부하 직원들을 피곤하게 만들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왕이 외교부장은 조만간 현직에서 내려올 가능성이 높다고 해야 한다. 정치국 위원과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으로 있으면서 부장 역할까지 맡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나이로 볼 때 부장 자리가 어울리지 않는다. 마 부부장이 후임이 될 확률은 누가 보더라도 상당히 높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보인다.

그가 다시 불운의 아이콘이 되지 말라는 법은 당연히 없다. 하지만 현재 부장급 대우를 받는 만큼 최악의 경우라도 당 내 외교 컨트롤타워인 대외연락부 등으로 이동할 수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더 승진할 여지도 충분히 있다. 부총리급으로 이동 가능하다는 말이 될 것 같다. 그가 중국의 외교 컨트롤타워를 좌우할 날이 곧 온다고 단언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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