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둘러싼 김정은의 등거리 외교?

(사진 왼쪽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시진핑 중국 국가수석,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TV 캡쳐]
(사진 왼쪽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시진핑 중국 국가수석,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TV 캡쳐]

【뉴스퀘스트=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 】북·중 관계가 이상하다. 9월 13일 김정은이 푸틴 면전에서, 전 세계가 주시하고 있음을 모르지 않을 그가, 오히려 전 세계 관중을 대상으로 자신의 의지를 확고히 보여준다는 태세로 “러시아가 대외정책 상 1순위고 제일 최중대 국가”라 선언했다.

10월 19일 평양을 5년 만에 찾은 러 외무장관을 맞은 자리에서는 푸틴과의 정상회담 합의사항을 충실히 실현하여 “새 시대 조로(북·러) 관계의 백년대계를 구축”하자며 한 술 더 떴다. 푸틴의 답방도 무르익고 있다.

북·중 균열을 반증하는 결정적 사건은 북한이 10월 17~18일 시진핑이 제창한 ‘일대일로(一帶一路)’ 10주년을 맞아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3회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 불참한 것이다. 푸틴을 포함한 다수의 정상들이 얼굴을 보였고, 100여국과 약 30개 국제기구가 대표단을 파견했다. 우리도 해수부장관을 보냈다.

북·중·러 세 ‘스트롱맨’이 함께할 자리가 마련되지 않아 – 시진핑과 푸틴이 거부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지만 - 김정은이 체면상 갈 수 없었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김여정 아니면 최선희를 단장으로 규모 있는 대표단을 파견하는 것이 통상의 북한이었다. 북한은 아예 모습조차 내밀지 않았다. 김정은이 틀어져도 단단히 틀어졌다.

2018년과 2019년, 베이징과 평양을 오가며 전 세계에 형제애를 과시했던 김정은과 시진핑이었다. 미국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머리 숙이고 자문을 구했던, 시진핑의 하명을 받았던 김정은이었다. 무슨 일이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났던 것일까?

김정은이 원했던 것을 시진핑이 들어주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식량이나 생필품, 에너지 등을 기대만큼 보내주지 않은 것도 원인일 수 있지만, 무엇보다 김정은이 요청했던 것은 군사기술 지원이었을 것이다.

김정은은 ‘핵무력의 외포화(外包化)’를 이미 달성했다. 우라늄과 플루토늄 원자탄은 물론이고 수소폭탄도 손에 넣었을 것이다. 대륙간탄도탄(ICBM)을 포함해 단·중거리 탄도탄, 여기에 더해 잠수함발사탄도탄(SLBM)도 대충 두드려 만들었다.

김정은의 현 과제는 ‘핵무력의 내포화(内包化)’다. 이를 위해 절실한 것이 고도의 군사기술이다. 무엇보다 ICBM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이, SLBM의 경우에는 여기에 깊은 수심에서 탄도탄을 쏘아 올리는 기술이 추가된다. 얕은 수심에서 발사하려다가는 쏘기도 전에 추적·격침의 먹이가 될 뿐이다. 그 기술을 김정은이 이미 장착했다면, 9월 6일 보여준 자칭 ‘전술핵공격잠수함’을 몰고나가 직접 쏘는 장면을 연출했을 것이다.

더욱 절실한 것은 군사정보위성이다. ICBM과 SLBM이 대기권을 뚫고 올라가고 다시 대기권에 진입한들 목표를 정확히 타격할 능력이 없다면, 그가 그토록 원하는 미국을 위협할 수 없다.

물론 어디에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볼 수는 있다. 그러나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나설 수밖에 없게 하고, 영국과 프랑스 나아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핵강국 위상을 보여주고 겁박하기 위해서는 탄도탄의 정밀성이 필수적이다.

그 기술을 김정은이 간절히 원했고, 시진핑은 이를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이 꿈꾸는 일대일로 구상에, 동북아 및 아시아 정세에, 약 1,500㎞의 국경을 맞대면서 핵 무력을 완성한 통제 불능의 김정은 왕국이 결코 부합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對) 미·일·한 전선에 활용하면서도 무너지지 않도록만 적당히 지원하면서, 김정은이 자신에 기댈 수밖에 없도록 길들여 가는 것이 시진핑이 그리는 그림일 것이다. 일대일로의 동쪽 끝이자 동북 네 번째 성이 되는 북한이 그의 희망일 것이다.

김정은은 눈을 푸틴에 돌릴 수밖에 없었다. ICBM·SLBM의 완성을 목표로 한 핵무기 고도화와 군사정보위성의 궤도 안착은 진작에 공언했다. 그것이 자신과 체제의 생존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김정은이 누구보다 잘 안다.

지금의 그에게는 주민을 먹여 살릴, 경제난을 극복할 방법이 없다. 대북 국제제재가 지속되는 한, 자신의 군림아래 주민들을 억압·통제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네 번째 권력세습이 순조로울 리 없음도 알고 있다.

핵무기 내포화만이 뻗대는 미국을 굴복시킬 수 있다. 서방진영 모두를 위압하여 두려워하게 만들고 대북제재를 푸는데 동조하도록 이끄는 길이다. 군축협상의 문을 열도록 하고, 제재를 풀도록 강압할 수 있는 길이다.

3대를 이어오며, 풍찬노숙의 온갖 어려움을 돌파하여 마침내 자신이 핵강국을 건설하면, 그것을 통해 경제난 극복의 길을 열어젖힐 수 있다. 자신의 권력유지, 4대째 권력세습은 순풍을 탄 배처럼 미끄러져 갈 것으로 꿈꾸고 있을 김정은이다.

푸틴이 정말로 김정은이 원하는 고도의 군사기술을 줄 것인지는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푸틴은 다급한 북한의 무기·탄약 지원을 즉시 받고 있지만, 군사기술 지원은 단기간에 끝날 성질이 아니다. 푸틴이 지원의 완급 조절, 시간 끌기로 김정은의 애간장을 태울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에서 푸틴에게 하지 못할 일이, 말이 과연 있을까? 우크라니아전쟁에서 밀린다면 그 자신이 당한다. 쿠데타로 축출될 수 있음은 물론이고, 생존 여부도 불투명할 수 있다.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

김정은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일단 들어준다고 말 할 수밖에 없는 푸틴, 그것을 믿을 수밖에 없음은 물론이고 결과가 어떻게 되던 간에 지금 자신의 구상이 실현되어가고 있음을 지켜보는 5천만 여개의 눈동자들에 보여줘야만 하는 김정은이다.

북·중, 북·러 장기판이 어떻게 전개될지, 말들이 어떻게 뛰어다닐지, 북·중·러 3형제가 될지 아니면 2개의 2인3각이 될지 자못 흥미진진하다. 중국 못지않게 머리 굴리는 러시아, 갈 길 바쁜 김정은이 잊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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