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對美) 관계 개선과 발전 염두, 미국도 선호하는 인믈

 

중국 차기 외교부장으로 유력하게 떠오르는 류젠차오 당 중앙대외연락부장. 미국이 선호하는 외교부장으로 꼽힌다.[사진=환추스바오(環球時報)]
중국 차기 외교부장으로 유력하게 떠오르는 류젠차오 당 중앙대외연락부장. 미국이 선호하는 외교부장으로 꼽힌다.[사진=환추스바오(環球時報)]

【뉴스퀘스트=베이징/전순기 통신원】 한국어에 '갑툭튀'라는 별로 고상하지 못한 은어가 있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당연히 중국어에도 비슷한 말은 존재한다. 아마도 투루치라이(突如其來)가 아닐까 싶다.

갑툭튀와 뜻이 거의 99% 같다고 해도 좋다. 돈과 관련된 일만 아니면 만만디(慢慢的)가 생활화된 중국에서는 당연히 이런 갑툭튀가 잘 용납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미리 짜인 계획이나 시간표대로 돌아가는 정치판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해야 한다. 파격에 가까운 갑툭튀 상황은 잘 발생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요즘은 다소 달라진 것 같다. 최근 공석이었던 신임 국방부장에 누구도 예상 못한 해군 사령관 출신인 둥쥔(董軍·63) 상장이 임명된 사실을 보면 분명 그렇지 않나 싶다. 그런데 최근 또 다른 투루치라이가 나타날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전망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곧 임명될 게 확실한 신임 외교부장에 그동안 전혀 거론되지 않았던 류젠차오(劉建超. 60) 당 대외연락부장이 강력하게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신임 외교부장에 임명된다면 당과 정부의 외교 사무를 모두 관장하는 드문 경력도 보유하게 될 그는 지린(吉林)성 더후이(德惠)시 출신으로 베이징외국어학원 영어과를 졸업했다. 대학 선배들이 많이 진출한 외교부에는 졸업과 동시인 1986년에 입부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즉각 업무에 투입되지는 않았다. 입부와 동시에 바로 영국 옥스퍼드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수학하는 혜택을 입었기 때문이다. 외교부에서 상당히 아끼는 인재였다는 평가가 가능할 것 같다.

실제로 잘 나가기도 했다. 고작 31세 때인 1995년 주영 대사관 일등서기관으로 일한 사실은 이 단정을 분명히 증명한다고 볼 수 있다. 영국에서 돌아와서는 출세의 지름길로 유명한 신문사(공보국)의 참사관으로 승진, 2000년까지 근무했다. 이때 국내외 기자들, 특히 외국 특파원들과의 관계를 무척이나 돈독하게 했던 것으로 유명했다. 그가 외교관들이라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거쳐야 하는 당 기층 간부 생활을 하기 위해 랴오닝(遼寧)성 싱청(興城)시에서 부서기로 일하고 돌아온 다음인 2001년 바로 신문사 부사장(부국장)으로 이동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이후 그는 국장으로 승진하고도 한참 후인 2009년까지 장장 8년 동안 신문사의 붙박이로 있으면서 명 대변인으로 맹활약했다. 언론과의 만남이라면 일반적인 외교관들과는 달리 때와 장소를 가라지도 않았다. 당시를 기억하는 한국의 모 언론사 특파원인 김성노 씨가 “그는 200% 대변인 체질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굳이 사장(국장)이 나서지 않아야 하는 자리에도 나타나기를 좋아했다. 말에도 거침이 없었다. 굳이 숨기는 것이 있나 싶을 정도로 솔직했다. 저러다 정치적으로 다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를 당시 외신 기자들이 했다면 그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지 않나 싶다.”면서 그를 기억하는 것은 이로 볼 때 괜한 게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하지만 다른 대변인 출신들이 이런저런 문제로 낙마하거나 좌천을 당했을 때도 건재했다. 아니 오히려 2009년 겨우 45세의 나이에 주필리핀 대사로 임명됐을 때는 출세가도를 달릴 조짐까지 보였다. 주인도네시아 대사마저 마친 2013년 49세의 나이에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로 승진했다면 확실히 틀린 평가는 아니라고 해야 한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부부장(차관)을 거쳐 부장(장관)으로 오르는 코스만이 남은 듯했다고 해도 좋았다.

그러나 그는 51세 때인 2015년 8월 돌연 국가부패예방국 부국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부부장급으로 이동했다고 할 수 있으나 외교부를 갑자기 떠났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좌천에 가까웠다. 심지어 2년 후에는 저장(浙江)성 정부로 이동, 완전히 외교부와는 멀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당연히 한치 앞의 세상만사는 누구도 모른다. 그의 정치 인생 역시 마찬가지 아니었나 싶다. 외교부를 떠난 지 정확하게 3년 1개월 만인 2018년 9월 당정의 외교 사무를 담당하는 컨트롤타워인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부주임으로 화려하게 컴백하게 될 것인지는 아마 본인도 전혀 예상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는 이후 2022년 5월 당 중앙대외연락부장에 오른 다음 5개월 후에 열린 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매 5년마다 열리는 전당대회)에서는 총 200여 명이 정원인 중앙위원에까지 입성하는데 성공한다.

비교적 성공적인 정치 커리어를 쌓아온 것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장점이 상당히 많다. 무엇보다 성격이 밝고 유쾌하다. 무슨 모임이 있을 때면 늘 좌중의 대화를 주도하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남에 대한 배려도 잘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영어에 능통한 것 역시 그의 큰 장점이라고 봐야 한다. 외모에서 풍기는 투박한 분위기와는 달리 언행도 상당히 세련돼 있다고 해도 좋다. 더구나 그는 영국에서 공부해서 그런지 성향도 상당히 부드럽다. 이 점에서는 공격적 외교를 주도해 ‘전랑(戰狼. 늑대전사)’으로까지 불린 전임 친강(秦剛. 58) 부장과는 180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은근히 외교부장으로 그를 선호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다 까닭이 있지 않나 싶다. 최근 미국외교협회(CFR)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 마이클 프로먼 협회장과 양국의 관계 개선과 관련한 대화를 나눈 것은 역시 괜한 게 아니라고 해야 한다. 당정 최고 지도부가 그를 외교부장으로 쓰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 법하다고 해야 한다.

당연히 그에게도 약점은 있다. 다변에 대화 분위기를 주도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다소 경박한 언행을 대표적으로 꼽아야 할 것 같다. 술도 꽤 좋아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당정 최고 지도부로부터도 종종 주의를 받는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그가 중앙대외연락부장에 이어 외교부장까지 거머쥐려면 당장 막강한 라이벌로 꼽히는 마자오쉬(馬朝旭) 외교부 부부장과의 경쟁을 극복해야 한다. 현재 분위기로 볼 때 그가 직급이 높기 때문에 더 유력하다고 할 수 있으나 일방적으로 유리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마 부부장도 이번 경쟁에서 밀리면 커리어에 치명타를 입는 만큼 어떻게든 다 잡은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 확실하다. 둘의 선의의 경쟁이 드라마보다 더한 재미를 줄 수 있다는 얘기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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