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비용에 대한 부담보다 통합사회의 강점 더 커
후회나 회의적 분위기는 안보여

3일(현지시간) 독일 함부르크 엘브필하모니에서 열린 독일 통일 33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5부 요인 등이 독일 국가를 부르고 있다.[사진=함부르크/연합뉴스] 
3일(현지시간) 독일 함부르크 엘브필하모니에서 열린 독일 통일 33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5부 요인 등이 독일 국가를 부르고 있다.[사진=함부르크/연합뉴스] 

【뉴스퀘스트=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 】 10월 3일 독일 통일 33주년이다. 분단 40년의 길이만큼 통일 연수가 많아지자 독일에서 통일은 이젠 일상사다. 베를린장벽 붕괴와 통일 환희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개선문에도 통일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 그것이 부럽다.

독일 통일이 바로 우리의 길이라 인식하고, 그 실현을 노력하는 사람이 국민 가운데 얼마나 될까? 수많은 사람, 전문가, 독일에서 공부했다는 학자조차 독일 통일은 우리의 모범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첫째, 독일 통일을 ‘흡수통일’이라 규정하고,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흡수통일이란 단언은 목숨 걸고 통일을 쟁취한 동독 주민의 눈물과 땀을 완전히 무시하는 어리석음의 반증이다.

40년 동안 인민이 주인이라는 동독 체제 아래 주권을 빼앗기고 굴종과 학대당했다는 체험과 반성에서 동독 주민은 1989년 여름부터 “Wir sind das Volk!”(우리가 바로 국민이다)를 외치며 체제 변화를 요구했다. 동독공산당이 11월 9일 베를린장벽을 열 수밖에 없게 만들었고, 직후 “Wir sind ein Volk!”(우리는 하나의 국민이다)로 바꾸며 서독을 통일의 길로 재촉했다.

통일문의 결정적 열쇠 역시 동독 주민이 만들었다. 1990년 3월 18일 전 세계가 동독의 향방을 주시하는 가운데, 동독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실시된 ‘자유’ 총선거에서 압도적 다수가 서독과의 조속한 통일을 원하는 ‘민족자결권’을 표출했다.

독일을 분단시킨 전승4국(미국·영국·프랑스·소련)을 하나 된 독일의 완전한 주권을 인정한 「2+4협정」에 서명하게 한 동력이 여기에서 비롯되었고, 이날 ‘독일민족통일’은 이루어졌다. 법적인 ‘독일통일’은 10월 3일 완결되었다.

서독의 「기본법」(우리의 헌법)에 명시된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freiheitliche demokratische Grundordnung) 체제로 동독 주민이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과 복지를 스스로 쟁취했던 독일 통일의 과정이 바로 우리 헌법 제4조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이다.

헌법에 따른 통일 실현에 북한 주민의 인식과 결단과 행동 외에 어떤 다른 길이 있는가? 그것이 흡수통일인가 아니면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과 합의통일인가?

서독이 동독을 의도적으로 흡수통일 하고자 했다면, 두 번이나 독일이 일으킨 세계대전으로 인류 최악의 비극을 겪어야만 했었던 어느 국가 어느 국민이 그것을 지지했을까? 과연 통일이 가능이나 했을까?

둘째, 독일이 급속히 통일했기 때문에 통일비용이 경제·사회·심리적으로 엄청나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서독에 통일의 기회가 찾아왔을 때 전승4국이 “그래 급히 통일하면 문제가 클 테니 천천히 해라. 통일을 너희들이 원할 때 언제든지 시켜줄 테니”라는 상황이었을까, 그들이 독일 통일을 정말로 원했을까?

만약 북한에서 변화가 일어나 북한 주민이 통일 의지를 표출하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가정할 때, 미·일·중·러가 “통일은 너희들의 일이니 시간을 가지며 해라, 우리가 지켜줄 테니”라는 상황이 과연 일어날까?

통일 이후 겪어야할 어떠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기회가 왔을 때 빨리 통일을 쟁취하는 것이 민족과 국가의 소망에 부응하는 길이라 판단했던 당시 서독 지도자의 결정이 독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셋째, 동서독 보다 남북 간 경제격차가 훨씬 커 우리의 통일비용이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북한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에 통일을 추진하는 것이 비용이 적고 통합도 원활히 진행될 것이라 주장한다.

김정은 독재체제가 존속하는 한 불가능할 것으로 여기지만, 만약 북한이 자체적으로, 중·러의 도움으로 혹은 남북협력으로 어쨌건 경제난을 극복하고 성장을 이룩한다면, 북한 주민이 과연 우리와 통일을 원할 이유가 있을까? 북한이 주체사상에 기초한 적색 통일을 꾀하지 않을까?

남북 간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과 복지적 격차가 크면 클수록 통일을 향한 북한 주민의 선택이 더 일찍 다가올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를 선진민주국가로 더욱 성숙시킬수록 우리의 통일 유인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넷째, 통일 과정에서 서독이 경제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은 정치적 결정으로 통일비용이 더욱 커졌다고 비판한다. 당시 4대1인 동서독 환율을 무시하고 1대1로 교환해주었고, 서독 대비 노동생산성이 30%에 불과한 동독 노동자에 60%까지 임금을 책정한 것이 잘못이었다는 주장이다.

통일이 된다고 해도 자신의 재산이 1/4이나 그 이상(필자는 장벽 붕괴 직후 동베를린 시장에서 훨씬 크게 교환할 수 있었다)으로 줄어든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자리를 얻기도 힘들 것인데 얻는다 해도 서독 노동자의 30%밖에 임금을 받지 못한다면, 동독 주민에게 통일을 할 이유가 과연 있었을까?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하나의 정부를 신속하게 만들기 위한 정치적 결단으로 주권국가를 이끌어낸 독일이 옳은 선택이 아니었든가?

통일 33년 현재, 여전히 통일 후유증이 남아 있고 구 동서독 지역과 주민 간에 소득, 실업률에 차이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통일된 독일은 분단 시기 꿈 꿀 수 없었던 정치 강국, 군사 주권국, 경제 강국, 통합된 사회를 이룩했다. 누구도 경험하지,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운 길을 걸어야만 했던 독일이다. 그럼에도 “통일을 괜히 했다, 통일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외침을 이제껏 듣지 못했다.

◇손기웅 원장 약력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

베를린장벽 붕괴를 현장에서 체험하고 통일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원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통일연구원에 봉직했으며 지금은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 한국DMZ학회장, 한·독통일포럼 공동대표, 중국 톈진외대 교수, DMZ유엔평화대학교 추진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저서로는 ‘독일통일: 쟁점과 과제 1·2’ ‘통일, 가지 않은 길로 가야만 하는 길’ ‘통일, 온 길 갈 길’ ‘통일, 헤어질 결심’ ‘30년 독일통일의 순례: 동서독 접경 1393㎞, 그뤼네스 반트를 종주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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