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금강 금강문'...아침해와 금빛 바다노을이 해금강 금강문과 균형 이루며 절경 묘사
'파도'...북 영빈관 백화원의 '파도'그림 축소판, 힘차고 강렬한 파도의 역동성 분출
'울림폭포'...폭포의 장쾌한 모습과 기묘한 칼 벼랑들, 천혜의 자연수림이 한데 어울려 조화
'금강산 만물상'...초겨울과 늦가을 교차 시기, 상록수와 낙엽수가 조화 이루며 포근함과 아늑한 안식처 제공

【뉴스퀘스트=정형렬 갤러리피코 대표 】

금강산의 봄(300호 2005년)
금강산의 봄(300호 2005년)

▲금강산의 봄(300호 2005년)

한태순에게 있어 보랏빛은 마음 속에 상시 내재해 있고 주변 도처에 늘상 산재해 어른거리는 색깔의 광선이다. 그에게 있어 저녁 노을과 그 노을빛을 머금고 요동치는 파도는 물론 물안개 속에 피어오르는 봄꽃들과 나른한 봄볕을 쏘이는 산발들 마저도 보랏빛 대기 속에 잠겨서 호흡하는 경관을 선보인다. 보랏빛 물결과 파장, 그리고 보라색 아우라와 향취들은 작가의 작품을 한결 고상하게 하고 운치와 격조를 높이는데 기여한다.

이 그림에서는 금강산을 몽환속의 신령스러운 산, 동화속 상상의 세계처럼 묘사해 펼쳐 놓았다. 보라색과 연두색의 과감한 보색 대비로 환영과 현상을 교차시켜 놓으면서도 꿈과 현실의 감각을 혼성시킴으로써 예술적 판타지의 색채 궁전으로 감상자를 인도하고 있다. 서구의 인상주의 화가들에게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산중 풍경화의 보랏빛 일색 모드는 보랏빛 파동의 급류에 몸을 맡기면서도 자유자재로 만끽하며 제어할 줄 아는 색채 마술사들만이 펼칠 수 있는 진풍경이다.

화면 중앙에서 번쩍거리며 등장하는 새벽의 햇살은 봄날의 약동하는 기운을 북돋아 깨우는 큐피드의 화살이다. 그 반사광을 받은 모든 분홍색 꽃나무들은 보랏빛으로 염색되어 더욱 절묘한 보랏빛 색채 형상을 자아낸다. 하얀 바위와 초록의 계곡물, 푸릇푸릇한 새순과 잎새들은 지상에 머물며 관광하는 요정과 신선들이 사는 낙원 진입로의 디딤돌과 계단, 연못과 정원처럼 느껴진다.

해금강 금강문(80호 2010년)
해금강 금강문(80호 2010년)

▲해금강 금강문(80호 2010년)

금강산 해금강은 우리측 강원도 고성에서도 볼 수 있지만, 이렇게 해돋이와 해금강 세트 장면이 아니라 각각 옆 모습으로 분리하여 볼 수 있을 뿐이다. 해금강 금강문은 절벽으로 된 바닷가에 두 바위가 나란히 선 모습이 문이 열린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그림은 찻잔에 뜬 계란 노른자 같은 아침해와 은총을 내리듯 그에 투영된 금빛 바다노을이 해금강 금강문과 양대 축으로 균형을 이루는 절경을 묘사하였다.

작은거인 한태순은 풍경화에 관한한 동양의 르누와르라 불릴 만하다. 그의 거침없는 나이프의 질주는 작은 수정체와 굵은 소금 같은 점들을 단숨에 조합하여 어느 틈엔가 고전주의와 후기인상파가 절묘하게 결합된 아련한 추억 속의 화면을 창출해낸다.

황홀하고도 몽환적인 보라색의 아침 빛보라가 사근사근 너울너울 점층적으로 스며들어 온누리의 대기와 바다물결을 꿈결로 촉촉이 적시고 있다.

파도(80호 2010년)
파도(80호 2010년)

▲파도(80호 2010년)

여기자 석방 건으로 북한을 방문한 클린턴 전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과 저녁식사를 한 곳이 백화원 영빈관이다. 이 곳은 박근혜 대통령이 의원 시절 김정일 위원장과 만났던 장소이기도 하다. 위의 두 만남 건 모두 기념촬영하면서 배경으로 등장한 그림이 다름 아닌 김성근의 대형 파도이다. 그런데 이 파도그림은 조선화 파도가 아닌 맑고 투명한 색채의 유화그림이다.

김성근의 조선화 파도는 그 고유한 화법 때문에 다른 화가와 이질적인 요소가 많아 공동 집체 창작을 하기는 어렵지만, 대형 유화 파도 그림은 다른 작가들과 집체 작업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많은 시간과 공력이 투여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기념촬영의 배경이 되기 때문에 유리 액자를 한 조선화는 빛이 반사되어 사진 촬영시 선명한 파도 형상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할 때가 많게 됨을 고려했을 것이다.

한태순의 이 파도그림은 그 백화원 파도그림의 축소판이라고 보면 된다. 파도의 거친 형상과 기상 그리고 색상과 색감 모든 면에서 백화원 파도 그림의 진면목을 고스란히 되살려주고 있다. 이 그림으로 백화원 파도 감상의 대리 만족을 해도 다소 부족한대로 충족감을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점에서 되짚어 보면 유화가가 조선화가에 비해 전반적으로 유니크한 특성이 약하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지금은 작고한 한태순이라는 10여년전 당시의 가냘프고 왜소한 체격의 노화가에게서 이런 힘차고 강렬한 파도의 역동성이 분출한다는 점도 회화가 표현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이고 장점이라 하겠다. 한편 백화원의 파도 그림은 바다 한복판의 거대한 해일 같은 파도의 기세를 주로 묘사했기에 바위들을 볼 수 없지만, 이 그림에서는 바위들과 격렬한 포옹을 나누고 있는 환희에 찬 파도의 격정을 더불어 만끽할 수 있는 점도 보너스라고 할 수 있다.

울림폭포(182-93 2006년)
울림폭포(182-93 2006년)

▲울림폭포(182-93 2006년)

“울림폭포의 높이는 75미터로서 1초에 약 20입방미터의 물이 일년 내내 쏟아져 내린다. 폭포 아래에 깊이가 1.5m, 반경이 30m 정도 되는 소가 있다. 여기에는 버들치, 칠색송어를 비롯한 물고기들이 서식하고 있다. 울림폭포의 장쾌한 모습과 볼수록 유정한 주변 경치는 그야말로 아름답다. 울림폭포 지구에는 찻집, 전망대, 정각들이 조화롭게 배치돼 있다. 이곳은 오늘날 주민들이 즐겨 찾는 문화휴식처로 되어 있다.

억만 구슬을 날리며 흘러내리는 폭포의 장쾌한 모습과 병풍처럼 둘러싼 기묘한 칼 벼랑들, 천혜의 자연수림이 한데 어울려 조화를 이룬 이 일대의 풍광은 참으로 장대하고 아름답다. 어느 누구든 귀중한 시간을 내 이곳에 와보면 일생 잊지 못할 기억을 담고 갈 것이다.” 이상은 조선향토대백과와 한국농정신문에서 울림폭포에 관한 자료들을 편집 인용하였다.

이 울림폭포와 인접한 부분만을 떼어 형상한 이 그림은 실제 경관 보다 더욱 웅대하고 신비로워 보인다. 폭포 좌측은 실경의 모습을 재현하여 현장성을 제고했지만, 오른쪽의 폭포 날개는 운무와 바람에 흩날리는 물보라에 뒤엉켜 가려져 있어 환상의 세계처럼 대비되어 꾸며져 있다.

물론 폭포 주변까지를 전체적으로 망라하여 조망한다면 그림 보다 실제 폭포의 위용이 훨씬 더 장엄하고 경이로워 보인다. 주변의 바위 절벽들은 무대세트 같은 배경 조각작품처럼 신이 깍아놓은 절묘한 조형물인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같은 강원도 땅에 위치한 울림폭포를 관광할 수 있는 날이 앞당겨지길 소망한다.

울림폭포(182-93 2006년)
울림폭포(182-93 2006년)

▲금강산 만물상(140-102 2008년)

이 그림 속 금강산 만물상은 초겨울과 늦가을이 교차하는 시기에 상록수와 낙엽수가 화미한 조화를 이루며 포근함과 아늑한 안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보랏빛 꿈결 같은 첫눈의 설레임과 시원한 초록빛의 계곡물이 공존하는 금강산의 수려한 치마폭과 같은 광경이다. 지금 남북간의 상황 악화로 이곳의 주변에 북한의 군대가 진주할 것이라고 한다. 외교와 국제 정세는 시시각각 전변하고 급격한 반전이 예상외로 찾아올 수 있다.

일시적인 격동적 감정에 사로잡혀 이 아름다운 경관을 무장 군인들로 훼손하는 우를 범하지 말기를 바란다. 바이든 대통령도 재선 대통령선거 경쟁에서 열세에 몰려 있고 중국과의 분쟁 및 국내외의 정치적 곤경으로 내우외환에 직면하여 뭔가 획기적 돌파구가 간절한 상황이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전쟁 종결에 이어 북한과의 교류가 시작되면 세계적인 평화무드가 우후죽순 조성될 것이다.

북한은 유교사상이 사회주의에 접목해서 안착한 국가이다. 그 때문에 가부장제 사회라는 비판적 시각이 있지만, 북한의 선대 지도자들을 참배하는 국가적 대규모 행사가 매년 기일에 맞추어 시행되는 것도 이런 사회문화적 기저가 작용한 배경에 기인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특별히 어른에 대한 존중의식과 예우심도 고취되어 왔다.

또한 예전의 북한의 논평은 신랄한 비판을 하더라도 예의와 격조를 갖추어서 하는 중후한 무게를 지니었다. 그런데 요사이에는 남북한의 대결적인 긴장감의 격화 일로 속에서 그런 여과장치가 사라진 느낌이다. 남한 대통령과 당국자들에게 뿐만아니라 대외적 언사는 두루 언어적 향기와 인격적 품위를 지녀야 후에 상황이 호전되는 국면을 맞아 외교적인 출렁다리라도 돌아갈 수 있는 비상 사다리를 확보할 수 있는 법이다.

​ 외교 무대는 개인 사감을 무분별하게 토로할 만큼 한가하고 가벼운 공간이 아니다. 설령 상대가 아무리 과거에 철천지 원수였을지라도 현재를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처지가 비일비재하다는 점을 냉철히 짚어보기 바란다.

비근한 예로 6.25전쟁에서 수많은 동족상잔이 있었고, 일제의 36년 식민지 치하에서 치욕적이고 한스러운 노예적 핍박을 받았어도 과거의 역사가 오늘날 살아있는 자들의 현재와 앞으로의 삶보다 중요할 수 없다. 그렇기에 서로가 불행한 과거의 언급을 삼가고 가급적 좋은 기억을 환기하면서 악몽을 지워버리고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 현명한 모든 사람들의 한결같은 바람인 것이다.

한태순 화가(1937년 ~ 작고?)
한태순 화가(1937년 ~ 작고?)

◇한태순(1937년 ~ 작고?)은 누구인가?

한태순은 장재식과 더불어 북한에서 나이프 화가의 대명사로 통한다. 거의 자신의 모든 유화 그림을 나이프로 속도감 있게 그린다. 그런데 그의 그림에서는 속도감 보다는 장중한 기상과 차분한 기운이 늘 지배적 분위기로 감싸고 있다.

1937년생인 한태순은 현재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깡마르고 왜소한 체격에 현재 나이 84세인 그가 생존해 계시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근자에도 왕성히 활동하였던 1939년생인 여성화가 김승희도 최근 부고소식이 들려옴으로써 북한의 1930년대생 2세대 화가들은 대부분 작고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의 고결한 숨결과 척박한 환경에서 피땀으로 피어난 서정성이 흘러넘치는 작품들이 세상에서 더욱 진가를 평가받고 추앙받는 날이 앞당겨지길 바란다.

한태순은 유화적 특성을 잘 살려 대상의 형상미를 조형예술적으로 정갈하고 원숙하게 완성함으로써 유화적으로 감칠맛 나게 소화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한태순 주요약력>

1937년 7월 2일 평양시 중구역 교구동에서 출생.

1965년 평양미술대학 출판화과 졸업.

1965년 9월 조선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

1974년 이후 평양미술대학 회화학부 교수로 활동.

1987년 공훈예술가 칭호 수여받음.

대표작: 유화 《청봉밀영》(1968년), 《백두산이 보이는 곳에서》(1971년), 《삼지연에서 본 백두산》(1975년), 《녀성보잡이군》(1977년), 《금강산상팔담》(1981년), 《금강산 수정봉》(1985년) 등.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