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주체이자 상징이자 행복으로의 신호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1월 26일 룡성기계연합기업소에 마련된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장에서 투표하고 있다.[사진=1조선중앙TV 화면/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1월 26일 룡성기계연합기업소에 마련된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장에서 투표하고 있다.[사진=1조선중앙TV 화면/연합뉴스]

【뉴스퀘스트=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 】 북한 주민 0.13%가 지방선거에서 반대표를 던졌다고 한다. 북한이 선거결과를 마지막으로 발표한 1959년(보궐선거 참가율 99.99%, 찬성률 99.99%) 이후 64년 만에 나타난 ‘쾌거(?)’다. 김정은과 북한 주민이 ‘합세한 변화’이고, 여기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노동신문(11월 28일)은 11월 26일 실시된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도인민회의 후보자의 경우 찬성 99.91%와 반대 0.09%, 시·군인민회의 후보자에는 찬성 99.87%와 반대 0.13%란 결과를 보도했다. 그것도 1면 기사로 호들갑스럽게. 0.000078%의 기권표도 존재함을 전했다.

100% 선거 참여에 100% 찬성을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체제 정통성의 상징으로 선전했던 북한에서 일어난 변화다. 선거 때만 되면 누구도 아프지도 죽지도 않아 100%를 달성하는, 위대한 수령의 영도 아래 64년 간 지속된 신비의 나라에서 보인 이상(異常)이었다.

북한에서 선거는 당이 정한 후보자에 찬·반을 표시하는 절차이다. 정권 수립 후 초기에는 후보자 찬·반 여부를 찬성 투표함이나 반대 투표함에 넣는 것이었다. 1959년부터는 관리원의 삼엄한 눈초리 아래 교부받은 선거표를 찬성하면 그냥 투표함에 넣고, 반대하려면 후보자 이름에 볼펜으로 선을 그은 뒤 투표함에 넣어야 했다. 100% 찬성일 수밖에 없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에 규정된 일반적, 평등적, 직접적 원칙에 의한 비밀투표의 실상이었다.

변화가 왔다. 8월 북한은 선거법을 개정해 투표실 내에 찬성 투표함과 반대 투표함을 두고, 원하는 곳에 투표하도록 했다. 투표실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반대표 행사가 용이해진 것이다.

우리와 달리 단일 후보자를 대상으로 사실상 공개적으로 찬·반 여부를 물었던 북한이, 체제 특수성을 내세워 운영해온 선거양태가 옳고 자신이 있었다면 선거법을 바꿀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선거양식을 바꾼 것은 이제까지 선거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김정은과 당이 인식했다는 반증이다. 김정은 체제를 선전하고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바꿀 수밖에 없는 사정이었다. 더 이상 북한 특수성 고집이 아니라 민주주의 일반성을 가미(加味)라도 해야 한다고 판단한 김정은의 자백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반대표가 정말로 0.13%에 불과했는지, 아니면 더 많은 반대표가 있었음에도 김정은 체제가 감내할 수준이 이 정도여서 그렇게 발표했는지, 아니면 이번에도 100%가 찬성했지만 비밀·자유선거로 바뀌었다고 민주화를 선전하기 위해 조작한 수치였는지, 진실 여부는 알 수 없다. 김정은·노동당의 정치공학과 입 밖으로 뱉지 않은 북한 주민의 요구 간 복합 작용의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헌법에 따라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를 요구하고 실천하는 우리는 북한 선거양식을 여기에 근거해 기정사실화·발전시켜야 한다. 100%에서 99.87%로 바뀐 불과 0.13%란 말도 안 되는, 비밀·자유선거나 민주화로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북한의 놀음이지만 전략적으로 이를 포용해야 한다.

김정은 정권의 선거법 개정을 민주주의로의 일보 전진으로 간주한다, 지역구당 1인 후보자에 찬·반을 묻는 북한식 선거방식을 존중한다하더라도 투표실 내에서 선거권자가 아무런 구속 없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비밀선거가 보장되어야 한다, 특히 투표실 내에 비치된 찬성의 ‘녹색’ 투표함과 반대의 ‘빨간색’ 투표함이 반드시 하나로 바뀌는 선거양식의 발전을 국제사회와 함께 요구해야 한다.

동시에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0.13% 북한 주민 반대표에 존경의 마음을 표해야 한다. 반대표 행사가 참으로 부담스럽고, 생명의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한 주권적 행위에 동포이자 같은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감사해야 한다.

0.13%, 이제 시작이다. 이 수준으로 북한 변화가 언제 올까, 올 수 있을까 비관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유선거’를 주장하며 부정선거 규탄 시위를 벌이는 동독 주민들 [사진=jugendopposition.de]
‘자유선거’를 주장하며 부정선거 규탄 시위를 벌이는 동독 주민들 [사진=jugendopposition.de]

1989년 동독, 체제 개혁·개방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커지는 상황에서 5월 7일 지방선거가 실시되었다. 선거결과 왜곡을 익히 체험했던 주민들의 요구에 의해 참관이 처음으로 허용된 개표, 명백한 득표조작이 또 자행되었다.

동독 당국은 친여세력인 ‘민족전선(Nationale Front)’에 찬성 98.85%를 발표했다. 이전 1986년까지 선거에서 항상 찬성 99% 이상이었던데 비해 그나마 ‘그들이 생각한 민심’을 고려한 조치였다.

그게 기폭제였다. 실제 체감하는 민심과 전혀 동떨어진 선거결과에 동독 주민들은 들고 일어났다. 부정선거 반대와 자유선거 외침이 “우리가 바로 국민이다”, “우리는 하나의 국민이다”로 이어지는 동독 변화, 동독 멸망에로의 진군이 시작되었다. 불과 1년여 만에 동독은 역사 속에 사라졌다.

0.13% 북한 주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당신이 변화의 주체이자 상징이자 행복으로의 신호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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