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근의 과기누설(80)

비의 향긋한 냄새, 사실은 흙과 나뭇잎에서 나는 냄새
단비를 기다리며 살아온 인류… 비가 향긋한 것으로 간주해 와
향수와 비누 제조업체, 비 냄새 모방하려고 했으나 실패해
인류가 그리는 원초적인 자연의 냄새… 비 냄새에 대한 인간 후각도 진화
사막의 낙타가 오아시스를 찾을 수 있는 것은 비 냄새에 익숙하기 때문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 기자】 대지를 촉촉히 적시고 토양을 기름지게 해 우리들에게 풍요를 선사하는 달콤한 비는 인류가 지구상에 탄생한 이래 늘 우리의 바람이고 소망이었다.

이러한 향긋한 냄새와 달콤한 맛의 단비는 비단 문학적 서사(敍事)만은 아니다. 비는 실지로 우리에게 아름다운 향기를 선물한다. 그리고 인간은 오랜 생존경쟁 속에서 이 냄새를 맡는데 익숙하도록 진화해 왔다.

비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많을지 모른다. 그러나 비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과학적으로는 물 분자에 지나지 않는 비 속에는 정말 향기로운 냄새가 있을까?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단비를 기다리며 살아온 인류… 비가 향긋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지내

사실, 비는 너무나 기분 좋은 냄새이기 때문에 전 세계의 향수와 비누 제조업체들이 이 냄새를 재현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뚜렷한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일부 과학자들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비 오는 날씨에 의존했던 조상들로부터 비 냄새에 대한 ‘유전적 애정’을 물려받았다고 믿고 있다.

그러면 비 냄새가 좋은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비에서 기분 좋게 느끼는 냄새와 관련해 몇 가지 향기가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 가운데 보통 ‘비냄새’로 통하는 ‘페트리코(petrichor)’는 건조한 기간이 오랫동안 지속되다가 비가 내릴 때 생기는 기분을 좋게 하는 냄새다. 다시 말해서 비가 마른 땅에 내릴 때 나는 흙 냄새이지만, 그렇다고 100% 흙 냄새만은 아니다.

이 단어는 돌을 의미하는 접두사로 돌 또는 바위를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페트라(petra)"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피로, 지극히 가볍고 여린 천상의 액체를 의미하는 "이코(ichor)"의 조합에서 파생되었다.

1891년 4월 17일, 프랑스의 토양 대기학자 토마스 램브 핍슨(Thomas Lambe Phipson,1833–1908)이 바가 올 때 발생하는 냄새 현상에 대한 간략한 기록을 과학전문 매체 ‘케미컬 뉴스(Chemical News)’에 게재했다.

비의 향긋한 냄새, 사실은 흙과 나뭇잎에서 나는 냄새

핍슨은 다시 한달 후 학술지 ‘더 사이언티픽(The Scientific)’에 전체 내용을 게재했다. 그는 이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비가 토양의 공극으로 흡수될 때만 방출된다. 삼나무 에센스에서 추출한 브로모-세드렌(bromo-cetren)과 동일하지는 않더라도 매우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우리는 발견했다”

이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한 것은 습한 날씨에서 나오는 냄새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두 명의 호주 과학자로, 1964년 학술지 네이처(Nature) 저널에 논문을 게재하면서 이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호주의 이사벨 베어(Isabel Bear)와 딕 토마스(Dick Thomas) 박사는 ‘점토질 냄새의 본성(Nature of argillaceous odour)’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 ‘점토질 냄새’로 알려진 것을 언급하기 위해 ‘페트리코’라는 단어를 처음 도입했다.

이 논문에서 저자들은 건조한 기간 동안 특정 식물에서 흘러나온 오일 냄새가 점토 기반의 토양과 암석에 흡수되는 과정을 설명했다.

비가 내리는 동안 오일은 토양균 스트렙토미세스(Streptomyces)의 대사 부산물이며 알코올의 일종인 지오스민(geosmin)과 함께 토양에서 공기 중으로 방출되며 독특한 향기를 생성한다. 이것이 바로 비 냄새다.

식물에서 나온 오일이 토양균과 어우러져 나오는 지오스민이 비냄새의 주인공

빗방울이 흙과 같은 다공성 표면에 떨어지면 공기가 작은 기포를 형성하여 표면으로 떠다니며 에어로졸을 방출한다. 이러한 에어로졸은 토양의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만이 아니라 냄새도 운반한다.

그리고 양이 한꺼번에 많지 않고 느리게 내리는 가랑비와 같은 빗방울은 더 많은 에어로졸을 생성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것은 가벼운 비가 내린 후에 페트리코가 더 흔한 이유에 대한 설명을 뒷받침한다. 토양균의 일종인 박테리아 방선균(Actinomycetes)을 이루는 입자들이 이러한 에어로졸 생성을 담당한다.

비 냄새는 향긋하고 달콤하다. 그러나 최근 연구원들은 이 냄새는 비가 건조한 토양을 적실 때 흙에서 나는 것으로 토양 속의 박테리아 토양균이 식물에서 나오는 오일과 같이 어우러져 에어로졸이 돼 우리의 코까지 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사진=iStock free image]
비 냄새는 향긋하고 달콤하다. 그러나 최근 연구원들은 이 냄새는 비가 건조한 토양을 적실 때 흙에서 나는 것으로 토양 속의 박테리아 토양균이 식물에서 나오는 오일과 같이 어우러져 에어로졸이 돼 우리의 코까지 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사진=iStock free image]

비와 관련된 또 다른 냄새는 오존이다. 뇌우가 치는 동안 번개는 대기 중의 산소와 질소 분자를 분리할 수 있으며, 차례로 다시 재결합하여 산화질소로 바뀔 수 있다.

산화질소는 대기 중의 다른 화학물질과 상호작용하여 염소를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냄새가 나는 오존을 형성한다.

누군가가 비가 오는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다가오는 폭풍으로 인한 바람이 구름에서 오존을 사람의 코로 운반한 것일 수도 있다.

사막의 낙타가 오아시스를 찾을 수 있는 것은 비냄새에 익숙하기 때문

일부 과학자들은 인류의 조상들이 생존을 위해 대지를 적시는 단비에 의존하고 갈구해 왔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비 냄새를 좋아하게 됐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모른다. 인간의 코는 진화론적으로 지오스민에 민감하며 0.4ppb만큼의 낮은 농도에서도 이를 감지할 수 있다. 다른 동물에 못지 않게 이러한 비 냄새에 민감하다.

‘사막의 안내자’ 낙타는 건조한 사막에서도 오랫동안 견딜 수 있다. 우리는 종종 물주머니 역할을 하는 낙타의 등 혹을 생각한다.

그러나 낙타는 오아시스와 같은 수원(水源)을 찾는데 익숙하다. 바로 페트리코 냄새를 잘 맡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진화적으로 형성된 낙타만의 독특한 기질이다.

온난화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추웠던 겨울을 뒤로하고 봄의 기운이 기지개를 펴고 있다. 이제 입춘을 지나 대지를 촉촉히 적시는 단비가 내리면 생명이 움트는 소리도 들릴 것이다.

비의 냄새는 모든 생명이 노래하는 냄새다. 그 냄새는 삼라만상의 모든 생명체가 움트는 대지의 여신의 가이아의 노래소리다. 흙의 향기가 바로 부드러운 단비의 냄새다.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