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정신으로 가는 길

【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

『백암 전재규 박사의 생애와 사상』, 황봉한, 박창식, 김병희 공저
『백암 전재규 박사의 생애와 사상』, 황봉한, 박창식, 김병희 공저

『백암 전재규 박사의 생애와 사상』이 발간되었다. 이 책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청라정신으로 가는 길’이라는 부제목이다.

가곡 <동무생각>의 발상지는 청라언덕 

 ‘청라정신’이란 무엇인가? 

 이 책 소개에 앞서 먼저 흔히 대중들에게 널이 알려져 있는 우리 가곡 <동무생각>부터 이야기를 전개하여야겠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는 중고등학교 시절 음악 시간에 배운 노래이기도 하다.

 이 노래는 대구 출신 음악가인 박태준(朴泰俊:1900-1980) 작곡, 경남 마산 출생 시인인 이은상(李殷相:1903-1982)작사로, 1922년 발표된 우리나라 대표적인 서양식 가곡이다. 이 노래는 박태준이 대구 계성학교와 평양 숭실학교를 졸업한 후 마산 창신학교에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작곡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마산 창신학교는 이은상의 부친이 설립한 학교로 이은상과 박태준은 젊은 교사로 같이 근무하다가, 박태준이 청라언덕 아래 신명학교 다니던 여학생을 짝사랑 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은상이 가사를 짓고 그 가사에 박태준이 곡을 붙이도록 권유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하여 탄생한 노래가 바로 국민 가곡처럼 부르는 가곡 <동무생각>이다.

 

청라언덕의 의미-여호와 이레의 동산

 바로 그 청라언덕에 2012년 10월 지계석(地界石) 하나가 세워졌다. ‘여호와 이레의 동산’이란 기념비이다.

(여호아 이레의 동산 비석과 함께 한 백암 전재규 박사)
(여호아 이레의 동산 비석과 함께 한 백암 전재규 박사)

“이곳은 대구 기독교(protestant)의 발상지로 여호와 이레의 동산 이곳은 대구 기독교(protestant)의 발상지로서 19세기 말,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들이 대구를 선교지로 선택하여 선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아담스, 존슨, 브루언 세 분의 선교사가 남문 안에 있던 선교본부를 이곳으로 옮기며, ‘우리가 선 땅은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 이레의 땅’이라고 외치셨다. 브루언은 당시 대구의 읍성을 바라보며 ‘다윗의 망대가 서 있는 예루살렘’같다고 하였다. 그들의 말처럼 이곳을 중심으로 하여 교회, 학교, 병원이 설립되었고, 대구가 제 2의 예루살렘이라고, 일컫는 부흥의 역사를 이루게 되었다.”(<여호아 이레의 동산 기념비 전문>)

 2012년 당시 이 비석 건립추진위원회 대표회장이었던 전재규 박사가 직접 지은 글이다. 전재규 박사 역시 박태준과 마찬가지로 이 언덕 바로 건너 편에 위치한 계성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또한 전재규 박사는 청라언덕 아래에 있는 신명여학교를 졸업한 강일혜 여사와 결혼하였고, 역시 청라언덕 아래에 있는 대구동산병원에서 의사로 31년을 복무하였다. 

 이 청라언덕을 대구 매일신문은 “1893년 미국 베어드 목사가 대구지역에 뿌린 복음의 씨앗은 동산병원 언덕 위에서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미국 약방’이란 이름으로 진료소를 내고 의료선교를 펼치던 존슨 선교사(의사)는 1899년 제일교회 구내에 ‘제중원(濟衆院)’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본격적인 진료활동을 시작했다. 이 약방과 제중원이 동산병원의 전신이다. 이 당시 선교사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아름답게 드러내 보이기 위해 병원이나 학교와 교회를 세웠고, 그를 통해 지역사회의 발전에도 큰 역할을 했다. 동산언덕에는 동산의료원과 선교사 사택, 신명학교, 제일교회 등이 건립되었다. ‘은혜정원’이 자리한 이 언덕은 대구의 기독교가 지역사회에 뿌리내려 정착하고, 계명대 동산의료원이 사회에 봉사하면서 성장한 중심지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청라정신으로 가는 길-백암 전재규 박사 필생의 정신 

 이제 이 책의 부제목 ’청라정신으로 가는 길‘이라는 의미가 거의 설명되었다. 대구에서 청라언덕은 교회와 학교와 병원의 중심지이고 발상지이다. 청라언덕은 기념비가 말해주듯이 대구 지역에 근대의학과 근대교육을 도입하면서 기독교를 전파한 중심지였다. 그런데 백암 전재규 박사의 삶이 청라언덕의 역사적, 종교적 의미와 과 꼭 닮았다.

 그는 독실한 신앙자로, 계성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유학하여 의학박사가 된 후 귀국하여 계명대 동산의료원에서 의술을 베풀었다. 의사 정년 이후에는 선교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면서 대신대학교 총장으로 일했다. 또한 대신대학교에 사재 60억을 희사하여 대신대학교가 대구, 경북 지역 기독교 교육의 요람으로 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밖에도 호스피스 전인치유센터를 건립하는 등 한국호스피스협회 초대 이사장으로 여러 봉사를 했다.  또한 그는 대구 기독교 역사 바로알기 운동의 주역이기도 하다. 즉 청라언덕이 하나의 동심원이 되어 그를 신앙, 의료, 봉사의 삼위일체의 삶으로 이끈 것이다.

 이는 물론 “모태신앙으로 성장하여 오늘날까지 잠시도 교회를 떠나본 적이 없는 ’예수의 사람‘, ’경건한 그리스도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은 그의 삶은 세속적으로 보나 신앙적으로 보나 다 같이 ’청라정신으로 가는 길‘이었던 것이다.

 세 기독교 학자의 전재규 박사에 대한 탁월한 해석

  이 책은 또한 대신대학교에서 인연을 맺은 세 분의 집필자(황봉한, 방창식, 김병희)의 쓴 전재규 박사에 대한 깊은 신앙적 해석이 있다. 전재규박사는 중고등학교 이후부터 군복무시절, 미국유학시절, 의사생활, 그리고 대신대학교 총장직을 수행한 이후에도 여러 설교를 해왔으며, 그 기저에는 성경의 이해와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다고 설파한다. 전인치유란 개념을 신약에서 도입하여 의학과 신학의 접목을 시도한 것이라든가 하는 보다 신앙적이고 전문적인 백암 사상의 근본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는 많은 설교자가 참조하고 연구해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전재규 박사는 이 책의 서문격인 <감사의 말>에서 ”예수님의 치유 사역과 성경적 치유를 근대의학과 비교하며 몇 권의 교제를 출간했으며, 한국호스피스 사역에도 깊이 관여하면서 그 이론적 기초를 세웠고 호스피스적 돌봄과 노인 목회에 대하여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성경적 전인치유 사역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깨닫고 의료윤리와 존엄사에 관한 업적도 쌓았으며, 계명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의료윤리학을 10여 년 동안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2003년에 학교에서 은퇴하여 새로운 후반기 인생을 개척하기 위하여 메시아닉 유대인 신학을 수료하고 성막과 성전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면서 성지를 여러 차례 탐방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대구는 ‘한국의 제2 예루살렘’이라는 영적 정신을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고증하기도 했으며, 기독교의 3대 사역인 복음 선교, 기독교 교육, 치유 사역의 터전이 된 청라언덕의 역사적 유래와 그 정신 위에 세워진 자유대한민국의 건국 정신을 조명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난 2009년부터 4년간 대신대학교 총장에 선임되어 선지학교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도약적인 발전을 위해 활발하게 봉사하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남아있는 과제가 만만치 않음을 알고 있지만, 관계자 여러분의 많은 협력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수년 내에 다 이루어질 줄 믿고 전진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저의 생애에 담겨있는 면면을 세 분의 교수님이 신학적인 안목과 접근으로 ‘생애와 사상’이라는 한 권의 단행본으로 출간하게 되어 무어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생의 끝자락을 향해 달려나가는 중이지만 삶의 여정 속에서 매 순간 성삼위 하나님께서 간섭하시고, 지도하시고, 인도하셨음을 강하게 느끼면서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주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올려드립니다.“라고 했다.

백암 전재규 박사(1938-      )
백암 전재규 박사(1938-      )

 집필자 황봉환 목사는 대신대 부총장, 울산대암교회 협동목사 등, 박창식 목사는 대구달서교회 담임목사, 총회역사위원회 위원장 등, 김병희 목사는 서변제일교회 담임목사, 대구경북기독교역사연구회 회장 등의 이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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