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래골의 잔치날'...고난도의 위험성 동반한 극세필 선묘 조선화
'민속명절 한가위 전경'...섬세한 인물 표정과 동작 하나하나에 갖은 정성과 재주가 녹아
'금강산 상팔담'...운해의 출렁임과 상팔담의 옥빛깔 물결은 조선화적 미감 상징의 백미

【뉴스퀘스트=정형렬 갤러리피코 대표 】

첫나들이 (60호 연대미상)
첫나들이 (60호 연대미상)

▲ 첫 나들이 (60호 연대미상)

곱고 다채로우면서 맑고 담백한 색조의 색채 미학과 고전풍을 재현하여 옛멋을 물씬 살린 기품과 향기가 흘러 넘치는 작품이다. 부부간의 화목스러움과 설레이는 첫여행을 나서는 감흥을 풍속화의 표현 방식을 차용하여 꿈결 속으로 이끌려 들어가듯 낭만적으로 묘사하였다.

인물들의 감각적이고 돌출적인 화려미의 나들이 옷차림과 동행한 나귀들의 꽃단장한 차림새도 그에 못지않게 인상적이다. 하얀색 바탕에 분홍색 그림자 빛깔을 사뿐히 찍어 바른 색채 표현은 대담하면서도 세련된 조선화 단붓질의 독특한 그림자 색채 표현력이다.

마치 인상주의 회화에서 다양한 그림자의 색채 구성이 연상된다. 전체적으로 인물과 동물, 그리고 나무의 조화가 돋보이며 가벼운 역동미가 그림의 생기를 돋우고 있다. 진중하면서 기쁜 표정인 남편의 수려한 초록빛 비단옷은 초록색 나뭇잎 배경과 색상 궁합이 잘 맞아 보인다.

부인에게 편안한 지를 묻고 있는 다감한 남편은 나귀를 타고 가면서 부인의 손을 꼭 잡으며 나들이의 들뜬 분위기를 은근히 드러내며 신혼의 행복감을 만끽하고 있어 보인다. 머리를 매만지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부인은 햇볕을 가리기 위해 큰 양산(옛명칭 -일산)을 쓴 것으로 보아 양반댁 귀부인의 신분임을 알 수 있다.

나귀들 몸에 걸친 줄의 장신구 색깔들도 눈에 띄게 화려하여 의례를 갖춘 나들이 행차 분위기를 한껏 띄우고 있다. 사람의 눈과 평가는 대개 비슷해서 묘사 대상이 되는 피사체가 다양하게 등장하는 그림이 시각적 재미를 안겨주고 그림의 가치도 더 높게 부여된다.

구도의 중심에 등장하는 남녀의 다채로운 복식과 풍부한 표정을 표현하는 데는 섬세한 선묘를 바탕으로 그 안에 맑은 채색(담채)을 입힌 구륵법을 구사하고 나귀들과 강아지와 까치, 그리고 상단 배경의 나무는 검정톤의 동일 색 계열의 단붓질(몰골) 기법을 적용하여 다양한 표현 방식을 활용한 점도 이 그림이 가진 매력이다.

혀를 내밀고 분주히 선도 역할을 하는 강아지와 맨 뒤에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눈을 감다시피 묵묵히 따라오는 나귀 앞에 거뜬히 사람을 태우고 가뿐한 걸음을 옮기는 나귀들의 활기롭고 경쾌한 표정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달래골의 잔치날(80호 2004년)
달래골의 잔치날(80호 2004년)

▲ 달래골의 잔치날(80호 2004년)

사실주의 회화에 대한 섬세한 밀도를 놓고 우열을 가려보자면 유화의 극사실화와 조선화의 극세필 선묘 회화 중 어떤 것이 더 정교하고 어려운 작업인가에 대한 견해가 다를 수 있다. 양자가 가지는 장단점과 특징에 다른 선호도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덧칠이 가능한 유화와는 달리 조선화의 극세필 선묘 회화는 상당히 고난도의 위험성을 동반하고 있다.

조선화의 선묘 회화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구도하에 전개되는 미세한 인물화가 주된 화면일 경우에는 더더구나 그렇다. 유화와는 달리 어떠한 인물과 사물에 대한 단 한차례의 묘사의 실수가 발생해도 전체 작업의 실패를 인정하고 그 전까지 진행되던 작업량과는 관계없이 폐기해야 하는 수순을 밟아야 하는 처지가 되기 때문이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장사진처럼 이어지는 마을 사람들의 기나긴 축하 행렬이 온동네의 잔치 분위기를 돋구어준다.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랑은 나귀를 타고 금의환향하는 듯이 들뜨고 행복한 표정이 역력하다.

신부는 가마에 태워져서 그 뒤를 따른다. 우물가에서는 동네 아낙들의 부러운 듯한 수다가 함박꽃처럼 피어난다. 결혼식장에는 품앗이로 잔치상을 준비중인 동네사람들이 화기애애하게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민속명절 한가위 전경(280-75 2004년)
민속명절 한가위 전경(280-75 2004년)

▲ 민속명절 한가위 전경(280-75 2004년)

강신범은 펜화같은 붓질 솜씨로 깨알같은 세부에서도 인물 묘사가 능수능란하다. 그 작은 공간 면에서 어떻게 그렇게 섬세한 인물 표정과 하나하나의 동작에 갖은 정성과 신출귀몰한 재주가 용해되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자연에 대한 표현력도 예외가 아니어서 나뭇잎과 가지 하나하나를 비롯한 모든 풍경에서도 색상과 완성도가 놀라울 따름이다. 이 그림에서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 한가위 풍속이 실로 정겹고 흥겹게 펼쳐져 있다. 우리 조상들의 공동체적 유대 속에 온정이 무르녹아 있고, 신명나게 즐기는 민속놀이 문화 속에 축제감과 활기가 넘쳐난다.

북한과는 이렇게 같은 언어와 문화, 동일 핏줄과 역사, 그리고 생이별하고 살아가는 통한의 이산가족과 동일한 지명인 강원도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점 등에서 유럽연합에 속한 나라들이 더불어 사는 생태 보다는 훨씬 더 친밀해질 수밖에 없고 문화적 동질성을 공유해가며 경제적 공동체를 이루어가기에는 한결 수월하다.

비록 정치적 통일은 먼 미래의 요원한 과제로 남겨두고 서두르지 말아야겠지만 말이다. 효(孝)가 백행의 근본이듯이 형제간의 우애는 버금간다. 자기 동족에게 베풀고 나서면 세계의 이웃에게도 더욱 따뜻해지고 호의적이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금강산 상팔담(80호 98년)
금강산 상팔담(80호 98년)

▲ 금강산 상팔담(80호 98년)

금강산 상팔담은 구룡폭포 위에 있다고 하여 상(上)이요, 여덟 개의 연못이 있다 하여 팔담이다. 금강산 상팔담은 아마도 조물주가 인간 세상에 만들어놓은 가장 완전하면서도 신비스럽고 우아한 비경(祕境)의 조형물이라 평가받을 만하다. 사람이 아담한 인공 정원을 만든다해도 이처럼 산허리를 휘감는 듯한 계단식 뿔소라 모양의 절묘하고도 환상적인 8개 인공 연못을 꾸미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이러한 절세의 빼어난 경치에 그에 걸맞은 흥미진진한 전설이 빠질 리 없다. 비취빛 옥구슬같은 팔담에는 팔선녀의 전설이 흐르고 나뭇꾼과 선녀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인간미(?) 어린 동화적 신화(神話)로서 그들의 숨결이 느껴질 듯 깃들어 있다.

강신범의 금강산 팔담은 동양적 몰골기법과 여백미가 효과적으로 구현되면서도 서구적 사실주의 화법과 색채미가 가장 이상적으로 융합된 걸작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그에게서는 민속화가로서 주특기가 특출나지만 풍경화에서도 자신만의 개성과 색깔이 두드러진다. 선녀의 옷자락과 움직임처럼 사뿐히 나풀거리듯 붓을 휘놀리면서도 나무꾼의 정성과 살뜰함이 녹아 있는 절묘한 채색과 충실한 형상성도 돋보인다.

봄기운이 물씬한 살구빛 빛보라가 전면에 걸쳐 찬연한 가운데 조물주의 신령스러운 도도한 기운이 감도는 운해의 출렁임과 상팔담의 시원스런 옥빛깔 물결의 일렁임은 조선화적인 미감을 상징하는 백미이다.

중앙 산의 돌출적인 입체감과 웅장한 기상, 전후좌우의 직선과 곡선이 균형있게 배합을 이루는 조화와 운율을 타는 듯한 굴곡적인 맵시, 시원스럽게 내달리는 단붓질의 간결함과 함께 예의 그 섬세하게 점철된 표현력은 몸에 배인 천성같다. 그의 작품에서는 불멸의 명작을 향해 기울이는 조각가의 구슬땀이 적셔 있고 집념어린 영혼이 어리어 있는 듯하다.

강신범 화가
강신범 화가

◇ 강신범(1944~ 작고)은 누구인가?

강신범은 1세대 걸출한 화가 강호의 장남으로 서울 돈암동에서 1944년 출생하여 월북작가로 분류된다. 강신범은 북한에서 풍속화를 매우 잘 그리는 손꼽히는 화가이다. 지금은 모두 작고했지만, 백학훈과 강신범은 전통 복장 차림의 과거 인물들의 풍속화를 옛 멋과 해학미를 한껏 되살려 재현해냄으로써 이들의 재주와 과거 복식과 풍속역사 연구에 대한 깊이 있는 공력을 가히 가늠해 볼 수 있다.

그에 대한 조선역대미술가편람의 평가를 전한다. “천성이 고지식하여 창작에서 기교적인 측면을 내세우려 하지 않으며 우연한 성과를 기대하지 않는다. 미술 작품 앞에 허심하고 일단 창작에 달라붙으면 끝장을 볼 때까지 진지하게 그림을 그린다. 그는 높은 사상예술성을 가진 우수한 작품들을 많이 창작해 내었다.”

2000년대 중후반 강신범은 주로 추석날과 결혼 풍속에 관한 전통적인 풍속도 대작을 작심하고 그려냈다. 이 그림들에 등장하는 수백명의 인물들마다 제각기 다양한 표정과 동작을 보면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정교하고 자연스러움에 놀라움과 감탄을 금치 못한다. 위에서 소개된 그림 속 작은 인물들의 묘사는 선묘의 털끝에서 단 한건의 어설픔과 대충주의도 용납지 않는다. 참으로 자유자재하고 정밀한 형상 하나하나의 정성에 경탄이 절로 나온다.

강신범의 전통 풍속화는 방학주의 무수한 대나무 이파리들의 묘사 보다 훨씬 더 난산의 수고로움이 따를 법하다. 왜냐하면 대나무 잎새의 묘사 패턴은 거의 유사하게 이어지지만, 각각의 인물들은 창의력과 구성력의 토대 하에서 전통 풍습에 대한 재현력과 완벽한 묘사력이 안받침 되어주어야만 그림이 조잡스럽지 않고 명작이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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