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증가’ 주장하며 교묘한 말장난
김정은 지시로 ‘허풍방지법’ 제정도
“핵・미사일 올인 해 대북제재 자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8월 강원도 안변군 오랑월계농장을 방문해 벼 작황실태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8월 강원도 안변군 오랑월계농장을 방문해 벼 작황실태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뉴스퀘스트=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북한의 통계수치 발표를 접할 때는 정신줄을 놓지 않는 게 중요하다. 자칫 한 눈 팔거나 딴생각을 하다가는 경제실상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경이로운 세상’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 김정은이 노동당 제8기 9차 전원회의(12월 26~30일)에서 2023년 한 해 동안의 ‘경제 성과’를 밝히는 연설에서는 놀라운 수치들이 제시됐다.

북한 관영 선전매체들은 “인민경제 전반에서 이룩한 괄목할 만한 성과들이 개괄됐다”고 전하면서 알곡생산 103%, 전력・석탄・질소비료 100%, 통나무 109%, 소금 110%, 화장품 109% 등 수치를 열거했다.

북한 발표대로라면 마치 식량을 비롯한 각 경제부문의 생산이 100% 이상 늘어나 모두 목표 대비 2배 이상의 급성장이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북한식 통계 발표의 비밀이 숨어있다. 바로 숫자 뒤에 ‘~로’라는 표현을 덧붙이는 수법이다.

각 항목별로 숫자를 나열한 뒤 맨 끝에 가서야 “...104%로 증산한 것을 비롯해 경제 전반에서 뚜렷한 생산 장성(성장)과 계획 규율 수립이라는 진전을 가져왔다”고 밝힌다.

식량생산을 촉구하는 북한의 선전 포스터. [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식량생산을 촉구하는 북한의 선전 포스터. [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곰곰이 따져보면 결국 “알곡생산이 103%로 늘었다”는 건 목표 대비 3% 생산량이 증가했다는 말이 된다. 교묘한 표현을 동원해 수치의 착시효과를 유발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마저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노동당으로부터의 목표달성 압박은 거세고 원자재나 전기, 용수 부족 등의 문제가 겹치면서 정상적인 생산이 어려운 상황이 되면 결국 눈가림식의 허위보고가 만연하게 된다는 얘기다.

특히 농업 부문에서 문제가 심각한 건 김정은의 말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김정은은 지난 2021년 3월 4일 열린 시·군 당 책임비서 강습회 이틀째 행사에서 “농업부문에 뿌리깊이 배겨 있는 허풍을 없애기 위한 투쟁을 강도 높이 벌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생산 목표를 세우면서 상부에 잘 보이려 턱없이 목표를 높게 잡는 행위를 지적한 것이다.

김정은의 질타에 북한은 ‘허풍방지법’까지 만들었다. 이 법조문에는 “전국가적, 전사회적으로 허풍을 치는 현상과의 전쟁을 강하게 벌여 국가의 정책을 정확히 집행하고 인민의 이익을 보호하는데 이바지하기 위해”라며 입법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는 농업과 관련한 수치를 허위로 보고하거나 양곡 유통 과정에서 수확량을 빼돌리는 등의 행위를 적시하고 있다.

또 “통계숫자의 과학성과 공정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겨있을 정도니 북한이 이 문제로 얼마나 골머리를 앓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을 따져 올라가다보면 결국 북한 경제의 난맥상이 자리하고 있다.

사회주의 계획 경제의 폐단에 3대 세습독재를 거치며 이어져온 문제점이 켜켜이 쌓여 식량난으로 대표되는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김정일 시기 누적된 이런 문제들이 집권 13년 차에 접어든 김정은 체제 들어 핵과 미사일 도발에 올인하면서 대북제재를 자초하는 등의 상황과 겹쳐 최악의 국면을 맞았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은으로서는 이런 어려움에 따른 엘리트와 주민 불만이 최고지도자의 리더십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차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연초부터 농기계 생산 공장을 찾고 닭가공공장을 방문해 ‘인민생활 향상’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할 수 있다.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하지만 근본적인 해법을 마련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어 보인다. 체제 내부의 자원을 핵과 미사일 개발, 정치선전 행사에 상당 부분 투입하면서 민생에 돌릴 수 있는 여력이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는 점에서다.

자원 배분의 왜곡과 각 산업생산에서의 실적 부풀리기가 맞물리면서 ‘주식회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경영자(CEO) 김정은은 분식회계와의 동거를 상당기간 이어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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