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날, 왜 팥죽을 끓여 먹을까

동지 팥죽
동지 팥죽

【뉴스퀘스트=김승국 전통문화칼럼니스트 】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물가는 턱없이 오르고 있고, 민생을 챙겨야 할 정치판은 민생 챙기기는 안중에 없고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전투구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 우리네 시름은 더욱더 깊어만 간다.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는 나라가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곧 끝날 것이라던 ‘우크라이나 전쟁’은 2년이 다 되도록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간 ‘가자 지구 전투’도 끝낼 해법을 찾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어, 내년 세계 경제도 그저 불안하기만 하다. 사람이란 희망을 먹고 사는 존재인데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 것일까? 

  지난주 금요일(22일)은 24 절후의 스물두 번째 절기이자 일 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다는 동지(冬至)였다. 동지를 기점으로 점차 낮의 길이가 길어져 옛날에는 1년의 시작일로 삼기도 했다. 동지는 또한 반드시 음력 11월에 들어서 음력 11월을 ‘동짓달’이라 불렀으며, 동짓날에는 달력을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살기 힘들다 보니 아마 지난주 금요일이 동짓날인 줄도 모르고 지낸 분들도 많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동짓날 날씨가 온화하면 이듬해에 질병이 많아 사람이 많이 죽는다고 하였고,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믿었다. 지난주 동짓날 눈은 오지 않았으나 날씨가 추웠으니 내년에는 풍년이 드리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팥의 붉은 색이 모든 액(厄)을 물리친다고 믿어

  동짓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동지팥죽이다. 팥죽을 끓여 먹어야 모든 액을 물리치고 건강한 새해를 보낼 수 있다고 믿었다. 동짓날에는 팥을 고아 죽을 만들고 여기에 찹쌀로 단자를 만들어 넣어 끓여 먹는데, 단자는 새알심이라고 하는데 새알만 한 크기로 단자를 만들기 때문이리라. 팥은 영양가가 풍부하고, 젖을 잘 나오게 하고 특히 항생, 진통, 소염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곡물이니 팥죽이 몸에 좋은 것은 분명할 것 같다.

   동짓날은 대체로 양력 12월 21일 또는 22일로 그 날짜가 고정되어 있지만 음력 날짜는 유동적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11월 초하루부터 10일까지는 애동지(兒冬至), 11일부터 20일까지는 중동지(中冬至), 21일부터 말일까지는 노동지(老冬至)라고 불렀다. 애동지는 전남지방에서는 ‘아그동지’라 불렀고, 강원도와 경북 지방에서는 ‘애기동지’, ‘아동지’라고 부르고, 강원 일부 지방에서는 ‘소동지’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올해는 동짓날이 음력 11월 10일이었으니 애동지이다. 애동지 때는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아이에게 좋지 않다고 해서 팥죽 대신 팥시루떡, 시루 팥떡을 해 먹는 풍속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올 동짓날은 애동지였기에 아이가 있는 집안에서는 팥죽 때신 팥시루떡을 해 먹는 것이 맞다. 

  그런데 왜 팥죽일까? 예로부터 토속신앙에서는 붉은색은 잡귀를 물리친다고 믿었다. 아마도 팥의 붉은 색이 잡귀를 물리친다고 믿고 있었기에 팥죽을 끓여 먹었을 것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팥죽을 만들면 먼저 사당에 올려 동지고사(冬至告祀)를 지내고 각 방과 장독, 헛간 같은 집안의 여러 곳에 놓아두었다가 식은 다음에 식구들이 모여서 먹었다. 사당에 놓는 것은 천신의 뜻이고 집안 곳곳에 놓는 것은 축귀(逐鬼)의 뜻이어서 이로써 집 안에 있는 악귀를 모조리 쫓아낸다고 믿었다. 팥이 붉은색을 띠어 음귀(陰鬼)를 쫓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제 의식에서 팥고물을 올려 고사떡을 찌는 것도 똑같은 원리일 것이다. 

팥시루떡
팥시루떡

  붉은 팥은 옛날부터 벽사(辟邪)의 힘이 있는 것으로 믿어 모든 잡귀를 쫓는 데 사용됐다. 헌종 때의 학자 홍석모가 한국의 열두 달 행사와 그 풍속을 설명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에게 바보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동짓날에 죽어서 역질(疫疾 :천연두) 귀신이 되어 붉은 팥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동짓날 붉은 팥죽을 쑤어서 그를 물리친다.”라고 적혀 있다.

  옛날 어르신들은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라는 말씀을 흔히 하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날씨가 춥고 밤이 긴 날이라 호랑이가 교미한다고 하여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고도 하셨다.

동짓날과 예수 탄생일이 비슷한 시기인 것은 무관하지 않다는 설(說)도 있어

  고대 중국에서는 동짓날은 생명력과 광명이 부활한다고 생각하여 동지를 설로 삼았다고 한다. 예수 탄생일이 우리의 동짓날과 비슷한 시기인 것은 고대 로마의 동짓날 격인 태양신의 생일인 12월 25일인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성탄절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벽사(辟邪)의 의미를 가진 빨간색 옷을 입고 오는 것도 동서양의 고대 풍속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옛날 우리 궁중에서도 동짓날을 설날처럼 으뜸 되는 축일로 생각하여 동짓날 왕의 가족과 신하들이 모여 잔치하는 회례연(會禮宴)을 베풀었다고 한다. 

  민가에서도 동지부적(冬至符籍)이라 하여 뱀 ‘사(蛇)’자를 써서 거꾸로 붙여 잡귀를 막는 속신(俗信)이 있었다고 한다. 농촌 지역에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지만, 옛날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풍년을 기원하고 가정의 행복과 마을 사람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마을굿을 여는데 가장 규모가 컸던 것은 정월대보름 굿과 한가위 굿과 동지 굿이 아닐까 한다.

  우리 민족은 태양력인 동지에다 태음력을 잇대어 태음태양력으로 세시풍속을 형성시켜 의미를 부여했는데 민간에서는 동지를 흔히 아세(亞歲) 또는 작은 설이라 불렀다. 동지를 기점으로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여 태양의 부활이라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설 다음가는 작은 설로 대접하는 것이다. 

  지난주 금요일 동짓날 팥죽이나 팥시루떡을 드셨는가? 안 드셨다면 오늘이라도 팥죽이나 팥시루떡을 드시고 새해에는 무병하시고, 만사형통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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