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채전에서'...명암과 콘트라스트 대비, 특유의 표현기법으로 반추상적 느낌 발산
최제남의 '대동문'...위에서 내려다보는 심원법 시점에서 대각선 구도로 독특하게 그려져
탁효연의 '대동문'...과감한 구도와 찬연하고 푸근한 색감, 반짝이는 별빛 같은 빛깔 돋보여

【뉴스퀘스트=정형렬 갤러리피코 대표 】

'비온 뒤 공원'(30호 2007년)
'비온 뒤 공원'(30호 2007년)

▲ 비온 뒤 공원(30호 2007년)

우리의 아날로그 청년 시절에는 위대한 세계적인 록밴드들이 우후죽순 백가쟁명, 백화제방의 시대를 들끓게 하였다. 또한 국보적인 토종적 자생 록밴드들도 고군분투하며 북두칠성처럼 광채를 발하여 나의 사춘기와 청년 시절 뿐만아니라 중년이 된 지금의 나에게도 듣고 있노라면 가슴 뭉클하고 설레이는 행복감을 안겨준다. 그룹 멤버들의 개성과 기량이 혼연일체가 되어 타오르는 정열과 젊음의 패기를 불어넣으면서도 예술적으로 승화된 정교함과 현란함이 참으로 감탄을 자아내고 감명 깊었던 추억의 잔상이 어른거린다.

세계적인 록밴드 중에서 딥퍼플(Deep purple)을 회고해본다. 그들의 3기 보컬리스트인 ‘데이비드 커버데일(David Coverdale)’은 옷가게 점원이었는데, 오디션에서 발탁되어 새로운 딥퍼플의 보컬 멤버로 참여하게 되면서 입지전적인 커리어를 구축한다. 그는 자신만의 개성인 소울풍의 록을 지향하여 웅장하면서도 흐느적거리는 독특한 저음의 창법을 구사한다. 그런데 맺고 끊는 하드록의 악센트와 포인트가 분명한 리더격인 기타리스트 ‘리치 블랙모어’(Ritchie Blackmore)와 그는 상호 혼합되면서도 화학적으로 용해되지 못하고 충돌을 겪기도 한다.

‘커버데일’은 대선배인 ‘리치 블랙모어’의 아성에 당차게 도전하며 자신의 노선을 분명히 견지한 것이 오히려 딥퍼플의 새로운 개성을 자극하고 융합하는 계기를 마련하면서 딥퍼플의 색다른 도약과 전성시대의 큰 대문을 활짝 열어놓는다. 나중에는 블랙모어가 그의 고집을 당하지 못하면서 도리어 딥퍼플을 탈퇴하는 아이러니를 겪는다. 참으로 저돌적인 신예의 기세였다.

그에 대비해 블랙모어의 탈퇴 후 영입한 천재적인 신예 기타리스트인 ‘타미 볼린’(Tommy Bolin)은 컨츄리록과 블루스록을 접목한 독창적인 록기타연주자였음에도 딥퍼플의 마지막 앨범을 제작한 끝으로 통탄스럽게도 나약한 자격지심을 극복하지 못하고 추후 자살에 이르고 만다. 슈퍼그룹 딥퍼플에 자신이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 것에 대한 심적 중압감이 크게 작용했으리라고 추정된다. 반면에 배짱 좋은 커버데일은 딥퍼플 해산 후 ‘화이트 스네이크’(White Snake) 라는 걸출한 슈퍼그룹을 이끌면서 상업적인 면에서도 대성공하는 화려한 족적을 남긴다.

한편 한국의 세계적인 토종 록밴드 ‘블랙홀’(Black Hole)은 그야말로 너무나도 국내외적으로 저평가와 사장된 측면이 있어 많은 세계의 음악인들과 우리 국민들의 또다른 한류 줄기로서의 재조명과 겸허한 자성과 애정이 뒤따라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비범한 실력을 갖춰 맨손으로 일어나서 혼을 불태우는 자생적인 창작 밴드는 기획사에서 조직한 그 어떤 저명한 그룹 보다 더한 존경과 예우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본다.

특히 블랙홀의 경우, 척박한 풍토에서 열악한 삶의 환경을 극복하고 혼신의 열정으로 시대를 감싸안고 당대의 사회적 부조리에 예리하게 저항하는 열창을 토해내며, 젊음의 혼을 일깨우는 에너지를 활화산처럼 분출해내었던 그들의 오랜 저력에 경의를 표한다. 그들의 음악성과 창의성 면에서도 당대의 세계 일류 그룹과 어깨를 견주는데 손색이 없다는 찬사를 보낸다.

‘탁효연’ 이라는 1969년생 북한작가도 만수대창작사 소속으로 중국에서 두터운 인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그의 연륜과 경력 및 위상에 비해 어쩐지 북한에서의 대접은 매우 야박한 느낌이다. 아직도 탁효현이 1급 화가 신분을 뛰어넘었다는 기록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가 젊은 시절부터 너무나도 담대하게 최제남류의 화풍을 훌쩍 능가하는 후기 인상파류의 화풍을 거침없이 구사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남긴다. 곰발바닥 같은 투박한 힘을 갖추고 몽상가와 같은 아련한 회화성의 바탕 위에서 캉캉춤을 자유자재로 추는 것 같은 붓놀림에 뭔가 마뜩찮은 내부 분위기가 은연중 깔려 있었던 것은 아닌가?

중국에서 국제적인 인기를 누리며 만수대창작사의 살림에 적잖은 보탬이 되고 있는 거물 화가가 명백한데, 그에 걸맞는 공훈화가 이상의 처우는 당연히 부합해야 한다. 그렇게 북한 화단에서 세계적인 스타들을 부단히 키워내 후일 북한 화단이 세계의 경매시장에 개방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오픈 마인드를 선제적으로 구비해야 한다. 국내용과 세계용이 따로 놀아서야 시너지 작용과 신진대사가 원활하게 작동되지 못한다.

한동안 어려운 시절을 겪은 우리식 유화의 효시 한상익과 인민화가의 반열에 들지 못하고 작고한 최제남에 이어서 탁효현의 사례에서도 북한의 고질적인 반감의 기류와 홀대의 타성이 이어지는 성향이 온존하고 있는 듯해서 씁쓸하다.

이 그림에서는 비온 뒤의 초가을 풍경이 매우 맑고 시원하게 묘사되어 있다. 햇살이 번쩍이면서도 아직 비가 온전히 걷히지 않고 있는 구름 섞인 청명한 하늘 아래 상쾌하고 신선한 대기의 기운이 뒤엉켜서 사람들의 공원 나들이를 재촉하며 덩달아 화가의 붓질도 숨가쁘게 활기차고 명랑하게 활보하고 있다.

고향의 채전에서(92.5-62.5 2007년)
고향의 채전에서(92.5-62.5 2007년)

▲고향의 채전에서(92.5-62.5 2007년)

탁효연의 작품들은 매우 독특하다. 그만의 고유하고도 탁월한 붓놀림이 있으며, 유독 물감의 질감을 중요시하며 투텁게 덧칠하면서 작품을 함축적이고 몰입도 있게 빠져들게 만드는 몽환적인 분위기들을 연출한다. 또한 엷은 여백층도 적절히 균형있게 배치하면서 마치 동일 작품에 여러가지 장르가 존재하듯 묘사하는 특징이 있다. 이 그림은 맑게 개인 날의 풍경이지만, 창 밖에 비오는 날의 수채화처럼 아련한 영상의 이미지를 뿌려주고 있다.

그의 작품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 이유가 대상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주제에 따라 약간의 기법 차이도 존재하며 사실주의에 입각하면서도 추상과 반추상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여러가지 느낌과 감정을 응축하게 만들어 표출하는 굉장히 특별한 화가임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특히 중국 평단에서 비교적 참신한 화가인 탁효연은 그만큼 원색 쓰임에 있어서 이질감이 거의 없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렇게 원색을 과감히 잘 쓰고 있으며, 덧칠에 강약 조절을 마치 장인처럼 잘 다룬다. 그 또한 그의 자신감의 표출이다. 북한에서도 그만큼 독특한 위치에 있는 서양화가로 평가받고 맹렬히 활동하고 있다.

본작 채전(채소밭)의 감상도 위에 나열한 탁효연만의 스킬(Skill) 표현 프로세스가 그대로 적용된 작품이다. 기와의 뭉갠 듯한 거친 덧칠에 채소밭의 각종 채소들의 명암과 콘트라스트 대비를 특유의 표현기법으로 하여 반추상적인 느낌을 발산하고 있다. 탁효연만의 독보적인 아이덴터티(Identity)를 마음껏 즐기면서 감상하는 것이 이 작품을 대하는 하나의 이권이 아닌가 싶다.

최제남의 '대동문'(50호 2005년)
최제남의 '대동문'(50호 2005년)
탁효연의 '대동문'(40호 2007년)
탁효연의 '대동문'(40호 2007년)

▲최제남의 '대동문'(50호 2005년)과 탁효연의 '대동문'(40호 2007년)

대동문은 북한의 국보 제1호로서 평양 6대문 중에 가장 중요하고 남한의 국보 1호 숭례문과 비견된다. 6세기 중엽에 세워진 고구려 평양성 내성의 동문이었으며, 조선시대 태종과 선조시대의 복원을 거쳐 인조 1635년 다시 화강석을 다듬어 세련미 있게 건축되었으며 6.25때 심하게 파손되었으나 1954년과 1959년에 보수 정비되었다.

기나긴 우리의 역사와 함께 동거동락과 영욕을 같이 누려온 유서 깊은 건축물이다. 고구려 건축 양식을 계승 발전시킨 건축물이면서 조선 전기 건축 형식과 구조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이다. 누구나 서울에서 평양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대동강을 건너 이 문을 통과하여야 했다고 한다.

많은 저명한 화가들이 이 소재를 즐겨 다루었는데, 최제남의 그림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심원법의 시점에서 대각선 구도로 그려진 독특한 그림이다. 더구나 묘사대상이 세밀한 기와 건축물인데다가 거친 붓질로 유명한 최제남 화가의 50호 대작이어서 다소 엇박자가 느껴지기도 한다. 자세한 부분은 세심한 대로 처리하고 주변의 배경 장면들은 빠른 붓질이 대조적으로 혼합되어 있어 더욱 인상적이다.

최제남의 인상파 화가로서의 다양한 솜씨와 속도감 있는 붓질의 자취, 그리고 힘찬 숨결이 유달리 크게 느껴진다. 시원한 대동강변이 아스라이 이어진 대교 풍경과 함께 배후에 멋지게 펼쳐져 있다. 역시 인상파 작품은 멀리서 볼수록 묘미가 느껴진다. 회색조의 기와와 성벽이 다리 교각 건축물과 함께 하늘과 강물, 수풀과 더불어 짝을 지어 병품처럼 휘감으면서 옛스러운 풍모와 현대적인 조형미가 조화를 이루면서 다채로운 파노라마로 채워지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탁효연은 북한의 3세대 인상파 후배 화가로서 좀더 과감해진 구도와 더욱 찬연하고 푸근한 색감과 감미롭게 반짝이는 별빛 같은 빛깔 등이 돋보인다. 아래의 작품은 거침없는 붓질, 화려하지만 두터운 깊이가 느껴지는 색감에서 당대 최고의 북한 인상파 화풍의 최제남과는 또다른 별미의 색감과 붓터치의 시각감을 즐기게 하는 청출어람의 인상파 작가, 탁효연의 면모를 여실히 맛볼 수 있는 노작(勞作)이다.

볼수록 끌리고 아련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의 화폭은 북한의 화풍이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하는데 당대의 선봉자로서 역할을 하는데 손색이 없어 보인다.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흰 꽃잎들이 생동감을 더해주고 대동문 앞에서 어린아이와 양산을 집어든 어머니의 다정한 정경이 동심 속 추억의 영상을 떠올리게 한다

탁효연 화가 
탁효연 화가 

◇탁효연(1969~ )은 누구인가?

탁효연의 화판에서는 한상익과 그의 직계 제자 최제남의 북한 인상주의 화풍의 물결이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발견한다. 북한에서는 인상주의 화법이라 부르지 않겠지만 인상주의적 표현 기법을 실제 그들의 그림에 적극 도입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한상익과 최제남이라는 대가들이 그 무대의 장을 열어 놓아서 오늘날에는 북한에서도 이런 화풍의 젊은 화가들이 다수 배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탁효연은 군계일학이자 선두주자 라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일 것이다.

탁효연은 거침없는 붓질, 화려하지만 두터운 깊이가 느껴지는 색감에서 당대 최고의 북한 인상파 화풍의 최제남을 능가할 수 있는 후생가외의 작가라는 후세의 평판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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