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달 밝은 밤 신나게 노는 아이들, 정겨운 한 폭의 동화
'결혼하는 날'... 곱고 부드러운 색감과 다채로운 색조로 전통 혼례 풍속화의 진수
'기방풍경'...옛 기방의 실내풍경 풍자적으로 묘사

【뉴스퀘스트=정형렬 갤러리피코 대표 】

어린 머슴의 쪽잠(100호 1976년)
어린 머슴의 쪽잠(100호 1976년)

▲어린 머슴의 쪽잠(100호 1976년)

이 그림은 2009년 북경의 미술품 경매회사 '제화춘추'가 주관한 경매에서 북한 그림의 중국 경매 역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그림이다. 그 당시 경매에 출품된 그림 크기는 120-90(약 50호) 정도로 605,000위안에 거래되었다. 우리나라 화폐 가치로 1억원을 훨씬 넘긴 금액이다.

원작은 조선미술박물관 소장 작품으로서 리상문과 김수남(북한 원로화가 김형철의 아들)의 합작품이다. 원작 출품 이후 유사한 그림이 몇점 더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 그림은 원작보다 2배 큰 그림으로서 리상문의 단독 작품이다.

이 그림과 원작은 아이의 옷차림새를 제외한 다른 측면의 형상은 거의 비슷하다. 다만 원작에서는 아이의 옷차림이 보다 더 남루해보이고 아이의 헐벗고 추워보이는 모습에서 사회주의적 묘사방식이 더욱 철저히 투영되고 있어 여물을 먹고 뜨거운 김을 품어내는 소와 대비를 이루면서 애처롭고 측은하게 부각되고 있다.

이 그림은 잠든 아이의 얼굴 표정과 안색, 옷차림에서 보다 밝게 처리한 명도를 보건대, 원작을 다소 순화한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위 그림을 비단 배접할 당시 표구사의 주인은 그림 속의 아이가 곤히 잠든 모습을 보며 아저씨의 어렸을 적 모습을 연상했다고 할 정도로 이념적 색채가 완화되었다.

표구사 사장님 왈 “우리도 어렸을 적 놀다 들어와 저렇게 헛간에 떨어져 잠들곤 했다.”라고 말할 정도로 북한그림이라는 것을 선뜻 의식하지 못했을 정도의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그림에 대해서 강한 주제화를 표징하는 제목을 몰랐다면, 여느 사람들도 표구사 사장님과 동일선상에서 선입견의 딱지를 떼고 어린이와 소의 친숙하고 정겨운 어울림의 동화같은 모습으로 느낄런지도 모를 일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60호 2002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60호 2002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60호 2002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변형된 숨바꼭질 놀이이다. 술래가 벽이나 나무에 두 손을 모아 붙이고 그 위에 두 눈을 포갠 상태로 감고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다가 이 구호가 끝나면 뒤를 돌아보고 움직이는 사람이 있으면 잡아낸다. 이때 주어를 천천히 읊다가 동사 부분을 재빠르게 외치는 등 변화를 주는 것이 보통이다.

술래가 눈을 감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말하는 동안 나머지 인물들은 술래에게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슬며시 재빠르게 접근한다. 술래가 뒤를 돌아 보았을 때 움직임을 멈추지 못하거나 소리를 내는 자는 술래에게 잡히게 되고 이 과정을 반복적으로 진행하면서 술래에게 접근하는 자의 손이 술래가 보지 못하는 사이 술래에게 닿으면 이 사람은 일단 이 게임의 승자가 되어 다음 번 술래에서 면제받는다.

술래와 눈이 마주치지 않은 사이에 건드리지 못하고 술래에게 잡힌 접근자들끼리는 가위바위보를 해서 다시 술래를 결정하게 되고 술래가 한 명도 잡지 못하면 그 술래가 다시 술래가 되는 것이 게임의 룰이다.

이때 너무 빨리 말하느라고 발음을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서 진행하면 분쟁이 생길 수도 있고 술래와 접근자 사이에 움직이는 상태인지 정지된 상태인지를 놓고 시비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 때 다른 목격자들이 자연스레 분쟁의 심판자가 되어 준다. 다른 접근자들끼리는 경쟁 관계에 있고 이미 술래에서 면제가 된 자의 경우에는 술래와 꼭 반대편만은 아니기도 해서 공정한 입장에 설 수 있다. 술래는 구호가 끝나기 전에 뒤를 돌아보게 되면 접근자들의 항의를 받게 되어 반드시 구호가 끝난 후에만 돌아보아야 한다.

발음을 빨리 하는 것은 술래의 자유지만 접근자가 들을 수 있게 또박또박 읊어야 하는 것도 불문율이다. 민첩한 접근자는 구호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접근자에게 재빨리 다가가기도 한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 재미있게 즐겼던 추억의 놀이다. 비교적 나이 차이에 관계 없이 동네 꼬마와 맏형들이 다칠 위험성도 없고 스스럼 없이 다함께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놀이다. 그림에서도 달 밝은 밤에 동네아이들이 집에 들어가지 않고 날이 저무는 줄 모른 채 신나게 놀이에 빠져 있다.

노란 호박 꽃잎 속에 숨어서 회초리를 들고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궁금한 듯 쳐다보고 있는 강아지에게 저리 가라고 혼내는 아이, 남의 집 담장에 숨어서 빼꼼히 고개를 내밀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아이, 과감하게도 나무를 사이로 술래 바로 뒤에 숨어서 살며시 급습을 노리는 아이, 아예 저멀리 숨기 위헤 아직도 장소를 찾아 헤메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정겨운 한 폭의 동화 속 장면이다.

결혼하는 날(60호 2002년)
결혼하는 날(60호 2002년)

▲결혼하는 날(60호 2002년)

마을주민들과 가족친지들이 한데 어울려 이웃의 결혼을 마음으로부터 축하해주며, 자신들의 축제인 양 신명나는 기쁨의 시간을 함께 즐기고 있다. 이 그림은 촌락공동체인 옛 마을에서 더불어 살고 있는 선조들의 밝고 건강한 표정의 역동적인 모습들과 각양각색 옷차림의 색상과 전통 혼례 복장을 곱고 부드러운 색감과 다채로운 색조로 표현하며 우리나라 전통 혼례 풍속화의 진수를 풍성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 중앙의 돗자리 위를 행진하는 신랑과 신부를 중심으로 나팔을 불고 있는 풍악대, 잔치상을 준비하다 말고 뛰쳐나와 신랑 신부의 얼굴을 호기심어린 얼굴로 바라보는 아낙네들, 저절로 흥에 겨워 뛰어놀며 덩달아 신이 나서 어쩔줄 모르고 부산한 아이들, 밖에서 담장 위를 넘어오는 동네 아이들과 담장 너머로 결혼식 풍경에 시선을 고정시킨 사람들, 그리고 할아버지는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고 담배대를 흔들며 행사를 지휘하고 있는 모습들이 보인다.

좌우측 양단과 담장 밖에서 기와(집)와 초가(집)를 대비시키며 빈부귀천의 조화와 융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초가집 위에서는 호박이 지붕 아래로 쏟아질 듯 주렁주렁 메달리도록 묘사하면서 이웃간의 넘치는 정과 풍요로운 인심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담배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유래는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 부하들이 갖고 들어와서 퍼뜨렸다고 전한다. 당시 근심이 그치지 않던 선조 임금은 담배를 피우고 근심이 가라앉는 효과를 직접 느끼며 나라 방방곡곡에 방을 붙여 가며 담배를 피우면 좋은 효과가 있다고 하여 국가 차원에서 전국민이 담배를 피우도록 홍보하는 또 하나의 과오를 범하였다고 한다.

최근 북한에서도 금연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있다고 언론매체는 전한다. 아시아에서 상위 두 번째인 북한 남성 인구의 흡연율에 대한 경각심을 최근에서야 심각하게 인식하고 공중파 방송을 비롯하여 다방면으로 금연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은 북한 주민들을 위해 아주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기방풍경(60호 2002년)
기방풍경(60호 2002년)

▲기방풍경(60호 2002년)

리상문의 기방풍경을 보면 아래의 춘향전의 이몽룡이 읊은 탐관오리를 질책하는 시와 조선후기 화가 신윤복의 청금상련(廳琴賞蓮) 그림이 동시에 연상된다. 리상문은 과거 봉건시대 양반들에 대한 사회현실과의 부조리적 관점과 양반들의 풍류 생활의 모티브를 주안점으로 옛기방의 실내풍경을 풍자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예술적인 격조를 잃지 않고 옛날 양반들의 풍류가무 생활상이 생생하게 느껴지도록 풍속도를 창의적으로 형상해 내었다.

이도령이 읊은 시는 무릇 공직자 혹은 집단 조직에 몸담은 구성원이 항시 마음에 두고두고 새기며 경계로 삼아야 할 금과옥조의 경구(警句) 같은 명시라 아니할 수 없다. 인간들이 세속에서 쾌락 속에 빠져들 수 있는 환경은 예나 지금이나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가 보다.

여흥으로 이러한 순간을 즐기는 것이 사교계의 풍토에서는 일상적이었겠지만, 잠시잠깐 동안이 아니고 주색잡기의 탐욕적인 삶의 늪에 지속적으로 빠져들면 재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곧 한계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어지간한 내공을 갖춘 풍류객들은 이러한 쾌락을 벗들과의 사교적인 만남 차원에서 가볍게 절제하여 즐겼으리라. 그렇지만 화류계에 발길을 끊는 편이 휠씬 더 쉽고 유익한 길이다.

『금준미주 천인혈 (金樽美酒 千人血)- 금 항아리의 귀한 술은 천사람의 피요

옥반가효 만성고 (玉盤佳肴 萬姓膏)- 옥쟁반의 맛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촉루락시 민루락 (燭淚落時 民淚落)- 촛불의 눈물이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이 떨어지고

가성고처 원성고 (歌聲高處 怨聲高)- 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높도다.』

신윤복의 '청금상련(廳琴賞蓮)'
신윤복의 '청금상련(廳琴賞蓮)'

인민화가 리상문은 신윤복 그림에서의 상징적인 장면을 차용해 옮겨다 놓으면서도, 배경과 주변 환경에서 나름의 신선미를 풍기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연히 살려내고 있다. 기생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한손으로 감는 장면과 이를 부러운 듯 쳐다보는 짝 없는 동료, 그리고 가야금을 타며 주위의 시선을 모으는 기녀의 모습은 유사하지만, 실내의 시원스럽고 운치 있는 정경

과 화려한 옷차림의 양반과 기녀 군상들에 대한 실감나는 묘사에서는 화가의 자존심과 개성미가 여실히 느껴진다.

후면에 수 놓은 십장생도 속의 복숭아꽃들은 요염한 기방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그 옆의 달밤의 노안도(갈대노(蘆)와 기러기 안(雁)을 화제로 삼았지만, 이것은 늙을 노(老)와 편안할 안(安)자와 발음이 같아서 늙어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만발한 홍매화의 배치 구도 등은 풍류객의 품위와 운치를 보여주는 배려(?)라고 보여진다.

◇리상문(1942-?)은 누구인가?

그는 1942년 강원도 원산시 충정동에서 출생하여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를 졸업하였다. 오랜 기간 전문미술창작기관에서 적극적인 창작활동을 벌려 왔고, 국보적인 우수한 조선화들을 성과작으로 창작 발표하였다. 그는 백호창작사에서 창작 활동하였고, 1994년에 인민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았다.

≪천리마동상의 아침≫, ≪어린 머슴의 쪽잠≫ 등 대표적 명작들은 비상한 사상주제와 높은 직관적 표현력, 풍부한 예술적 형상을 예리하게 그려낸 형상성 높은 작품으로 국가미술전람회들에서 1등으로 높이 평가되였으며 수많은 국보적인 작품들을 창작 완성하였다.

특히 "룡" 그림을 많이 창작하여 룡 그림 대가로 알려져 있다. 또한 신윤복의 기방풍경이라든지 동화와 같은 재미난 풍속화에도 일가를 이루어 찬탄할만한 풍속 명화들을 다수 남겼다.

조선역대미술가편람에서는 1976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1등상을 차지한 원작과 작가에 대해 이렇게 평하고 있다. “조선화 <어린 머슴의 쪽잠>(84*123)은 지난날 헐벗고 굶주리며 살아온 우리 인민의 비참한 생활처지를 전형적인 환경과 세부, 심리적인 성격표현으로 매우 예리하게 그려낸 형상성 높은 작품이다. 힘겨운 머슴살이에 지쳐 북데기우에 쓰러져 잠든 소년의 피기없는 얼굴에는 외로움과 서글픔이 나타나 있다. (중략)

리상문은 대단한 노력가이다. 그가 창작에서 성공할 수 있은 것은 다른 미술가들 보다 2~3배의 노력을 더 한데 있다. 본작단계에서 형상적 의도가 관철될 때까지 그리고 지우고 찢고 다시 그리는 노력과정에 우연성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성공의 열쇠를 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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