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장수창바위'...가파른 산세와 푸른 빛은 을씨년스럽고 한없이 고독해 보이기까지
'묘향산 서리꽃'...겨울의 청아하고 신선한 미감을 가장 잘 표현
'모란봉의 겨울'...북한 조선화 설경 그림 중 가장 황홀하고 감미로운 정서 지녀

【뉴스퀘스트=정형렬 갤러리피코 대표 】

금강산 칼바위(30호 2003년)
금강산 칼바위(30호 2003년)

▲금강산 칼바위(30호 2003년)

우선 북한 그림에서 비록 정통 묵화는 아니지만, 온통 암흑천지 같은 묵화를 보게 된 것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이는 추상화의 영역에 가까우면서도 옛스런 멋을 지닌 회화의 세계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북한 화가들은 이런 화풍에 친숙하지도 않고 쉽게 그려내거나 어설프게 용인되기도 어렵다.

그런데 오늘날 역설적이게도 추상화에 근접한 이와 같은 거친 풍의 그림들을 즐겨 그리는 화가들이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물론 북한에서도 실력을 널리 인정받은 화가들만이 이런 최고 수준의 응용력을 발휘한다.

북한에서는 이런 험준한 산세가 화가 자신의 내적 기상과 맞부딪히면서 소용돌이 같은 힘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북쪽 사람들의 강건하고 호방한 기질적 특징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북한에서는 묵화가 봉건적 사대부의 잔재라고 하여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나, 리석호를 필두로 정영만에 이르러 아예 정통파적 입장에서 묵화를 즐겨 그리면서 묵화의 위상을 화려하게 복권시켰다.

묵화 자체가 고유의 필력의 힘과 단순함에 대한 간결성의 매력, 그리고 집약과 생략의 추상성의 정신을 고취시키기 때문에 북한 화가로서는 개성과 독창성이라는 특수도 누릴 수 있는 이점이 있는 영역이다. 요즈음은 최창호라는 정영만의 제자가 그 방면의 회화의 세계를 넘나들며 전성기를 꽃피우고 있다.

그런데 박제일이라는 독특한 동서양의 화풍을 접목한 원로 대가에게서도 이런 영역의 묵화 화풍의 그림을 본다는 것은 대단히 신선한 감흥이 아닐 수 없다. 마치 오랜 관록을 자랑하는 대가 사진가의 고풍스런 흑백사진을 뜻하지 않게 전시회장에서 마주치는 것처럼 말이다.

그의 붓질이 화선지를 지나가자 칼바위의 깍아지른 산세를 드러내는 조형성과 푸른빛이 어렴풋이 감도는 먹색의 신비로운 색채감이 펼쳐지는 파노라마가 이 방면의 대가인 정영만에 결코 손색이 없다.

박제일은 그보다 10년 선배인데 경력으로 따지면 이미 1970년대부터 국제적인 화가로 위상을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칼바위 다음가는 감상 포인트는 거친 산세의 옆구리를 들이받는 듯한 검푸른 빛의 구름 덩어리들이다.

이 뭉치들은 웅장한 기상과 태고적 역동성을 형용하고 있으면서 기암절경의 주변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생선가시 같이 우뚝 서서 벼랑 곳곳에 꽃혀 있는 나무들은 산세의 황량함을 조화롭게 보완하고 있다.

금강산 장수창바위(89.5-48.5 2003년 5월)
금강산 장수창바위(89.5-48.5 2003년 5월)

▲ 금강산 장수창바위(89.5-48.5 2003년 5월)

이제까지 본 금강산의 형세치고는 가장 날카롭다. 안팍이 온통 베이고 찔릴 듯한 바위산이다. 금강산의 장수창 바위를 검색했건만 불행히도 이 그림뿐이 안 보인다. 실물과 비교해보고 싶었는데, 실물 보다 과장해서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북한에서 회화성을 가장 강조하는 화가이기 때문이다.

피사체의 사실적 측면 묘사 보다 그 특징을 추출해 내어 강조하는 데서 회화성 높은 화가는 희열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러하다. 그것도 색감으로써가 아닌 묵화의 형상적 측면 속에서만 진검 승부를 내는 것으로 봐서 더욱 더 부각되는 그의 기질적 개성미가 물씬 풍겨온다. 금강산 칼바위만 볼 때는 이 노화가가 어쩌다 이런 그림도 그리네 하고 생각했는데, 창바위를 보면서 이 방면으로도 충분히 일가를 이룰 만한 화가로 평가받을 만하다.

이외에도 예시된 그의 그림들 속에서는 시커먼 암흑산들이 그 위용을 드러 내고 있기 때문이다. 창 중에서도 ‘장수창’이라는 명칭은 평범한 창이 아니라 빼어난 장수의 창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과연 창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면서 마치 하나의 산이 쪼개지듯 험악하게 갈라져 있다. 제우스의 번개라도 내리꽂힌 후유증을 보이듯이 구름 먼지가 풀풀 날리고 있다. 정영만 화가가 이런 대선배의 내공이 끓어 넘치는 실력을 보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과연 보았다면 박제일에게 경의를 표했으리라. 정영만 본인만의 특화된 형태의 그림 스타일인 줄 알았건만, 실은 그에 못지않게 채색이 약간 가미된 묵화 형식의 날카로운 웅장한 산세를 대선배가 이렇게 옹골지게 표현하고 있었을 줄이야 하고 놀랐을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리고 박제일 화가의 묵화 바위산은 산세의 가파름이 더욱 심하고 푸른 빛이 감돌고 있어 을씨년스럽고 한없이 고독해 보이기까지 한다.

마치 화가 자신의 입장을 은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미친다. 오로지 명암 표현에만 의지한 명암 표현주의 기법은 참으로 독특한 매력과 심산유곡 만큼이나 심오한 인상을 안겨준다. 요즘 남한에서는 모노톤 회화가 선풍적으로 유행하고 있지만, 우리 선조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모노톤의 수묵화 그림을 자기 수양 삼아 즐겨 그리고 있었다.

북한에서도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 류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최고의 국내외적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정영만과 박제일 모두 국보급 화가의 대접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묘향산 서리꽃(60호 1996년 11월)
묘향산 서리꽃(60호 1996년 11월)

▲ 묘향산 서리꽃(60호 1996년 11월)

겨울에는 모든 꽃이 지고마는 시절의 아쉬움에 대한 신의 선물일까? 계절적 삭막함에 대한 신이 내린 시각적 보상으로 겨울에만 피는 눈꽃과 서리꽃이 있다. 함박눈에 열광하는 동심의 사람들과 예술적 심미안을 가진 이들은 이 두가지 꽃들을 환호하며 예찬한다. 그 중 눈꽃은 그 형체가 잠시 잠깐 머무르다 이내 반짝하는 햇살에 소멸해 버리고 마는데 비해, 서리꽃은 나뭇가지를 감싼 얇은 수정과 같은 박빙의 얼음 알갱이들로 비교적 지속적으로 그 자태가 남아 있다.

중경의 산색은 짙푸른 하늘색이 파도 물결을 이루고 있다. 그 색묘법적인 동조화로 근경의 침엽수가 진한 청보랏색의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있고 저멀리 원경의 첩첩산중은 연한 청보랏빛의 파동으로 점철되어 있다. 조선화에 있어서 색묘법은 동질적인 색상과 색감의 하모니 및 마치 구름다리로 연결된 듯한 점차적이고 운율적인 색조의 파노라마가 궁합을 이루어 한 구도 속에 있는 모든 개체들이 마치 한가족처럼 끈끈한 유대감을 보이게 하는 기법이다. 이 그림은 색묘법의 진수이자 거울 같은 그림이다.

겨울의 청아하고 신선한 미감을 가장 잘 표현한 북한 화가를 꼽으라고 한다면 박제일을 제일로 꼽는다. 박제일은 그 중에서도 서리꽃의 아름다움을 특화한 화가로 평판을 얻는다. 그의 서리꽃에서는 조선화의 특징이자 장점인 고상하고 청아한 색감, 간결하고 함축적인 구도와 선명한 색상과 정갈한 분위기에 더불어 서양화와 동양화의 융합을 선도한 붓질로 깔끔한 마무리 처리가 돋보이는 박제일의 개성이 상징적으로 압축되어 있다.

모란봉의 겨울(140-45, 1995년)
모란봉의 겨울(140-45, 1995년)

▲ 모란봉의 겨울(140-45, 1995년)

형상의 선명성, 선묘의 간결성, 색채의 고상함, 이 세가지가 북한의 조선화가 특히 자랑하는 특성이다. 그 이외에도 세부적으로 다른 많은 우수한 장점을 과시하기도 하였으나, 대체로 이 세 측면이 북한의 지도자들이나 조선화의 대가들이 힘주어 강조했던 특징이다.

이러한 특장점에 대한 공명의 메아리는 해외 전시에서 외국인 감상객들이 주로 표명했던 사례가 많다. 한편 동양화의 종주국임을 내세우는 중국에서도 북한의 조선화가 자신들의 본류 그림의 아류이지만, 나름의 고유성과 개성을 인정하여 날이 갈수록 북한 조선화의 인기가 상종가를 치고 있는 중이다.

조선화로 표현된 형상은 듬성듬성 성긴 붓질을 가했을 때나 세밀하게 정성들여 묘사했을 때나, 가까이서 보았을 때나 멀리서 감상했을 때에도 그 형상성은 분명하고 확연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선으로 처리된 부분이 탄복을 자아낼 정도로 깔끔하고 간결하다. 조선화가의 실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바로 선으로 묘사된 부분에서 군더더기 없이 얼마나 힘있게 단숨에 선처리를 하였느냐로 판별할 수 있다.

또한 색채의 고상미에 대해 말하자면 그림에 채색된 색감은 아무리 봐도 물리지 않을 정도로 은은하고 고아한 빛깔을 지닌다. 대가들의 색채미에서는 보고 또 볼수록 마치 이전에 보았던 그 색과 다른 색을 사용한 것처럼 오묘한 느낌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몽환지경에 잠기곤 한다.

이 그림은 북한 조선화의 설경 그림 중에서 가장 황홀하고 감미로운 정서를 지닌 그림이라고 단연코 추천한다. 근경의 경치에서는 붓질에서 그다지 세밀하게 공을 들이지 않았건만, 조금만 떨어져서 감상하면 극사실화 보다 더 스틸 사진같은 사실적인 효과와 인상을 풍긴다. 원경의 은근한 초록 숲들은 저마다 고상하고 우아한 초록색 계열의 빛깔들이 뒤섞이며, 동일색 계통의 배열로 전체적인 미감의 하모니를 꾀하는 색묘법의 파라다이스를 선보이고 있다.

모란봉 꼭대기의 정자가 보이지 않았더라면 백두산 밀림 속 풍경화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설경 산수화로 보였을 것이다. 눈꽃 솜털들로 뒤덮인 설경은 햇빛에 반사되어 마냥 따뜻하고 푹신한 감촉을 지닌 푸근한 이불처럼 느껴진다.

박제일 화가
박제일 화가

◇ 박제일(1928-작고?)은 누구인가?

박제일 화백은 서울에서 미술 수업을 받았고, 60년 이후에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10년간 미술 공부와 연구를 하고, 70년 이후에는 십여년을 유럽에서 창작활동을 하였으며, 이응노 화백의 처남으로서 그와 함께 동양미술학교를 프랑스 파리에 설립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송화미술원의 원로 화가로 창작활동을 활발히 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고인이 되었다. 그에 대한 어떤 이의 작품평을 전한다. “박제일 화백 작품은 서양화를 동양화에 완벽하게 접목시켜 구현한 작품들을 창작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한지에 그려내는 동양화임에도 서양화의 느낌을 준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북에서 보다 해외에서 더 높은 인정을 받고 있다. 만약 이분이 북에 계시지 않고 남에 계셨다면 더욱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박제일(고암 이응로의 부인 박인경의 남동생임)의 그림은 조선화의 세가지 강점(형상의 선명성, 선묘의 간결성, 색채의 고상함) 중에서 특히 형상의 선명성과 색채의 고상함 측면에서 가히 최고의 품격을 자랑할만한 명화의 요건들을 구비하고 있다. 북한의 조선화가 1.5 세대의 선두주자인 박제일의 그림은 특히 그 색감과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한눈에 그의 그림을 식별할 수 있을 만큼 개성 만점의 화가라서 북한과 세계인들의 그에 대한 칭송은 결코 과찬이 아니다.

또한 박제일은 북한 조선화의 국제화를 이끈 1.5세대 조선화가의 맏형격이다. 그는 남한에서 1945년 이후 도상봉과 이응로에게 그림 수업을 받았고, 월북 이후 기라성같은 북한 1세대 화가들의 업적 위에서 말을 타다가 그의 매형인 남한 한국화의 거성 이응로와 함께 서구 유럽국가들의 한복판에서 거침없는 예술 비행을 즐겼던 독특한 이력의 미술가이다.

서슬퍼런 1970년대 전후 남북한 예술가들의 협업 활동은 지금으로서도 꿈같은 일이고 간첩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위험한 곡예 행위였다. 그의 이러한 분단 이후의 독보적 이력은 남북한 예술가를 통틀어 지금까지 유일무이하고 향후에도 전무후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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