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숙 명창, 수심가와 관산융마 음반 발매

유지숙 서도소리명창
유지숙 서도소리명창

【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유지숙 명창이 큰일을 해냈다. 유명창이 서도소리의 교범이라 할 수 있는 <수심가>와 <관산융마> 음반을 각각 낸 것. 녹음에 3년이 걸렸다고 한다.

 유지숙 명창은 서도소리의 대표적인 명창이자,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이며, 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전승 교육사다. 유명창의 공연에는 늘 관객이 넘쳐날 정도로 유명창은 두터운 팬을 확보하고 있다. 음반 해설집에 유지숙 명창을 “기세 좋은 발성, 저음과 고음을 넘나드는 맑은 음색, 애잔한 감성의 뛰어난 표현력”을 겸비한 명창으로 소개하듯이 유명창은 정통 국악계에서 보기 드물게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장본인이다. 

 서도소리란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발달한 우리의 전통 소리를 말한다. 서도소리의 대표적인 노래는 평안도 지방의 「수심가」와 「관산융마」, 황해도 지방의 「난봉가」이다. 

혼신의 힘을 다해 3년에 걸쳐 녹음 작업

 이번에 유명창은 수십 년 동안 불렀던 「수심가」와 「관산융마」를 작심하고 녹음했다. 유명창은 이 음반을 위해, 최정상의 한 소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문학가가 자신의 대표 작품을 남기기 위해 열정을 불태우듯이, 소리꾼 유지숙도 저 허공에 사라지는 소리의 정점을 붙잡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녹음 작업에 매달렸던 것이다. 

 「수심가」는 서도소리를 수심가토리라고 할 만큼 서도소리의 기본이자 대표적인 소리다.  「수심가」 잘하면 서도소리 명창이란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이 「수심가」가 잘하기가 매우 어렵다. 어지간한 공력이 없으면 「수심가」 한 자락 내놓기가 어렵다. 

 예술에 완성은 없겠지만 유명창의 이번 「수심가」는 계절로 말하자면 구십춘광(九十春光)의 봄을 지나고 계변양류(溪邊楊柳)의 여름을 지나고 만산홍엽(滿山紅葉)의 가을 끝에서 인생을 관조하는 분위기로 들린다. 차분하면서도 절제하는 아름다움이 보인다. 「수심가」의 노랫말로 말하자면 지난날의 유명창의 소리가(특히 「난봉가」가) 세류(細柳) 같이 가는 섬섬옥수(纖纖玉手)의 흥겨운 가락이었다면, 이번 「수심가」는 도화담수(桃花潭水) 흐르는 물에 자연스럽게 둥둥 떠가는 꽃잎같이 맑디맑게 들린다. 

유지숙 명창의 서도좌창 공연
유지숙 명창의 서도좌창 공연

유지숙 명창과 인연이 있는 「관산융마」  

 유명창이 이번 음반에서 또 공력을 들인 게 바로 「관산융마」다. 「관산융마」는 우리 국악 노래 중에 작사, 작곡자가 밝혀져 있는 몇 안 되는 노래로, 작사자는 조선 영조 때의 문인 석북 신광수(1712~1775)다. 석북은 젊은 시절(1746년) 요즘 말로 하면 서울시 백일장에서 시를 하나 지어 2등상을 받았다. 모두 44구의 칠언(七言)으로 되어 있는 매우 긴 시다. 원래 제목은 「등악양루탄관산융마(登岳陽樓嘆關山戎馬: 악양루에 올라 관산의 전쟁을 탄식함)」인데 너무 길어 「관산융마」라고 말한다.

 이 석북이 과거운도 없고 매우 가난했다. 여러 번 과거 본과에 낙방하고 먹고 살길이 막연하여 평양에 갔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 인삼상에게 투자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하여 평양에 간 것인데, 친구는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낙심하여 실의에 빠진 석북에게 힘을 준 여인이 바로 평양소리기생 모란이었다. 모란은 어떻게 알았는지 석북의 시 「관산융마」에 가곡을 바탕으로 한 곡을 붙여 노래를 불렀고, 석북은 그 노래를 듣고 힘을 내서 한양으로 돌아왔다.

 훗날 석북은 영조임금의 배려로 60세 이상의 사람만 응시할 수 있는 과거에서 장원을 하여 승지가 되었다. 요즘 말로 하면 대통령 비서실의 수석비서가 된 것이다. 그 직후에 국립국악원에 해당하는 장악원에서 모란의 공연이 있었다. 아마도 석북의 배려가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공연을 보고 석북은 시를 지어 “그대 고운 노래 소리 여전히 좋은데/아름답던 홍안에는 주름이 잡혔네”라고 노래했다. 평양기 모란이 서울에 와서 부른 노래는 당연히 「관산융마」였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인 유명창과 평양노래기생 모란의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그 이후 「관산융마」는 서도시창(西道詩唱)으로 분류되어 서도명창이라면 도전해 보는 노래가 되었다. 하지만 「관산융마」는 「수심가」보다 더 내공이 필요한 노래로 알려져 있고, 워낙 느리고 길어서 전체 22절 중에서 보통 1절, 길어야 2, 3절만 노래하는 게 보통이었다. 이번 유명창은 놀랍게도 7절까지 녹음하여, 「관산융마」만으로 음반 한 장을 완성했다. 

서도소리, 깊어야 싱겁지 않아

 음반해설을 쓴 가야금 명인 김해숙 교수는 “유지숙 또한 본 「관산융마」 음반 녹음을 위해 절차탁마를 거친 이후 스승의 선견지명을 몸소 체득하게 되었음을 언급하였다. 즉 느린 속도에서 오는 긴 호흡 조절에 대한 훈련, 잔잔하게 요성하다 길게 뻗거나, 또는 길게 뻗다가 잔잔한 요성을 붙이거나, 또 굴곡진 선율을 만들면서 곱게 떨거나 하는 다양한 창법 등 「관산융마」 의 연습과 통찰을 통해서 더욱 깊이 있는 소리를 얻어갈 수 있었음을 토로하여 그의 스승 오복녀가 강조한 ”깊어야 싱겁지 않다‘라는 서도소리의 내면을 본 음반에서 그려내었다.“라고평가하였다.  

유지숙 명창은 이번 음반을 내며 "서도소리 인생길에 접어들면서언젠가는 완수해야 할 큰 과업이자 숙명으로 생각했다"며, "이제 그 과업을 위한 첫발을 떼었고, 앞으로도 남은 소리 인생에서 서도소리를 올곧게 담아내는 작업을 이어가 안팎으로 서도소리의 멋을 알리고 명맥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감회를 말했다.

대부분의 「수심가」와 「관산융마」는 장구 반주 하나만 있거나 무반주, 혹은 단소 반주가 많은데 이번 음반은 최경만 명인이 「수심가」에는 피리로, 「관산융마」에는 세피리로 반주를 붙였다.  이 연주는 반주라기보다는 독립된 연주로 이중창으로 들리기도 한다. 최경만 명인의 피리, 세피리 연주 역시 엄청난 공력이 들어가 유지숙 명창의 음반에 빛을 더했다.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