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교류통해 남북간 동질감 회복가능...
내년 파리 하계올림픽은 스포츠정신에 입각, 남북만남 성사돼야

북한 유도 대표팀 김철광(오른쪽)이 25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샤오산 린푸 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유도 남자 73㎏급 한국 강헌철과 16강전에서 승리한 뒤 악수를 거부하고 돌아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북한 유도 대표팀 김철광(오른쪽)이 25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샤오산 린푸 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유도 남자 73㎏급 한국 강헌철과 16강전에서 승리한 뒤 악수를 거부하고 돌아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 】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남북대결이 펼쳐지고 있다. 우리가 이기는 경기도 있고 반대인 경우도 있지만, 한 눈에 보아도 불꽃이 튄다. 한·일 대결이 저리 가라 할 정도다.

북한 선수의 손이 올라갈 경우, 우리 선수에게 잘 싸웠다는 격려의 마음이 앞선다. 그런데 북한 선수의 고개가 숙여질 때는 “아, 저 선수 돌아가서 어떻게 하나”란 안타까움이 먼저다. “경기란 이기기도 하고 질 수도 있는 것이니 마음 쓰지 마라”고 북한 당국이 보담아줄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은 필자의 기우일까.

승패에 관계없이 경기를 마치고 악수를 나누는 경우도 있지만, 졌으나 인사를 기다리는 우리 선수에게 눈빛조차 주지 않고 돌아서 나가버리거나 졌다고 기념사진 촬영을 거부하는 북한 선수들이 보였다. 인사를 거부한 선수는 2018년 유도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리와 한 팀을 이루어 출전했던 선수로, 당시 환하게 웃는 얼굴의 단체사진이 문제가 되었던 것일까.

어찌되었건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조선노동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가감 없이 말하면 김정은에 충성을 다하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을 위해서.

우리 선수들 역시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북한 선수들과 다름이 없다. 그런데 만약 우리 선수가 이기고 지건 간에 인사를 나누기 위해 기다리는 북한 선수를 외면한다면, 아마 그 선수는 더 이상 국가대표는커녕 선수로서의 생명이 끝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남북한 현실이자 차이이고, 그 다름이 바로 우리가 가지는 힘이다. 여유와 포용,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자유다.

통일 이전 서독은 분단을 극복하고 양 독일 간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기본원칙에 입각해 동독과 체육교류를 추진했다. 양 주민 간 동질감을 강화할 수 있는 만남의 장이 되고, 민족단합에도 효과적인 것으로 체육에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 동독은 정치적으로 접근했다. 국제적으로 우수한 성적을 보이는, 특히 서독보다 우위에 있는 체육종목에서 교류하여 동독 주민에게 서독과는 다른 새로운 동독 민족으로서의 자의식과 자긍심을 불어 넣어주고, 동독의 우월성을 선전하고자 했다.

1974년 「동서독 체육협정」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체육교류는 우승에만 역점을 둔 동독의 방침에 따라 특정 종목의 정상급 선수들 간에만 이루어져 극히 제한되었다. 동독이 양 주민 간 관계를 긴밀히 할 수 있는 체제 위협적으로 파악했고, 우수체육인의 서독 탈주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체육교류로 민족화합에 기여하고자 한 서독의 의도도 크게 성과를 거둘 수는 없었다. 그러나 체제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측 주민 모두 같은 독일인으로서 인간적인 호감을 보였다는 사실은 확인되었다.

1972년 뮌헨올림픽 당시 서독 여론조사에 의하면 동독 선수의 메달획득에 서독 조사대상자 54%가 기뻐했고, 12%만이 불쾌감을 보였다. 체코, 스위스, 오스트리아, 동독 중 어느 편을 응원하느냐는 질문에 47%가 동독이라 응답했다.

많은 동독인들이 동독의 사회주의형제국과 서독 간 경기에서 서독팀을 ‘우리팀’으로 부르며 서독을 응원하여 민족적 유대감을 보였다. 간헐적이지만 체육교류가 이어지면서 동독 정부의 의도와는 반대로 동독 주민의 유대감은 커져, 결국 서독행 자유 행진에 한몫했다. 어렵더라도 체육교류가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유념할 점은 서독이 동독 외 사회주의국가들과 체육교류를 강화한 것이 동독의 대 서독 교류를 자극했다는 사실이다. 서독의 언론·방송이 동서독 체육교류에 큰 관심을 가졌고, 여기에 더해 동독 외 사회주의국가들 간 체육교류도 크게 보도한 것도 동독이 양 독 체육교류에 나서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소외되지 않으려는 동독이 체육교류를 체제 선전·선동의 통로로 봤기 때문이다.

북한 선수, 북한 당국이 우리 선수·당국에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행태를 보이건 간에 민족화해와 통일을 지향해야만 하는 우리는 원칙을 가지고 그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 언론·방송이 북한 선수들의 활약과 동정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 우리 응원단이 북한 선수에게도 격려의 함성을 보내는 것이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남북 당국 간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하더라도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를 이루려는 우리는 체육교류를 지속적으로 북한에 제안해야 한다. 내년 파리 하계올림픽에서는 스포츠정신에 입각한 남북만남을 성사시켜야 한다. 그 과정에서 중국·러시아를 포함한 북한 우방국과도 활발한 체육교류를 펼쳐 김정은의 태도 변화를 유인해야 할 것이다.

◇손기웅 원장 약력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

베를린장벽 붕괴를 현장에서 체험하고 통일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원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통일연구원에 봉직했으며 지금은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 한국DMZ학회장, 한·독통일포럼 공동대표, 중국 톈진외대 교수, DMZ유엔평화대학교 추진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저서로는 ‘독일통일: 쟁점과 과제 1·2’ ‘통일, 가지 않은 길로 가야만 하는 길’ ‘통일, 온 길 갈 길’ ‘통일, 헤어질 결심’ ‘30년 독일통일의 순례: 동서독 접경 1393㎞, 그뤼네스 반트를 종주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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