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국가 국민들은 ESG나 화석연료 완전퇴출이 당연한 ‘정의’
러시아나 중동국가들에게는 자식세대의 생존문제일 수도
서유럽 주요국 국민들 생활고로 인한 피로감 심각
투표 통한 정권교체 생각하기 시작할 것. 시간은 러시아의 편

연합뉴스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교전이 발발한 지 나흘째인 1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보복 공습으로 파괴된 가자지구 주택가에서 주민들이 구호 식품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가자지구AFP/연합뉴스]
연합뉴스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교전이 발발한 지 나흘째인 1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보복 공습으로 파괴된 가자지구 주택가에서 주민들이 구호 식품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가자지구AFP/연합뉴스]

【뉴스퀘스트=윤한홍 경제에디터 】러시아는 서유럽에게 “내 먹거리를 뺏지 말라” 경고했다. 그리고 정치, 경제적으로 승리하고 있다.

며칠 전부터 세계는 러-우전쟁에 이어 이스라엘-하마스간의 새로운 전쟁에 긴장하고 있다. 유가는 다시 치솟았고, 세계경제는 기존의 고금리와 인플레이션 문제 등에 더해서 높아진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되었다.

필자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두 개의 전쟁이 원인과 결과 양 측면에서 세계 에너지시장을 상식적 예상과는 다르게 전개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세계 각 지역의 갈등이 전쟁이라는 극단적 충돌로 나타나는 상황에서, 기후변화나 ESG 이슈는 대중들의 관심에서 당분간 멀어져 갈 것이고 실용적, 실존적, 생활경제적 이슈가 급부상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또한 서방의 정치지도자들과 집권정당들은 내년부터 대거 교체될 수도 있다.

러-우전쟁의 원인과 관련하여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킨 정치안보적 동기에 대해서는 충분히 보도되어 왔다. 그러나 경제적 동기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푸틴이라는 독재자를 80% 가깝게 지지, 동조하는 러시아 국민들의 마음에는 서유럽에 대한 경제적 열등감 내지는 피해의식, 미래에 대한 큰 불안감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또한 러시아 이외에도 여타 자원수출국들이나 개발도상국 국민들의 경제적, 심리적 동기가 세계 에너지시장에서 예상보다 큰 변수가 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픽=Statista]
[그래픽=Statista]

러시아는 전체수출액의 약 60%, 정부재정의 약 50% 가량을 화석연료 산업에 의존하고 있으며 기타 천연자원과 농업, 무기 등 구경제 산업들이 주류이고 반도체나 전기차, 인공지능 등 서방의 첨단산업과는 거리가 멀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2050년 전세계가 화석연료를 완전히 퇴출시키는 ‘온실가스 Net-Zero계획’에 성공한다면 러시아 정부와 국민들은 실질적으로 경제적 사망선고를 받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이 계획을 추진하는 선도국가들은 다름아닌 독일, 영국, 프랑스, 스위스 등 서유럽 선진국들이고 더욱더 많은 서방 OECD국가의 시민들이 이에 동조하는 추세였다. 이 상황을 과연 러시아 국민들이 서유럽의 일반적 국민들처럼 환영할 수 있을까?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역사적으로 항상 대립하여 왔고 수 많은 전쟁을 적으로서 치렀던 서유럽 제국들이 이제는 자신들의 먹거리마저 뺏으려고 한다고 인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ESG나 화석연료 폐기정책 등을 교조적 태도로 몰아 부치는 서유럽국가들이 정중하게 러시아나 중동제국 등 잠재적 희생국가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들 국가들을 은연중에 악마화하는 분위기마저 팽배했다. 서방국가 국민들은 ESG나 화석연료 완전퇴출이 너무나 당연한 ‘정의’라고 생각하지만, 러시아나 중동국가들에게는 자식세대의 생존문제일 수 있는 것이다.

전편 기사에서 프랑스 원전문제를 다룬 바 있다. 러시아는 소위 ‘가성비’ 기준으로 미국과 중국, 프랑스 모두를 앞서는 세계1위 원전기술 국가이다. 짐작컨대 러시아는 프랑스 원전의 결함에 대해 정확히 이해했었던 것이 분명하다. 프랑스가 기저전력을 공급하기 곤란해진 이 때, 독일이 자국의 저렴한 천연가스를 거부할 수 있을까?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러시아는 사우디와 함께 OPEC+를 이끌고 있다. 러시아에도 에너지산업 씽크탱크가 있을 것이고 이 문제가 독일을 포함한 서유럽경제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더 흘러서 서유럽 제국들이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출수록 자국의 영향력이 감소할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러시아 입장에서 과연 언제가 화석연료를 무기화하여 서유럽 제국을 효과적으로 굴복시킬 수 있는 적절한 시점이었을까? 바로 프랑스 원전이 와해되기 시작한 2022년이 적기였던 것이다.

아마도 푸틴은 자국 군대의 객관적 전투력보다도 서유럽의 에너지산업을 더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가 판단한 우크라이나 점령작전의 정치적, 전략적 개전시점은 매우 적절했다. 다만, 러시아군 역량에 대한 스스로의 객관적 판단이 오히려 부정확했기 때문에 의도대로 전황이 진행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며칠 전부터 팔레스타인 하마스마저도 자신을 돕는 작전을 시작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올해 유럽의 겨울이 작년과 다르게 더 추워지기라도 한다면 러시아의 승전 가능성은 더 커진다. 서유럽 기업들과 가정들이 현재 미국이나 아시아보다 3배 이상의 전력난방비를 부담하는 상황을 더 이상 참기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나은 미국마저도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국민지지도가 낮아진다고 하는 뉴스가 있는데, 서유럽 주요국 국민들의 생활고로 인한 피로감은 더욱 심해질 것이고 투표를 통한 정권교체를 생각하기 시작할 것이다. 시간은 러시아의 편이 된 것 같다.

이렇게 된다면, 교체된 서방의 새 정권들은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게 될까? 예를 들자면, ESG나 온실가스 Net-Zero같은 30년 후의 일보다는 당장 3년 내에 서유럽 주요산업 파산가능성과 중산층 빈곤화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상황전개가 단순히 서유럽과 러시아간의 갈등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라고 본다. 산유국이나 개발도상국 국민들마저도 한 때는 서유럽국가들의 ESG 시민운동, 기후변화 대처를 위한 화석연료 퇴출 등 대의에 묵시적으로 동조하는 듯했다.

윤한홍 경제에디터
윤한홍 경제에디터

그러나 이제 그들은 냉정한 계산을 시작한 것 같다. 경제적 고통은 전쟁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역사적 교훈은 너무나도 많다.

위험한 갈등의 수위가 계속 상승하여 파멸적으로 충돌할 수도 있고, 서로 양보하여 제3의 대안이 나타날 수도 있다. 독자들의 예상과 다를 수 있는 에너지 산업의 미래 시나리오에 대해서 이후 기사에서 계속 다루도록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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